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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06. 2017

괴물은 항상 예상 밖의 모습으로 찾아온다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스릴러, 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

(주의) 본 게시물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말아야 할지, 그 판단은 어떤 기준에 따라 내려야 할까? 그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 목숨을 위협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 내가 선택하고 해야 하는 행동은 과연 무엇일까? 

밀폐된 공간, 그것도 아주 좁은 지하 벙커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스릴러 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이 질문에 대한 이야기다.


포스터의 저 말은 아주 적절하다: Monsters  come in many forms 


이 영화는 사실 2016년 4월에 개봉했던 영화다. 자타공인 떡밥장인 J.J. 에이브람스가 제작한 <클로버필드> 시리즈의 스핀오프라고 하여 개봉 당시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고, 전작의 세계관을 과연 밀실 스릴러 안에 어떻게 잘 녹여냈을 것인지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기도 하다. 스릴러를 좋아하지만 극장에서 보는 데는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한 타입이기 때문에(눈을 가리느라 못 보고 놓치는 순간들이 대부분인지라 집에서 편안한 관람을 하는 게 더 적합하다) 이 작품을 보기 위해 극장 나들이를 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클로버필드> 시리즈의 팬이었던 지인을 따라 우연한 기회에 입문하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는 그 시리즈와 전혀 상관 없이도 볼 수 있는, 그리고 굉장히 신선한 충격과 떡밥들을 안겨주는, 맛깔나는 스릴러물이었다. 



영화는 주인공 미셸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남자친구와 싸운 뒤 급하게 뛰쳐나온 미셸은 길에서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알 수 없는 지하공간에서 깨어난다. 깨어난 그녀는 자신의 발에 족쇄가 채워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이 그녀를 구해줬다고 주장하는 하워드라는 인물을 맞닥뜨린다. 하워드는 외계인의 침공에 의해 지구가 오염되었고 이곳 지하 벙커만이 유일한 안전지대이며 살기 위해서는 절대로 문 밖을 나가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런 하워드를 구원자로 여기며 따르는 에밋은 아무런 의심 없이 자발적으로 이 공간 안에 갖혀 있고, 미셸은 그런 하워드를 신뢰할 수 없어 탈출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과연 하워드는 정말로 미셸을 구해준 사람일까? 문 밖은 정말 공기가 오염돼 살 수 없는 공간일까? 외계인은 정말로 존재할까? 아니면 하워드는 신뢰할 수 없는 미치광이이며, 미셸과 에밋은 이 지하벙커에 감금되어 있는 것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질문들이 떠오르게 되고, 말 그대로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된다. 


에밋, 미셸, 그리고 하워드의 모습. 주인인 하워드의 덩치가 가장 크고 완력도 가장 센 것은 굉장히 상징적이다. 


영화는 밀폐된 공간에 갖힌 세 사람 사이의 긴장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바깥의 장면들이 종종 등장하지만, 상영 시간의 90퍼센트 정도는 밀폐된 지하실 안에서 벌어진다. 때문에 오히려 더 긴박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상황들이 연출된다. 배우들의 표정 하나하나, 몸짓 하나하나를 숨을 죽이고 바라보고 분석하게끔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을 연기한 세 배우들의 연기력은 매우 훌륭하다. 여러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연기력을 충분히 인정받아온 존 굿맨(하워드 역)의 연기력 뿐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지만 발군의 연기력을 선보이는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미셸 역)과 뉴스룸 시리즈로 국내에서는 얼굴이 알려져 있는 존 갤러거 주니어(에밋 역)의 연기도 훌륭하다. 이들의 연기로 인해 몰입감은 더욱 고조되며, 세 명 사이에서 일어나는 긴장과 공포를 더욱 극대화하는 역할

을 한다. 


