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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감한 잇프제이 Jul 29. 2023

[교사 학부모상담일지]학부모 상담, 꼭 해야 하나요?

학부모 상담, 꼭 신청해야 하나요? 안해도 되나요?

초임 시절에 '우리 반'에 대한 애착을 넘어 집착까지 가졌던 웃픈 기억이 있다.

학생 하나하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하고, 작은 감정의 변화까지 캐치하며 무슨일이라도 생기면 세상 큰일 난 것처럼 아이를 불러다 앉혀 놓고 상담을 밥먹듯 했던 열정 넘치던 시절이었다.

때론 나의 과한 관심과 개입으로 부담을 느꼈던 학생들도 몇몇 있었다. 하지만 학부모님들은 대부분 나의 이런 과한 처사를 매우 반겨줬고, 감사의 마음을 종종 표현해 주곤 했다.

학기 초가 되면 학급의 모든 학생들을 한 명씩 파악하기 위해 충분한 상담 시간을 가졌고, 학생과의 상담이 끝나면 전화나 대면으로 학부모 상담까지 이어졌다.

학생들은 자신의 모든 내외적 상황을 담임이 알게 되었다는 것과 부모님과 담임 선생님이 자신의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많은 부분 협조적이고 순응하는 태도를 보여주곤 했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바꼈다.

학생 인권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부터 학생 개인 신상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물을 수도, 명확히 알 수도 없다. 가령 부모님의 나이나 직업, 가정환경은 물론이고 심지어 학생의 진로 희망사항 마저 생기부에 공식적으로 기재하는 란이 없어졌다. 나쁜 변화는 아니다. 어찌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정보를  담임 교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개해야 하는건 아니니깐 말이다.

대신 예전보다 유대감도 줄어든건 사실이다. 우리 반 모든 아이들의 신상을 꿰뚫고 있었을 땐 아이의 걱정이 나의 걱정이었고, 아이가 말썽을 부리면 부모처럼 속상해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알게 모르게 학생과 교사와의 적정한 선이 그어지게 되었고, 걱정과 속상함 보다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감정을 솔직히 더 많이 느낀다. 어떤 쪽이 더 바람직하고 적당한지는 모르겠다. 교사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문제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학생과의 적절한 거리감 보다는 오지랖 부리는 교사가 더 적성에 맞기 때문에 아직도 옛날 버릇 못고치고 학생들을 파고 들때가 있는데, 요즘 z세대인 반 아이들은 싫진 않지만 또 마냥 편하지만은 않은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학부모들 세대도 변했다. 학교에서 전화오면 '따끔하게 더 혼내 주세요'했던 얘기는 고전 동화에서나 나올듯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우리 아이가 좀 예민해서요', '우리 아이는 살살 달래줘야 말을 들어요'같은 멘트를 훨씬 더 많이 듣곤 한다. 


요즘은 나의 제자의 제자가 교직에 나오고 있을 만큼 MZ세대들이 학교 현장에 많이 근무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20대의 젊은 신규 교사일 때가 솔직히 가장 어려운 것 같다. 내가 순수하게 학부모이기만 하다면 학부모 입장에서 편하게 상담 하겠지만, 같은 교사이기도 하다보니 내가 학부모로서 이런 이야기를 했을때 교사가 느낄 수 있는 불편함이나 부담감을 알기에 더욱 조심스러운게 사실이다.

더군다나 그들도 우리 아이들과 불과 몇살 차이 나지 않는 청년들이다 보니 아직은 주변의 격려와 응원, 선배교사들의 적절한 안내와 조언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무리한 요구를 하고 무슨 욕을 해도 무너지지 않는 강철 멘탈을 가진 사람처럼 교사들을 대하는 학부모도 있다.


최근 교사들을 가슴 아프게 하고 세상에 충격을 안겨준 저경력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다. 아마 이 소식으로 인해 그동안 지극히 상식적이고 지혜롭게 행동해 온 수많은 학부모들 조차 움츠러 들었을거라 생각한다.

