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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07. 2017

유일하게 나를 알아준 당신

음악으로 기억되는 사랑의 순간, 영화 <원스>

(주의) 본 글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순간은 사실 순식간에 찾아온다.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의 미소가 눈부시게 아름다울 때. 왠지 그 사람의 뒷모습이 씁쓸해 보이고, 초라한 어깨를 보듬어 주고 싶을 때. 혹은 그 사람이 누구보다도 빛나 보일 때. 이전까지와는 다른 모습이 멋져 보일 때. 혹은 어느 날 갑자기 그냥 우연히, 그렇게 사랑의 순간은 어느 날 갑자기 순식간에 찾아온다. 그래서 모든 사랑은 그 순간에 가장 찬란하다. 영화 <원스>는 그 찬란한 사랑의 순간에 대한 영화다.


이미 우리에게 유명한 '음악' 영화 <원스>


사실 이 영화는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극찬을 받았던 영화다. 개봉 당시 선댄스 영화제와 더블린 영화제에서 각각 관객상을 수상하며 2007년 최고의 영화라는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한몸에 받았던 이력이 있기도 하다. 저예산 독립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흥행성적을 거두며 연달아 '재개봉'을 하기도 하고, 뮤지컬로도 제작되며 콘텐츠 가치를 입증해낸 영화이기도 하다. 남녀의 만남 그리고 헤어짐이라는 단순한 스토리라인과 저예산 독립영화라는 페널티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스>가 이렇게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영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건 빛나는 사랑의 순간을 음악을 통해 아름답게 풀어낸 감독의 재량 덕분이다. 일견 정적이고 투박해 보이는 화면도, 단순한 스토리도 아름다운 OST의 향연 앞에 녹아내리고, 관객의 마음은 이들의 사랑 앞에 무력해진다. 영화 자체는 몰라도 영화의 OST는 아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이 영화의 음악들은 모두 아름답고, 훌륭하다. 특히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던 이력이 있는 감독 존 카니는 물론, 남자주인공을 연기한 글렌 한사드 역시 영국 최고의 실력파 인디밴드 '더 프레임즈(The Frames)'의 리드보컬이며, 여주인공인 마르케타 이글로바 역시 체코 출신의 뮤지션이었던 만큼 이들이 뭉쳐 만들어낸 <원스>의 곡들은 한 곡 한 곡이 모두 명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영화는 평범한 청소기 수리공인 '그'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초라한 거리 음악가로 활동하며, 낮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노래를 들어 주지 않기 때문에 밤에만 자신의 노래를 부른다. 어느 날 그는 그 노래 속에 숨겨진 남자의 음악성을 한눈에 알아봐주는 '그녀'를 만난다. 그의 음악을 응원해주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의지가 되어주는 그녀 덕에 그는 용기를 얻게 되고, 런던에서의 오디션을 위해 음반을 녹음하기로 결심한다. 음악을 통해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호감을 느끼게 되고, 음반이 점점 완성되어 갈수록 서로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음반을 만들어 갈 수록 그들의 감정은 더더욱 깊어가지만, 그는 헤어진 연인을 만나러 런던으로 가기로 되어 있고, 그녀는 아이와 함께 헤어진 전남편을 기다리는 상황. 결국 그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뒤로 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사랑의 고백이나 직접적인 표현, 혹은 키스신 한 번 없이도 영화는 그들이 얼마나 깊이 서로를 사랑하는지를 설명한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사랑의 의미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결국 사랑이란 남들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상대방에게서 발견하는 것, 그리고 남들이 알지 못하는 그 반짝거림을 제대로 바라봐주는 것. 그 반짝거림이 더더욱 반짝일 수 있도록 옆에서 북돋아 주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상처를 딛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세상 모두가 몰라준다 해도 나를 알아주는 단 한 사람, 그 사람과 나누는 순간들이 바로 사랑의 순간임을 다시금 되새긴다.



이 영화는 '음악 영화'로 종종 분류되는데, 이는 영화 속에서 음악이 매우 중요한 매개체이자 스토리라인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와 그녀는 음악을 함께 만들며 급격하게 가까워지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음악들이 등장한다. 아일랜드 토박이인 남자와 체코 출신의 이민자인 여자가 서로 다른 언어와 서로 다른 배경, 서로 다른 국적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질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을 연결해주는 '음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음악은 모든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언어라는 말이 있듯, 서로에 대한 사랑을 직접적으로 고백하지 않음에도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들은 소통해 나간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 역시 음반의 완성과 함께 절정에 이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은 그 음반 안에 머무른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음악을 통해 노래했기 때문에 그 사랑을 현실이라는 공간으로 끌고들어오는 대신 음반 안에 박제해두는 방식을 택한다.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을 의미하는 하나의 상징물이 그 시절 그들이 함께 만든 '음악'이 되어주는 것이다.  


가장 힘든 순간,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서로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줬던 그들의 사랑은 그래서 반짝거렸다.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받고 별볼일 없는 청소기 수리공으로 살아가던 남자도, 부양해야 하는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던 여자도 결국 서로의 아픈 상황을 보듬어주는 위로와 안식으로써 서로를 받아들인다.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인 <Falling Slowly>의 가사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마지막 부분에서 반복되는 'Falling slowly, I'll sing along your melody. I'll sing along (천천히 당신의 노래를 들려줘, 내가 함께 할 테니)'는 노래를 통해 사랑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렇게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사랑을 한 것은 언제인지, 다시금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게끔 했다.


take this sinking boat, I'm pointing home, we've still got time


음악영화이기 때문에, 그리고 OST가 모두 흡입력을 가진 곡들이었기 때문에 <원스>는 이후 뮤지컬로도 만들어졌지만, 개인적으로는 뮤지컬보다 영화가 더 섬세한 감정을 잘 전달하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뮤지컬만 봤을 때는 뜬금없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스토리라인이 빈약하기 때문. 이 영화는 스토리라인 대신 남녀 주인공의 섬세한 감정과 그에 어울리는 OST들을 따라가야 하는 작품인데, 뮤지컬로 옮겨지면서 그런 섬세함이 조금 무뎌진 경향이 있었다. 때문에 <Falling slowly>를 비롯한 유명한 <원스>의 OST들을 감상하는 데는 영화를 찾아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문득 <원스>가 보고 싶어져서 다시 이 영화를 찾아보면서 정보들을 둘러봤는데, 2007년에 개봉한 영화였다는 게 매우 놀라웠다. 그렇다면 개봉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얘긴데, 언제 이렇게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는지. 개인적으로는 2014년에 개봉했던 감독의 <비긴 어게인>보다 전작인 <원스>가 섬세하고 풋풋한 감성을 더 잘 그려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할리우드 영화였던 덕에 캐스팅도 음악도 <비긴 어게인>이 더 화려했지만, 떨리는 사랑의 순간을 영화에 박제해 낸 것은 <원스>쪽이 더 가깝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그렇기 때문에 10년이 지난 지금도 첫사랑이 생각나는 것처럼 이 영화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은 아닐까. 2017년 11월 재개봉 예정이라고 하니, 10주년 기념으로 한번 더 극장에서 이 영화를 감상해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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