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인 영화, <특별시민>
긴 5월 연휴 기간과 동시에 5월 9일, 이른바 장미대선을 앞두고 특별한 '대선 특수'를 누리리라 예측됐던 영화 한 편이 있다. 짱짱한 라인업과 시의성있는 소재를 갖추고 이번 연휴 극장가를 휩쓸 것이란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게 만들었던 이 영화 <특별시민>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영화는 국회의원 3선, 서울시장 2선에 빛나는 시장 변종구(최민식 분)의 서울시장 3선 도전기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종구는 젊은 이들과 소통하고 서울을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 참된 시장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권력을 위해 그 어느 것도 거리끼지 않는 정치인이다. 그는 선거 공작의 일인자인 선거대책본부장 심혁수(곽도원 분)와 손잡고 젊은 광고 전문가 박경(심은경 분)을 선거판으로 끌어들이며 3선 서울시장 도전에 박차를 가한다. 하지만 종구의 앞길을 막기 위한 다양한 네거티브 공작이 벌어지며, 순탄치 않은 선거가 펼쳐진다.
기대됐던 만큼 뚜껑을 열어 보니 이 영화, 과연 기대에 미칠 수 있는 영화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일단 이 영화엔 3가지가 없다. 그 3가지가 무엇인지 짚어 보며 영화의 장단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이 영화 속엔 선과 악이 없다.
정치판에서 선과 악을 가르는 것만큼 아둔하고 우스운 일이 있을까. 모든 캐릭터들은 본인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며, 오늘의 적은 내일의 동지가 된다. 눈앞에선 하하호호 웃더라도 뒤에선 칼을 꽂으며, 어제는 칼을 꽂았더라도 오늘 내 이익에 맞춰 준다면 언제든 친구가 될 수 있다. 정치인이란 무릇 그런 것이라 하지 않는가. 영화 속 이들은 그 정치인의 모습에 백 퍼센트 부합하는 모습을 보인다. 야합과 네거티브, 음모와 불법은 그들의 삶에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재미있는 부분은 그래서 그 어느 누구도 선과 악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인공인 종구마저, 우리가 맘 편히 응원할 수 있는 선량한 정치인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오히려 관객은 영화를 보며 이들의 이런 행태를 관조하고, 때로는 비난하고 때로는 비웃게 된다. 영화가 결국 보여주는 것은, 아수라를 방불케 하는 정치판, 그리고 그 정치판 안에 더럽지 않은 자는 없다는 현실에 대한 관조적 시각이다.
둘째, 이 영화 속엔 유권자가 없다.
영화는 묘하게 유권자를 배제하고, 정치인과 보좌관, 언론 정도에 초점을 맞춘다. 후보들의 거리 유세를 보여줄 때마저도, 유권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 속 주인공들도 유권자에 대한 관심이 없다. 그들의 머릿속에 선거는 전략과 전술을 사용하여 부딪히는 일일 뿐이고, 투표를 실제 할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선거판은 더욱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고, 어찌 보면 현실을 닮았다는 생각마저도 들게 만든다. 그래서 더더욱 영화를 보는 동안 영화로부터 배제되었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을 그려내면서도 관객들을 극 안으로 끌어들이는 영화가 있다면,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을 배제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관조의 입장에 머무르게 내버려둔다.
셋째, 이 영화엔 클라이막스가 없다.
크고 작은 정치공작과 사건들이 이어지지만 어느 하나도 크게 타격을 입히거나 큰 사건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종구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 예상됐던 종구의 큰 잘못마저도 영화 중후반부 정도에 공개되면서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넘어가버린다. 클라이막스라 할 만한 부분이 없는 것처럼 보이면서 영화는 일견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편집이 아쉬운 부분들도 부분부분 보이기도 하는데, 오히려 클라이막스가 없기 때문에 더 현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서울시장 선거전을 다룬 다큐를 보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현실적이지만, 영화로서는 아쉬운 씁쓸함을 남긴다.
영화 속에서 심은경이 연기한 박경은 정치에 대한 꿈으로 부푼 20대를 대표한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를 꿈꾸며 선거판에 뛰어들었지만, 실제 정치판의 모습을 깨닫게 되면서 그 안의 사람들에 대해 환멸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박경의 캐릭터가 잘 설명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던 건, 심은경의 연기 뿐만 아니라 너무 많은 캐릭터들의 등장으로 영화가 산만해진 턱도 있다. 다양한 캐릭터들의 상황을 설명하다 보니 박경의 심경 변화가 느껴질 겨를이 없고, 영화는 그래서 더더욱 관객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다.
정치에 대한 회의(political cynicism)가 매우 큰 문제라는 논의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치인들의 끝없는 싸움, 네거티브 공작, 정책은 빠지고 흑색선전만 난무하는 현실에서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피로감과 환멸감을 느끼고 비판 대신 외면을 택한다. 일부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반대표가 나오는 것을 줄이기 위해 이 회의감을 일부러 늘리고자 전략을 꾀하기도 한다. 그러한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성공적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정치를 외면하고 떠나버린다면, 그래서 결국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에 남는다면, 과연 그것이 진정한 정치라 할 수 있을까.
많은 의미에서 이 영화는 이번 대선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이번 대선 역시 이런 정치 공작에 불과한 선거판일지도 모르겠다. 그 선거판에 환멸을 느끼고 '뽑을 사람 없다' 관조하며 투표하지 않는 것도 우리의 선택이고, 그래도 누군가에게 한표를 던지는 것도 우리의 선택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이 다 우리의 선택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좋든 싫든 우리는 선택의 결과를 책임져야 할 것이다. 관객인 우리에게도, 유권자인 우리에게도, 그 선택을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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