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교사라면 가장 큰 고충으로 단연 학부모 민원을 뽑을 것이다.
얼마전 학생으로부터 폭력을 당한 초등 교사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교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임교사의 비보까지 전해져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특히 교사들은 요즘 더욱 아프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세상은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를 더욱 가슴아프게 하는 건, 이미 학교 현장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며 교사들에겐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몇일에 한 번씩 학부모 민원 전화와 학생들의 교권 침해 현장을 생생하게 지켜보거나 직접 겪다보니, 오히려 그런 상황에 익숙해져 간다. 어?! 오늘은 아무일이 없네.
요즘은 어느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도 '전화 응대를 받는 저희 직원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라는 멘트로 선경고를 날린다. 담당 직원의 개인 핸드폰 번호를 알 수도 없고, 알려 줄 수도 없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유독 학교 교사는 개인 연락처와 카톡 아이디를 공유하지 않으면 마치 학생들에게 무관심한 교사처럼 취급받는 분위기다.
기를 쓰고 핸드폰 번호 노출을 꺼리지만,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다.
물론 학교와 회사는 다르지 않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교사들에게 학교는 엄연한 직장이고 직업이다.
교사는 성직자도 아니고 봉사자도 아니다.
하지만, 교사에게 도덕성을 넘어 신성성을 기대하고 업무 시간을 넘어 봉사하기를 원하는 학부모들이 더러 있다.
나는 주로 고등학교에서 근무를 하다보니 어느 정도 다듬어진 아이들을 만나게 되지만, 딱 한번의 중학교 근무에서 겪었던 기억은 지금까지도 상처로 남아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친구고 선생님이고 때려 죽이겠다며 가방 속에 벽돌을 넣고 다니던 아이.
혹시나 벽돌이 있을까 가방 안을 들여다 보고 싶었지만, 가방 검사는 학생 인권 침해에 속하기에 제발 벽돌이 저 안에 없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아이의 눈치만 살피던 기억.
분노 조절 장애로 복도와 교무실을 마음대로 날뛰며 선생님들께 쌍욕을 날리는 아이. 교사들은 무거운 얼굴로 그 지저분한 욕을 다 받아내면서도 아이에게 한마디도 되받아 치지 못해 한숨만 푹푹 쉬던 기억.
신성한 직장에서 쌍욕을 bgm처럼 들으며 업무를 해야하는 상황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미성숙한 아이가 저지른 실수인걸 알면서도 평생 들어보지 못한 모욕적인 말에 꾹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야 마는 나이 지긋하신 선생님.
그럼에도 '우리반 아이'라는 이유로 교무실에서 자신의 상처를 단 한번도 꺼내 보이지 않는 교사도 있다.
아이가 주는 상처는 그래도 버틸만 하다.
그러나 학부모가 주는 상처는 정말 교사를 무너뜨린다. 너무 아프다.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은 부모로서의 어려움과 고충을 토로하고 도움을 부탁한다. 나역시 누군가의 부모이자 자식이기에 충분히 공감하고 서로를 다독이며 함께 아이를 성장시켜 나간다. 그게 정상이다.
하루에 몇 백 명의 학생을 상대하고 지도해야하는 학교 현장에서 일대일 맞춤형 보육을 원하는 소수의 학부모들.
학교 규칙을 성실하게 어기는 학생을 지도하다가 학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면, 학교 규칙이 왜 그따위냐며 소리를 버럭 지르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는 학부모.
아이의 단편적이고 일방적인 주장만 믿고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없이 교장실로 경솔하게 쳐들어가는 학부모.
밤이고 낮이고 문자와 카톡으로 장문의 폭탄을 보내는 학부모.
밤이 늦어 확인을 안하면 안했다고 욕. 확인하고 대답을 안하면 읽씹했다고 욕. 확인하고 답장을 보내면 문자가 형식적이라고 욕.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엄마 입장에서 백번 천번 이해해보려고 노력한다. 근데 힘들다.
나도 미처 못다한 말들,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이 떠올라 자다가 이불킥을 하기도 한다.
소수의 학생, 학부모들의 이야기다.
예전에 교사의 권력과 횡포로 교육 현장이 병들었던 몹쓸 시대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변했다. 학생 인권은 소중히 보호되고 있으며, 수요자 중심의 교육 과정으로 변화되고 있다.
교육의 한 중심에 서있는 교권 역시 보호되어야 하며, 전문가로서 건강한 자율성과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교사들은 '새로운 교권 강화'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본연의 교권 보호'를 원하는 것이다.
어른들이 저질러 놓은 이 혼돈의 사회에서 그럼에도 블구하고 우리 학생들이 건강하고 지혜로운 청년으로 잘 성장하기를 오늘도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