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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감한 잇프제이 Aug 01. 2023

[교사 감동일지]그럼에도 내가 교사를 계속하는 이유는?

그래도 내가 교사를 계속하는 이유는? 훈훈한 스토리

교사라는 직업은 딱히 명예가 높은 직업도 아니고, 연봉이 많은 직업도 아니며, 요즘 같은 시대엔 존경 받는 직업도 아니다.

단지, 정년이 보장되고 노동의 강도가 적당하다는 평을 받아 직업 선호도 조사에서 자주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학교에서 딱히 사범대나 교대를 희망하는 학생을 좀처럼 찾기 어려워졌고, 부모들 역시 자녀의 직업으로 교사를 비선호한다는 기사를 요즘들어 종종 보게 된다.

어찌보면 과대평가되어 있던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현타'의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그동안 사람들은 그 안에 곯은 상처들은 미처 보지 못한 것이다.

솔직히 그동안 '그저 부럽다', '별로 힘 안들이고 돈벌어서 좋겠다'라는 말을 들었을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줘야할 지 모를 막막함에 쓴웃음만 짓곤 했다. 내친구들은 그 쓴웃음의 의미를 암묵적 동의로 받아들이는듯 했다. 남의 속도 모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20년 넘게 교사직을 유지하고 있다.



학생 생활 지도를 하다보면 별의별 사연을 다 접하게 된다. 가슴아프고 힘든 이야기는 당연히 비밀유지의 의무에 따라 외부에 발설해서는 안되지만, 기쁘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마이크만 안 잡았을 뿐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곤 한다. 사실 자랑할게 그거 밖에 없긴 하더라.

매일 등장 인물이 바뀔 뿐 히스토리가 발생하지 않는 날이 없는데, 체육대회에서 1등을 했다거나 스승의 날 칠판 가득 앙증맞은 하트 세례를 받게 되는 날이면 헛웃음이 나오면서, '그래, 내가 이래서 선생한다'를 되뇌이곤 한다.

심지어 전날까지도 죽어라 말 안듣는 녀석들과 아슬아슬한 신경전을 벌이고, 덕분에 교실 분위기가 흉흉해졌는데도 불구하고 다음날 스승의 날이라고 누가봐도 티나는 깜짝 세레모니를 펼치는 녀석들을 보면 참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속을 들들 볶던 녀석들이 나랑 차마 눈은 마주치지 못하고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러대고, 매우 짧지만 진심어린 메세지로 롤링페이퍼 한 켠을 차지하는 걸 보면,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이 부부사이에서만 성립되는건 아니구나 싶다.



초임시절에 시발점을 알 수 없는 무력감으로 학교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어 보였던 반 아이가 있었다. 담임교사의 호소에 가까운 설득에 못이겨 학교를 나오고 간신히 졸업을 했다. 지금 떠올려보면 낯부끄러울만큼 어설픈 상담이었는데 그 아이는 별 저항이나 짜증 없이 담임 호출에 꾸역꾸역 학교를 나와줬다. 그렇게 마지 못해 지내던 하루하루가 쌓여 결국엔 그 친구에게 고졸이라는 커리어와 함께 이를 발판으로 대학에 갈 수 있는 옵션을 선사해 주었다. 나중에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멋진 정장과 핸드백을 장착하고 나를 찾아온 그 아이의 모습은 지금 다시 떠올려도 울컥하다. 함께 술 한 잔 기울이며 둘 다 어설펐던 그 시절 이야기를 배꼽잡으며 떠들어대느라 목이 다 쉴 정도였다.


몸도 왜소하고 마음은 더 왜소해서 도대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아이가 있었다. 어찌나 마음의 상처가 깊은지 그누구의 별 것 없는 질문에도 외면으로 답하는 아이었다. 초중고를 함께 지내온 친구들조차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다니 저 작은 아이의 상처는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알 길이 없었다.

부모님이라고 입장이 나은건 아니었다.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입을 닫았고, 도대체 무슨 생각과 마음인지 알 길이 없어 포기한지 오래라고 하셨다.

