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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찰 엽편소설-1

by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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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무용하며 또한 비효율적인 것이나, 만일 그 사랑이 에로스의 감정에서 말미암은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사회적 안정감과 인정은 정략 내지 계약 결혼으로, 성적 욕구의 충족은 원나잇 스탠드로 가뿐히 채워낼 수 있는 이 세상에서, 제 스스로도 제대로 그 범주를 파악치 못하는 호르몬과 두뇌 신호의 엉성한 결집 만을 믿고선 다른 누군가에게 제 자신을 가뿐히 맡기고, 그 사람 또한 제 자신에게 스스로를 맡기기를 바라는 것은 필경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이런 나의 말을 회피라 생각지는 말아주었으면 합니다. 또한 내가 로맨스에 있어 극단적인 허무주의자니, 비관주의자니 같은 말도 삼가주기를 바라겠습니다. 난 그것들이 하찮다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그저 무용하며 또한 비효율적이라 말하는 것뿐입니다. 거리에 피어난 들꽃이나 구멍 뚫린 하늘에서 쏟아지는 함박눈 따위도 무용하기는 매한가지이지만, 그것들을 하찮다 부르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지 않습니까? 에로스로써의 사랑도 나에게 있어선 딱 그런 것일 뿐입니다. 혹자 중에선 아리따운 꽃을 필경 꺾어내거나 파내어 제 앞마당에 심고 정성스레 관리하며 결국 언젠가는 시들어버릴 것을 알면서도 제 몸 다루듯이 소중히 대하는 것 만으로 겨우겨우 제 직성이 풀리는 화훼가들도 있기 마련이겠으나, 난 그런 자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한 발치 떨어진 먼 곳에서 그저 꽃잎 위 색상들의 번짐 따위를 관측해내는 것으로 만족하거나, 기껏해봐야 살며시 두 손가락으로 어루만지고는 그 향긋한 꿀 내음 한 번 맡고선 발걸음을 돌리고는 하지요.


당신이 전자에 해당하는 자이던, 아니면 나와 같이 후자에 해당하는 자이던 난 크게 신경쓰지 않으며 그렇기에 또한 당신을 함부로 비난할 생각 따위 없습니다. 허나 당신이 나에게 이런 식으로 다가와 고백의 한 마디를 고요한 물잔 속 수평선 위로 추락하는 한 방울과 같이 떨어뜨리면, 난 도대체 무어라 답해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안타깝습니다. 당신에게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모르는 내가 안타깝고, 또한 내가 이런 종자라는 걸 너끈히 알고 있던 당신이, 결국 이 말을 뱉어내기까지 도달하기 위해 얼마나 제 가슴을 졸여왔을지 안타깝습니다. 내 두 입술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인 것이, 이런 상황에서도 도저히 딱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결단코 말하건대, 내가 당신의 언어에 동의하는 그 순간부터 당신과 나의 관계 끝에 봉우리 틔울 감정은 오로지 염오 혹은 권태임이 당연합니다. 또한 염오와 닙비다가 그 어원이 같다 하여, 그것이 언젠가 우리에게 너바나로써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대변해내지는 않습니다. 결국 사랑의 쾌락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어느 순간 부터는 그저 원망의 윤회만이 그 끝을 알지 못한 채 반복될 것이라는 걸 난 너무나도 확신합니다.


허나 그럼에도 당신의 방울 같은 두 눈망울이 내 결론에 반증하기에, 난 당신의 질문에 또 다른 질문으로 회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고작 나 같은 종자를 위해 제 가슴 속 사랑을 덜어내는 것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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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물론입니다. 비록 당신이 말한 것과 같이 그 끝의 형상이 아무리 초라할지라도, 뿜어지듯 터져나온 사랑의 향취를 덮어내기에 그 초라함은 한없이 한미할 것임이 자명합니다. 난 당신을 사랑해왔으며,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랑할 것을 확신할 수는 없으나 그럼에도 당신을 사랑하고 싶음은 변치 않습니다. 사랑의 무용함에 지레 겁먹어 돌아서는 자에겐,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을 뿐입니다. 관계의 끝이 결국 파멸 혹은 지독한 권태임이 세계 속 모든 인류에게 너무도 분명하다 하여도, 그것을 단 한 번도 마주하지 않은 자는 그 것에 대해 판결 내릴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을 나에게 맡기고, 또한 나를 당신에게 맡기고 싶어하는 것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사랑 끝에 찾아올 모든 닙비다를 당신과 함께 삼켜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당신이면 됩니다. 난 그것만으로도 족합니다.


그렇기에 난, 질문으로 답해진 당신의 대답에 또다시 질문을 접어 보냅니다. 당신이 나를 바라보는 눈망울의 형상이, 나의 것과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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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물론입니다.

내 눈망울이, 당신의 것과 같습니다.

아마도 나 또한, 당신을 사랑하는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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