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7년 차가 되었다. 속절없이 쌓여버린 연차는 점점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는데 그래도 그중 대부분은 7년의 경험으로 어떻게든 되거나, 어떻게든 피해지거나, 어떻게든 잊어진다. 아무리 해도 안되는데 피할 수도 없고, '뭐 어쩌겠어'라며 잊어버리기에는 조금 부끄러운 일. 그건 후배양성이다.
내가 신입사원일 때 H는 지금 즈음의 내 연차였다. 그는 점묘화를 그리듯 작은 것 하나하나를 지도해 가며 나를 거의 다 그려놓았다. 지원부서에 배치될 것을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던 나는 그 어떤 신입보다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고, 그의 하나하나를 원래 내 것인 양 배워내는 수밖에 없었다.
엑셀 raw데이터의 헤더는 항상 짙은 회색으로, 그중 가공이 더해지는 헤더를 노란색으로 표시한다. 요약 표를 그릴 때는 A열과 1행이 항상 같은 너비로 비어있어야 하며 대구분에 청회색을 소구분에 연홍색을 사용한다. 자료를 저장할 때에는 다시 열어보는 사람이 정리된 상태로 마주할 수 있도록 항상 모든 탭의 A1셀을 선택한 채로 하며, 누가 인쇄해도 내 의도대로 나오도록 페이지 설정을 미리 해 둔다.
1년 반 정도의 시간만에 회사에서의 내 어떤 부분들은 H와 완전히 같은 모양이 되었다. H는 이미 자신이 언젠가 만들어 낼 빈자리의 규격에 꼭 맞게끔 나를 빚어놓았다. 그때부터 H는 나를 후배이면서 동료로 대했다. 그는 자신의 자리로 나를 끌어당겼고, H가 퇴사한 지금도 나는 그 규격으로 승부 중이다.
어느새 7년 차가 되었고, 그때의 H처럼 나도 후배들을 가르쳐야 했다. 이것저것 시도해 봐도 실패하던 나는 교육자로서의 H와 내가 무엇이 다른지를 한참 고민했다. 사실 답은 알고 있었고, 그저 변명을 고민했다. H만큼의 열정이나 인내가 내게 없어서 그렇다. 도제식 교육과 요즘 세대가 맞지 않는다는 변명도, 요즘 애들이 배울 자세가 안 됐다는 변명도, 그럴싸하지만 답은 아니다. 2002 월드컵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실패 원인을 작성할 수는 없을 테니까.
여하간에 나는 동료가 되어 줄 후배가 필요하다. 내 몸이 두 개가 아닌 이상에야 내려가는 일 없이 밀려오는 일을 다 할 수 없을테니까. H의 열정과 인내가 내게 없다면, 다른 것이라도 찾아 써먹어야지. 체벌만 아니면 다 해봐도 되는 것 아닐까? 지금까지는 잘 안 됐지만, 또 해봐야지 뭐 어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