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찰 엽편소설 - 2
그 어떠한 기억의 왜곡 없이 그저 사실만을 말 할 것을 맹세합니다. 당신은 나를 제 몸보다 사랑했으며, 나는 당신이 내게 준 사랑의 값어치에는 차마 충족치 못할 만큼의 사랑을 당신에게 쏟았습니다. 허나 그 사실이, 지금 당신이 차가운 항아리 따위에 담겨 회백색 분말의 형태로 이곳에 있을 연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당신이 이렇게 된 것에 내 잘못은 결단코 존재치 않습니다. 나는 동정심이나 애처로움, 상실감 따위에 휘둘려 진실을 곡해하고 싶지는 않기에 당신의 면전 앞에서도 이리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다. 허나 그렇다 하여도, 잘못이 없다 하여 죄책감이 존재치 않는 것은 아닙니다.
난 기운이 쇠락해 낮잠을 자야겠다 한 당신을 그저 당신의 뜻대로 하도록 놔두었어야만 합니다. 난 당신이 종종 거닐던 호수공원 대신 다른 곳을 택하였으면 안됐습니다. 난 당신의 얼굴에 비친 한미한 활기에 도취되어 당신과 계속 그 곳을 거닐면 안됐습니다. 오랜만에 뽀득거리는 눈을 제 두 발로 밟아보고 싶다며 바깥쪽 길로 향하는 당신을 나는 부축하여 이끄는 대신 말렸어야만 합니다. 비틀거리며 제 몸뚱아리를 가누지 못한 채 달려드는 저 강철마차를 발견했을 때, 난 필경 당신에게 엄중한 경고의 의미로 소리치는 대신 재빨리 뛰어들어 당신을 인도 한가운데로 내던졌어야만 합니다. 제 몸뚱이의 소중함 따위를 생각해내기 이전에, 난 당신이 나에게 주어왔던 사랑의 기억들을 상기하며 제 스스로를 희생해내는 삼류 히어로 만화 따위를 흉내내야만 했습니다.
허나 난 그러지 못했습니다. 내가 그러지 못한 것이 당신을 죽인 것은 아닙니다. 허나 그럼에도 난 죄책감을 제 아구창 안에 한가득 물고선, 당신을 바라보며 눈물 짓습니다.
결국 언젠가는, 그 언젠가의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주어질지는 난 단 하나도 확신해낼 수 없으나, 그럼에도 결국 언젠가는, 나 또한 당신의 옆에 분말의 형상으로 늬여지게 될 것이라는 걸 잘 압니다. 허나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사실이 두렵습니다. 난 그저 바다에 뿌려져, 윤슬에 비쳐지고 포말에 집어삼켜져 이 세상 어딘가의 가장 깊은 해구에 침수하듯 잠수하고 싶습니다. 그 곳에서는 내가 비록 천당이던, 지옥이던 어떤 한 곳을 향하게 되어야만 하게 직조된 운명을 타고 났음에도 불구하고 저승사자, 악마, 천사 따위가 내 존재를 찾지 못할 것임을 아리게 체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삼십삼일 정도가 지나 그 모든 천상의 것들이 내 존재를 찾길 실패하여 낙담하고 제 자리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천당 혹은 지옥에 있을 당신과 대화하지 못함이 자명하기에, 가장 행복할 것입니다. 당신이 제 목숨을 살리지 못한 나를 향해 원망을 쏟아낼지 아니면 나를 그리워하고 있었으며 내가 지상에서 쌓아 이룩한 모든 것들에 자랑스러워 할지는 영영 미지수이며 그 것들을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나에게는 전자이던 후자이던 그저 끔찍할 뿐입니다. 내 입 안 가득 차오른 이 죄책감이 언제까지 날 짓누르고 또 불안에 떨게 할지 난 도저히 계량할 수 없으나 그럼에도 분명히 내가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지속되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허나 결국 죽음 이후 당신을 만난다면, 당신의 목소리로 나를 향한 당신의 원망 혹은 축성을 들어낸다면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난 당신에 대한 죄책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펑펑 눈물을 터뜨리며 결국 겨우겨우 잊어낸 그 모든 순간들에 대한 아픔과 고통을 다시 제 입 안으로 집어넣어 영원의 영겁 동안 곱씹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기에 내가 당신을 다시 만나는 것은, 나에게 동정과 원망의 눈빛을 동시에 던져내는 친지들의 눈초리를 계속해서 관망하는 것보다 억겁은 고통스럽다 말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나를 당신이 이해해주기를 감히 바랍니다. 허나 난 알고 있는 것이, 이해라는 것은 결국 공감한다는 것과 사뭇 다른 것이기에, 당신은 필시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하기는 하나, 공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이미 그 곳에 올라가 나를 위해 고이 전해줄 말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포장하듯 고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당신은 필경 이런 복잡하고 너저분한 심정의 나를 이해하기는 하나, 제 두 손에 들린 나를 위한 천당에서의 정성을 전달해주고 싶어 조바심이 나기도 할 것입니다. 아, 결국 그렇습니다. 난 당신이 나를 향해 원망을 쏟아내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던 것입니다. 허나 그런다고 하여 무언가 달라지기라도 하겠습니까? 당신은 이미 이 곳의 사람이 아니고, 나는 당신을 안을 수 없으며, 당신이 나를 향해 그 정성스럽고 따스한 말 건넨다 하여도 나는 칩거하여 숨기를 택할 것인데.
허나 지금 그 곳에서 나를 지켜보면서도, 당신은 분명히 그리 말 할 것입니다. 정성스럽고 따스한 말, 분명히 그리 말 할 것입니다.
그 어떠한 기억의 왜곡 없이 사실만을 말 할 것을 맹세합니다. 그 날 죽었어야 하는 것은 당신이 아닌 나였어야만 합니다. 당신의 죽음에 어쩌면, 난 잘못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내가 탓할 수 있는 유일한 자는 나입니다. 이를 부정하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그리고, 당신을 만남에 두려움이 없기 위해서는, 결국 이 모든 것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이제 난, 바다에 뿌려지기 대신 당신의 옆에 남고 싶습니다.
사랑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앞으로도 사랑하겠습니다.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