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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경험하는 공항은 일부에 불과하다 - 8

모든 항공인 들은 P가 되고야 만다.

"시드니로 가는 가장 먼 길 1"편에서 잠깐 설명했다시피, 항공사 직원의 최대 혜택은 (아주 많이) 할인된 가격으로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기밀이라 어느 정돈 지는 말할 수 없지만 (아재개그 미안합니다), 일본 짧은 노선은 국내 ktx 가격보다 저렴한 수준이고, 미국 같은 장거리는 더 충격적인 금액이다. 항공사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쨌든 항공인들의 최대 베네핏이, 당일치기로 도쿄 가서 우동먹기 혹은, 2박 4일 파리 가서 에펠탑 보기임은 사실이다. (물론 이렇게 극한으로 몸을 혹사하는 직원은 소수의 덕후들이긴 하다. 나를 포함하여)


단 치명적 단점은 "비행기에 자리가 어야만" 탈 수 있다는 것.


예전 같으면 3일 전즈음 검색해서 유럽, 미국 같은 장거리 노선이 30자리 정도 남으면 아주 안심하고 호텔을 예약했다. 누가 3일 전에 유럽행 비행기를 하겠는가? 하지만 코로나 이후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손님들의 개인 여행도 늘고 기본적 여행 욕구가 높아져, 갑자기 전 만석이 되어버리는 일이 종종 발생해서 당일까지도 마음을 놓기 어렵다.


또 재밌는 변수는 항공사의 "양도" 시스템이다. 비행기가 여러 가지 사유로 해비딜레이, 혹은 캔슬될 경우 (보통은 정비 문제) 비슷한 시간대의 동일 노선을 운항하는 타 항공사에 손님을 "양도"한다. 당연히 폭발 직전의 손님들을 앞에 둔 시점에서, 양도하는 항공사가 "을", 받아주는 항공사가 "갑"이 되므로 티켓값도 꽤 비싸게 받을 수 있다. 다른 항공사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우리 항공사는 (슬프지만 당연하게도) 직원보다 돈이 되는 양도손님을 먼저 탑승시키는 것이 규정이다.


다행스럽게 양도손님도 없고 자리가 많이 남더라도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다. 바로 직원끼리의 경쟁..! 내가 가고 싶은 방콕은 남들도 가고 싶은 방콕이다. 자리가 30석이 남아도 대기 직원이 50명이면 그곳은 소리 없는 전쟁터가 된다. 단 1 자리로 갈리는 치열한 싸움터. 항공사마다 기준은 다르지만, 보통은 로열티를 감안해 입사순으로 태운다. 신입들은 드럽고 치사해서 침을 뱉을 정책이지만, 입사 10년이 넘어가니 제법 리스트 상단에 있는 내 이름 보며 웃음 나는 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선배인가 보다.


이 외에도 항공사에는 "제휴 항공사"라는 또 다른 베네핏이 있다. 바로 우리 항공사가 아니더라도 제휴를 맺은 다른 항공사의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언빌리버블!) 큰 항공사일수록 제휴 맺은 항공사도 많고 비용도 비슷하거나 약간 비싼 정도! 물론 제휴 항공사를 탈 경우, 우선순위는 자사 직원보다 후순위이니 남는 좌석이 아주 여유로울 경우에만 계획하지만, 그래도 플랜 B가 있다는 점은 심적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


만일 당신이 J라면, 여기까지 읽으면서 숨이 가빠오고 가슴이 답답해졌을 것이다.


'아니.. 삼 일 전, 심지어 당일에도 탈지 못 탈지 모른다고... 이게.. 혜택이야..?'


신입시절, 멋모르고 호텔이며 식당이며 다 예약하고, 공항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대기해 탑승구까지 헐레벌떡 달려가 마지막으로 비행기에 탑승하는 경험을 한두 번 겪으면, 보통의 J들은 그들의 본성을 포기한다. 물론, 계획을 못 세우느니 차라리 직원항공권을 포기하겠다!라는 일부 J들도 있었으나, 비행기값을 비교해 보고는 조용히 직원항공권으로 돌아오곤 했다. 불확실성과 놀라운 금액이 공존하는, 참으로 치명적 매력의 직원항공권의 세계다.


그래서 모든 항공인 들은 결국엔 P가 되고야 만다. 그 시기가 빠르고 느리고의 차이일 뿐. 그리고 애초에 극단의 P로 태어난 나는 매일매일이 즐거움의 연속이다.


여보, 이번 주말에 우리.. 어디.. 가..?

어딜가긴, 자리 남는 데로 가는 거지! 아마추어처럼 왜 이래?


#초초초J인남편의애원

#제발어디가는지만이라도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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