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I의 #changedestiny 캠페인을 보며
나는 스물 세 살이 되었을 즈음부터 어른들로부터 '여자의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같다'라는 우스갯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여자의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같아서, 23일과 24일부터 인기가 붙기 시작해 크리스마스 당일인 25일에는 찾는 사람들이 절정에 달하고,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26일부터는 아무도 찾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 말이다. 그 이야기가 전달하는 '교훈'이란 결국,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그 가치가 점차 떨어지고 그렇기 때문에 빨리 짝을 만나 '결혼'을 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로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속으로 반쯤은 '정말 그런가' 싶었던 적도 있었고, 나 스스로도 그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공유하며 '어른들은 이런 소리를 한다'고 아무 생각 없이 웃어넘겼던 때도 있었다.
스물 네 살에는 마주치는 어른들로부터 '지금이 가장 예쁠 나이인데, 만나는 남자친구는 있니?'라는 오지랖 넓은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고, 그때도 역시 별 생각이 없었다. 어른들은 꼭 그 말 뒤에 그러니 빨리 남자를 만나 결혼하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붙이곤 했다. 그때만 해도 아직 아무 생각이 없어서, 오히려 정말 지금이 내 인생에서 정말 예쁜 나이이긴 한가 보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지나갔던 적도 많았다. 스물 다섯이 되면서부터는 결혼정보업체로부터 걸려오는 일종의 스팸 전화를 받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 나는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었던 때였다. 내 나이와 직업을 알게 된 그들은 '여자는 너무 공부를 많이 하는 것도 단점이니, 더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짝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며, 더 나이 들기 전에 결혼 정보업체를 통해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라고 했다.
스물 여섯이 된 지금은 택시를 탈 때가 제일 싫다. 택시를 탔다 하면 운전기사 분들로부터 '아가씨는 남자친구 있느냐'는 질문부터, 돈 많은 남자 얼른 만나 결혼하라는 소리까지 별의 별 소리를 다 듣게 된다. 적당히 얼버무리기 위해 허허 웃어주면 어떤 날은 자기가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니 우습게 생각하지 말고 빨리 결혼이나 하라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듣고 있어야 했다. 그런 태도에 질려서 어떤 날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을 적당히 회피하곤 했는데 그러면 또 자기를 우습게 본다며 화를 내곤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모든 이야기는 정말로 무섭고 잔인한 소리다. 곱씹어 생각할 수록 맨정신에 그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한 소리라고 하기에는 끔찍하고 무섭다.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여자들이라면 다들 한번쯤 살면서 저런 소리를 들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결혼하지 않은 채 서른이 넘어가면 금방이라도 시들어 쭈그렁 할머니가 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사회의 목소리를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계속해서 되풀이해 들어오고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아지며 결혼 적령기는 점점 올라가고 있다는데, 여자의 나이를 재단하는 우리 사회의 잣대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이 문제에 대해 단호하게 '여자의 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서른이 넘으면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식품처럼 취급받는다'며 고충을 토로하는 남성을 아직 단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SKII의 캠페인은 처음 봤을 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SKII는 지난 2015년부터 'Change Destiny'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전개해 왔다. 자신의 삶에 대해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변화시키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캠페인은 지금껏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어 왔으며, 그 과정에서 때로는 여성들의 성공 스토리를, 때로는 여성들의 꿈 이야기를 다루기도 했다. 올해 발표된 새로운 캠페인은 여성의 나이에 대한 내용으로, 아시아 여성들이 겪고 있는 나이에 대한 강박관념을 다루고 있다. SKII의 자체 조사 결과 아시아 여성 10명 중 2명만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사실에 대해 괘념치 않는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나머지 8명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사실에 대해 불편하게(uncomfortable) 느끼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느끼는 압박감이나 사회적 분위기, 또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결혼해야 한다는 불안감 등이 가장 대표적인 이유로 꼽혔다.