당시 나는 고3 담임이었고, 아이들의 입시지도와 상담을 수시로 해야만 했다. 아이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고 가로 세로로 끄덕이는 고개짓 하나로 대학에 진학할 의사가 있다는 것만 간신히 확인할 수 있었다.

시종일관 묵묵부답인 그 아이가 너무 답답하고 울화통이 터질때도 있었지만, 아이가 분명히 나에게 의사표시를 한 이상 포기할 수 없었다. 둘 만이 아는 그아이의 속내였다. 그것만으로도 세상 누구도 모르는 비밀을 간직한것 마냥 피식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었다.

드디어 원서 접수 날, 나는 아이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을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단 둘이 마주앉아 아이의 성적으로 갈 수 있는 혹은 가고 싶은 대학의 학과를 물었고, 접수 마감날인걸 감안해서인지 아이는 처음으로 말대답이라는걸 했다. 말대답이 그렇게 기쁜적은 처음이었다.

'저.. 제가 할 수 있는..건.. 공무...원이예..'말끝을 흐리는 그아이의 두 손을 나도 모르게 덥석 잡고 흔들어댔다. '그래!! 내가 봐도 너는 진득하게 앉아서 공부도 잘하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일하는게 적성에 잘 맞을거 같아~ 너무 잘 생각했어!!'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을 쏟아내며 우리는 행정학과에 원서 접수를 했고, 접수와 동시에 아이는 다시 말문을 닫았다.

그래도 너무 기뻤다. '아 이 아이가 살아갈 마음이 있구나. 이 세상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 아이구나!!'

학교를 옮긴 후 다른 제자들로부터 그 친구가 공무원시험에 합격을 했고, 여전히 조용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주책맞게 왈칵 눈물이 났다. 이 혹독한 세상에서 기특하게도 자기 자리를 찾아 간거다.


한 번은 오랜만에 고3 담임이 아닌 고1 담임을 맡아 고3에 비해 한참 생생하고 젊어보이는 아이들과 지내다보니 나까지 젊어진 기분에 한껏 들떴었다. 게다가 우리반 반장으로 뽑힌 남학생이 어찌나 센스가 넘치는지 시시철철 학급 이벤트를 주최해 아주 담임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재치있는 성격 덕에 간혹 저지르는 실수도 어찌나 유쾌하게 넘기는지, 단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뭐든지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거다. 공부도 할까 말까, 놀까 말까, 성실할까 말까. 친한 친구들 무리가 흔히 말하는 '노는 친구들'이었고, 항상 아슬아슬하게 '반장'과 '노는 친구' 역할 사이를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이럴땐 어째야 한다?! 잡아야 한다.

그 아이가 가진 장점을 최대치로 주변 교사들에게 피력했고, 선생님들은 그 반 반장이 그렇게 괜찮은 아이였냐며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아이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칭찬은 모든 걸 춤추게 한다고 아이는 점점 진중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쐐기를 박는 심정으로 생활기록부 담임 종합의견란에 내가 관찰할 수 있는 아이의 최대 역량과 장점을 가득 채워 놓았다. 그게 족쇄가 되어 아이는 더이상 딴짓을 할 수가 없었고 머지 않아 정말 멋진 남자가 되겠다는 각오를 스스로 하게 되었다. 얼마전 다른 학교로 떠나온 나에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고3 생활, 끝까지 달려서 정말 괜찮은 사람이 되어 보겠다'고 스승의 날 인사와 함께 카톡 메세지를 보냈다.


 


다른 직장인들이 계약을 따내거나 성과를 냈을 때 기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벅차오름이 있다. 시건방을 떤다해도 어쩔 수 없다. 대신 상당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직업이다. 성과나 결과물이 즉각적으로 보여지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단지, 몸과 지혜가 점점 자라 건강한 청년으로 성장하는 장면을 수년 동안 지켜보며, 그 성장 과정에 밀접하게 참여하고 먼 훗날 그 청년이 수고했노라고 감사하다고 전하는 그 인사 한마디.

그게 그렇게 짜릿해서, 나는 '선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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