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보충대
나는 연병장에서 엄마와 헤어지고 터벅터벅 체육관으로 걸어갔다.
수많은 가족들이 입대하는 아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각자의 방식으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 목소리들은 체육관으로 들어가는 동안 점점 희미해졌고, 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완전히 끊어졌다.
문이 닫히자 나도 같이 갇힌 기분이었다.
나는 ‘이제 얼차려를 주려나?’ 하고 긴장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대신 기본적인 입영 절차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앞에 선 장교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엔 온통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지…"
그때 갑자기 운전면허증 가진 사람은 손을 들라는 말이 나왔다. 체육관 안의 절반 이상이 손을 들었다. 이어서 운전병 희망자는 앞으로 나오라는 말에 또 많은 사람들이 움직였다.
그제야 알았다.
입대 전에 면허를 따라는 선배들의 말이 왜 그렇게 간절했는지.
면허를 따지 않은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설명이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향했다.
머리를 밀어 똑같은 모습이 된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식판을 들고 줄을 섰다.
아직도 기억난다.
손에 들고 있는 급식판의 찐득한 감촉과 디저트로 나온 아이스크림.
밥은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맛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밥이 입 안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이걸 2년 동안 먹는다고...?"
밥을 먹고 나오는데 멀리 아파트와 주택가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그 불빛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도 저기 있고 싶다…
구대장의 인솔을 받아 내무실로 들어가 취침 준비를 했다.
접이식 매트리스를 펴고 군용 모포를 덮었지만, 퀴퀴한 냄새와 낯선 공간 때문에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이 군대를 버틴 인생 선배들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여길 어떻게 버틴 거지…?’
잡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시끄러운 기상 나팔 소리에 눈을 떴다.
아… 꿈이 아니구나.
진짜 입대했네, 나…
억지로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표정이 한결같았다.
마치 주식 투자로 돈 다 날린 사람들처럼,
얼굴이 완전히 찌그러져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2일 차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보급받은 생필품으로 씻고, 군수품 보급을 받으러 이동했다.
그런데 하필 그날 비가 많이 내렸다. 군대식 판초 우의를 입었는데 냄새가 지독했다.
무엇보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참 처참했다.
물에 젖은 쥐 같았다.
전투복과 전투화를 지급받고 갈아입은 순간,
비로소 현실이 느껴졌다.
"아... 나 진짜 군대 왔구나."
개인 물품은 집으로 보내고, 건강검진을 받고, 설명을 듣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처음엔 서먹했던 생활관 사람들과도 조금씩 말이 트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하루가 갔다.
밤중에 불침번 순서가 돌아왔다.
문 앞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는데,
"나가고 싶다…"
그런데 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아마 나 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이제 군생활 2일 했다.
조금만… 아니, 많이 힘내자."
대망의 3일 차.
이제 내일이면 훈련소, 혹은 자대로 배치받는 날이었다.
그리고 퇴소를 원하면 나갈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날이었다.
많은 고민이 들었다.
"그냥 나갈까…"
하지만 그 순간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친구들 얼굴도 떠올랐다.
차마 그러지는 못하겠더라.
"그래.
해보자.
어디까지 가나 보자."
다짐했다.
그런데 평소 항상 허세 부리며 다니던 사람이 퇴소하는 모습을 봤다.
괜히 별별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도 못 버티는구나."
무게를 잡아도 군대는 싫은 곳이었다.
그날은 종교 행사로 교회에 가게 되었다.
책상과 성경 여기저기에 적힌 낙서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살하고 싶다’
‘살려줘’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 마음을 그대로 적어 놓은 것 같았다.
그날 받은 초코파이 하나.
밖에서는 별로 맛없던 그 초코파이가
그날만큼은 정말 미친 듯이 맛있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보충대 마지막 날.
배치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나는 최대한 서울과 가까운 곳으로 가고 싶었다.
난수를 불러 컴퓨터에 입력하고,
"딸깍" 소리와 함께 배치가 결정됐다.
같은 생활관 아저씨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외자리 숫자 부대 걸리면 큰일 나는 거야…"
제발…
제발…
속으로 수십 번 외쳤다.
하지만,
나는 외자리 숫자였다.
"하늘도 참 무심하시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기분이었다.
허탈감이 몰려왔다.
배치를 받은 뒤 대형 버스를 타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버스에 오르기 전, 구대장님께 인사를 드렸다.
그때 구대장님이 말했다.
"이제 시작이야."
난 그 말의 뜻을 몰랐다.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버스에 올랐다.
나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버스 안에서 그대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