강인한 여전사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여러 가지 떡밥과 복선을 던지고 있기 때문에,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그다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특히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들이 인상적이다. 여주인공의 심리를 따라 영화를 관람하기 때문에 여주인공이 탈출에 성공할 때까지도 하워드가 여자들을 납치해 놓고 바깥은 오염되었다는 거짓말을 하는 싸이코패스라고 믿게 되는데, 실제 미셸이 벙커를 탈출해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은 외계인이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이런 XX 장난해?'라는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게 만든다. (이 시간쯤 되면 보통 영화가 끝나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을 숨겨 놓고 있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카피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이어져서 결국 모든 것을 불신하게 만든다. 천신만고 끝에 벙커에서도 탈출하고 외계인도 물리친 미셸은 마지막 장면에서 차를 타고 그곳을 벗어나다가 우연히 라디오 방송을 듣게 된다. 생존자들의 피난처가 마련되어 있는 배턴루지로 오라는 라디오 채널과 의료종사자와 전직 군인이 급하게 필요하다는 휴스턴의 지원요청 채널을 연달아 들은 후, 배턴 루지와 휴스턴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던 미셸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휴스턴을 향한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마지막 장면의 해석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세 가지 해석 모두 일리가 있다고 보는데, 하나는 강인해진 미셸이 문제에 맞설 용기를 갖게 된다는 해석이다. 극중에서 여러 번 언급되고 미셸 본인의 입을 통해서도 설명되지만, 미셸은 그동안 문제를 정면으로 맞부딪쳐 해결하기보다는 회피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극 초반 남자친구와 싸우고 황급히 집을 나올 때에도, 남자친구의 말을 통해 '문제를 회피하려 하지 말고 맞부딪쳐야 한다'라는 말이 나온다. (정확하게 명시되지는 않으나) 미셸은 가정폭력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소녀로, 폭력에는 굴복하고 불리한 상황은 회피하는 경향을 가지고 살아왔던 여자였다. 영화는 그런 그녀가 지하 벙커에 갖히는 극단적 상황을 겪으며 어떻게 변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그리고 있다(물론 이 주제의식이 매우 강하게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는다). 영화 말미 탈출에 성공한 그녀는 피난민들이 모여있는 피난처로 갈 것인지, 아니면 군인과 간호사가 필요한 휴스턴으로 향할 것인지 잠시 고민하다가 휴스턴을 택하고, 보다 강하게 현 상황에 맞설 준비를 한다. 기존의 문제를 회피하고 도망쳤던 미셸의 성향으로는 보다 편하게 외계인을 피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인 배턴루지를 택했어야 하지만, 벙커에서의 경험을 통해 오히려 강하게 부딪혀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해석은 라디오 채널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미셸이 향해 가는 휴스턴 쪽의 먼 풍경이 비춰지는데, 어두운 밤하늘에서 번개가 칠 때 잠시 거대한 외계비행체가 순간 비춰진다. 이 때문에 라디오 채널이 생존자들을 낚기 위한 외계인들의 방송이었다는 설명도 있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 설명은 허무맹랑한 소리로 느껴질수도 있으나, 영화를 보는 내내 불신의 분위기에 억눌려 있던 관객이라면 누구나 으레 유사한 설명이 머릿속을 스쳐가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덧붙이는 세 번째 해석은 '아무도 믿을 수 없는' 미셸이 피난처보다는 격전지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인데, 피난처였던 지하 벙커에서 벌어졌던 불신과 공포, 살인에 진절머리가 난 미셸이 차라리 외계인과 맞서 싸우는 것을 더 쉽다고 여기고 휴스턴을 향해 가게 된다는 설명이다. '외계인보다 인간이 더 무섭다' '귀신보다 인간이 더 무섭다' 이런 비슷한 설명이라고나 할까. 실제로 영화의 90퍼센트 이상이 인간인 하워드와의 신경전에 초점을 맞췄던 것을 생각해 볼 때, (그리고 탈출한 미셸이 생각보다 쉽게 외계인들을 죽였던 것으로 볼 때) 이 설명 역시 일견 타당성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영화의 카피가 말하듯 '괴물은 항상 예상 밖의 모습으로 찾아온다(Monsters come in many forms)'. 이때 괴물은 문 밖에 있던 외계인도, 오염되어 있는 공기도 아닌 벙커 안의 하워드를 지칭하는 것이고, 그의 삐뚤어진 욕망과 숨겨진 속셈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나저나 다시 생각해도 심장이 쫄깃해진다


문득 개봉한 지 일년도 더 된 시점에 이 영화가 생각난 것은, 아마도 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가 주는 잔상과 영향력이 이처럼 강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개인적으로도 스릴러물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폐쇄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격한 감정들을 스릴러로 섬세하게 엮어 놓은 작품. 그리고 일견 괴랄한 엔딩이기는 하나, 동시에 열린 결말로 인해 관객에게 해석하는 재미를 심어 주는 작품이다. 본 작품을 극장에서 다시 만나기는 어렵겠지만, 긴 연휴가 무료하다면 한번쯤 스릴을 줄 수 있는 이 영화를 찾아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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