혹시 나도 알게 모르게 진상 학부모였던건 아닐까,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때 학교에 어떻게 전화 하지, 학부모 상담 신청은 해도 되나, 우리 아이에 대해 꼭 필요한 부탁이나 배려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교사인 나조차도 이제는 아이의 담임선생님께 연락드리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게 느껴지는데 일반 학부모들은 더욱 그렇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와중에도 그런 학부모들과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듯 꾸준히 민원전화를 넣는 학부모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학생과 학부모, 교사 이 삼자가 서로를 독립된 인격체로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가 한편이 되어 교사를 몰아 부쳐서도 안되며, 교사와 학부모가 공조해 아이를 몰아 부쳐서도 안된다.

무척 어려운 일이겠지만, 자기 자식에 대한 객관화가 필요하고 객관화된 아이의 특성을 담임교사에게 공유하며 제3자 입장에서 어떤 방향으로 지도하는 것이 좋을지 상의하는 것,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상담이다.

(자식이기 때문에 객관화가 어렵다면, 객관화하는 척이라도 좋다. 말에는 많은 힘이 있다.)

교사 입장에서도 '우리 아이가 예민해요', '우리 아이는 살살 달래야 해요'라는 멘트보다, 학생이 어떤 유형의 성격을 갖고 있어서 어떤 상황에서 어려워하고 적응이 힘든 아이인지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학부모에게 진심으로 공감하고 기꺼이 고민을 함께 나눌 마음이 든다.

반대로 아예 상담 신청이나 연락을 하지 않고 조용한 학부모들은 혹시 '너무 무관심한 학부모'라고 교사들이 오해하지는 않을지 궁금해 한다.

결론적으로 그런 학부모님들께 너무 감사하다. 귀찮게 안해서 무관심이 감사하다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학생이 학교 생활을 하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학부모님께 연락하는 일이 거의 없다. 연락이 없으면 문제가 없다는 신호로 받아들여도 좋다. 그런데 부모님들 역시 별다른 요청이나 민원 없이 평온한 상태를 유지해 준다면 교사 입장에서는 더할나위 없이 감사하고,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안정감을 느낀다.

이건 진심이다. 교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학생은 어떤 유형으로든 교사들의 주목을 받는 학생보다는 묵묵히 학교생활을 이어나가면서 학부모님들 또한 묵묵히 동조해 주는, 어찌보면 다소 존재감이 없어 보일 수도 있는 학생들이다. 수많은 사안을 처리하고 학생들을 지도하다보니 그런 학생들에게 자주 표현해 주지는 못하지만, 마음 속 깊이 참 괜찮은 아이, 학부모님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무관심한 학부모가 아니라 아이가 학교에서 잘 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부모도 별다른 연락이나 요청이 없는 거라고, 솔직히 같은 부모입장에서 부러운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착실할 수 없고 살다보면 뜻하지 않게 사건에 휘말리기도 하고, 사춘기가 이르게 혹은 뒤늦게 찾아 오기도 한다. 그래서 12년 내내 별소식이나 별탈 없이 평온하게 자녀의 학창 시절을 보내는 학부모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냥 도움이 필요할 땐 올바른 방법으로 교사에게 적극 요청하고, 평화로운 시기엔 묵묵히 응원해 주면 된다.

학생에 대한 상담이 들어오거나 요청이 들어왔을 때 귀찮아하거나 싫어하는 교사를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본적이 없다. 당당하게 상담을 요청하되 정당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



나도 얼마전 올해 처음으로 큰 아이의 담임선생님께 문자 연락을 받았다. 내심 궁금했었는데 마침 잘됐다는 생각으로 아이에 대한 염려와 문제를 상담했고, 부모가 할 수없는 내 자식에 대한 객관화가 가능한 담임 선생님의 조언이 참 감사하게 느껴졌다.

자식이기에 객관화가 어렵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남이 말해주는 내 자식의 문제와 염려는 가슴 쓰리기도 하다.  만약 담임 교사가 아닌 제3자가 말해줬다면 큰 싸움이 날 수도 있는 민감한 사항이다. 그러니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가, 부모만큼은 아니지만 내 아이의 가장 가까이에서 감정을 배제하고 아이의 특성을 객관적으로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담임교사인 것이다. 

단,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교사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지 못하는 내 아이의 문제와 특성을 진지하게 듣고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때 교사와의 상담을 충분히 활용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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