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광사

의류도소매업의 꿈

by 루하은조안

부모님은 동대문에서 의류사업을 하신다.

구체적으로는 의류도소매업, 보다 쉽게 말하면 평화시장에서 일하신다.


커서 되고 싶은 것, 꿈을 적어 제출하라는 초등학교 과제에다가 나는 당당하게 '의류도소매업'을 적어서 냈었나 보다. 과학자나 대통령 따위를 예상했던 선생님을 당황시킬만한 답이었고 곧 이 소식은 우리 부모님께 까지 전달되었다.


별다른 일은 없었다. 혼날만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부모님은 정말 그렇게 적어냈냐고 물어보시고는 웃고 마셨다. 엄마아빠가 평화시장에서 하는 일을 뭐라고 하느냐고 물어보던 그때의 나는 어떤 생각을 했던 건지, 우리 부모님은 또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궁금하다.


한참 후의 취업을 앞둔 나는 스스로 내세울만한 기술이나 전문성이 딱히 없음을 깨달은 상태였다. 이리저리 흩어진 재능의 조각을 소중히 모아놓고 가만히 쳐다보면 깨어진 내 얼굴만 비쳐 보일 뿐이었다. '해외'라는 마법의 접두사를 찾아 경험들을 포장해 놓고보니, 당연하게도, '해외'영업직군으로 초점이 모였다.


그렇게 들어온 곳이 종합상사였다. 이 회사가 하는 소위 '무역'이란 것이 평화시장에서 부모님이 하는 일과 다르지 않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상사는 '도소매업'을 업태로 하는 사업자로 등록되어 있으니까. 게다가 종합상사를 거쳐간 많은 이들이 회사를 벗어나 동대문 이곳저곳에 '오파상'이란 이름으로 자리 잡았음을 알게 되자, 문득 초등학교 때의 일화가 떠올랐다.


그럼 나는 이제 초등학교 때 적었던 꿈을 이뤘노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재밌기도 하다. 의류나 섬유를 다루는 사업부에서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몇 번이나 작성한 재무제표의 한 부분일 테니 뭐, 말이 안 될 것도 없다.


이따금 야근을 마치고 법인카드로 달려가는 택시에 앉아있자면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상경하여 맞벌이로 밤마다 평화시장으로 가셔야 했던 부모님은 종종 나를 데리고 나가셨다. 차 뒷좌석에 내가 누워 잘 수 있도록 깔려있던 간이매트는 하늘색이었는데, 이상하게 잠이 잘 왔다. 시장에 도착해 나를 업고 다니실 때면 여러 아주머니의 목소리들이 섞여 들린다. '월광사'라는 작은 간판이 흔들리는 우리 가게에 도착할 쯔음엔 나는 아주 곯아떨어진다. 나보다도 큰 비닐봉지들이 정신없이 부딪히는 차가운 소리에 놀라 깨면 옆가게 아주머니가 야구르트를 꺼내주신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의류도소매업이 하고 싶었을 리는 없고, 내가 적으려고 했던 꿈은 월광사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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