영상은 서울과 상하이, 도쿄에서 1987년 세 명의 여자아이들이 태어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태어날 때부터 여자아이들의 손목에는 무언가가 새겨져 있고, 이것은 그녀들의 '유통기한'을 의미하는 숫자들이다. 이 숫자들은 그녀들의 생년월일과 서른 살이 되는 날짜들로, 살아가는 동안 그녀들의 손목에 점점 더 선명하게 새겨진다. 그녀들은 자라면서 점차 그 숫자들을 의식하게 된다. 때로 남자아이들에게 그것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긴 소매로 숫자를 감추고, 남들이 볼까봐 애써 손목을 가리기도 한다. 사귀는 남자친구가 그 숫자에 관심을 보이면 여자들은 숫자를 보여주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사회는 여자들에게 '결혼에도 때가 있다'며 더 늦기 전에, 다시 말해 그녀들의 유통기한이 다하기 전에 결혼할 것을 끊임없이 종용한다. 주변의 친구들이 모두 때를 맞춰 결혼하는 동안 짝을 만나지 못한 여자들은 마치 뒤쳐지는 것 같은 조바심을 느끼고, 순간순간 움츠러든 자신들을 발견한다. 사회의 잣대로 인해 계속해서 위축되는 자신들을 발견하던 어느 날, 그녀들은 그 잣대에 당당하게 맞서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결심하는 순간 손목에 새겨진 '유통기한' 표시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그제서야 여자들은 그녀들을 구속하는 실체는 그 어디에도 없으며, 생각의 변화를 통해 관념적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광고의 마지막은 'You are more than your age. Don't let others put an expiry date on you. (당신은 나이로만 평가할 수 없다. 다른 이들에게 '유통기한'을 붙일 권리를 주지 말아라)'로 끝난다.
어디서 많이 들은 얘기 아닌가? 나는 사실 SKII의 이 동영상을 보면서 순간 등골이 서늘했다. 거짓말 안 보태고 '나'의 이야기라고 느낀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SKII의 이번 캠페인 컨셉은 우리의 관념 속에만 있던 '여자 나이 서른'이라는 마지노선을 형상화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서른이 되는 날짜를 손목에 달고 태어난 여자들은 그 날짜가 되면 세상이 끝날 것처럼 전전긍긍하며 살아가고, 어떻게든 그 전에 결혼을 해야만 한다고 사회로부터 끊임없이 주입받으며 살아간다. 때문에 영상 속에서 서울, 상하이, 도쿄에 사는 세 여자들은 그 잣대를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녀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녀들 스스로이다. 남을 신경쓰지 않겠다고 다짐한 순간 그 잣대는 사라지고 여성들은 다시금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러나 SKII의 이번 캠페인은 뭉클하면서도 씁쓸하다. 결국, 평생을 남의 잣대를 신경쓰며 '유통기한'을 전전긍긍 걱정해야 했던 그녀들은 스스로 마음먹는 것 외에는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광고 속 그녀들은 스스로를 나이와 같은 사회적 잣대에 가두지 않겠다고 다짐함으로써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있었지만, 현실의 우리에게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이야기이다. 수십 년간 그 사회적 기준 속에서 살아온 우리들 스스로와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바꾸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 현실에서 한 여자는 '유통기한'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다짐할 수 있으나, 그렇게 다짐하는 그 순간 이후부터 그녀를 재단하고 평가하고 얽매이는 수많은 다른 눈들과 맞서 싸워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순간 자신의 신념을 시험받고 공격당하게 될 것이며, 혹은 그 시련들을 이겨낸다 할지라도 결국에는 '노처녀'라는 딱지가 붙어버리게 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후 그녀가 하는 모든 행동들은 '노처녀 히스테리' 내지는 '노처녀의 횡포' 정도로만 취급받고 폄하받게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 결혼하지 않고 나이든 여자들의 위치는 딱 그정도이기 때문이다.
여자의 나이가 그토록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 이유에 대해 혹자는 생물학적 원인을 들먹이기도 한다. 여자 나이 서른을 가지고 노처녀라는 딱지를 붙이고, 그 전에 결혼을 해야 한다고 종용하는 이유는 생물학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이다. 임신이 가능한 나이가 정해져 있으며, 그 나이가 지나면 임신이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다. 결국 여성의 나이가 중요한 것은 '결혼'을 위해서인 셈이다.
그러나 임신을 이유로 여자에게 사회적인 굴레를 씌우는 것은 여자를 오로지 임신과 출산을 위한 도구로만 한정하고 그 굴레 안에 개인의 정체성은 지운 채 여성들을 가두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임신과 출산은 오로지 그 당사자의 개인적 선택에 의해 주체적으로 좌우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녀의 생물학적인 나이가 '유통기한이 다 되어 간다고 해서' 주변인들이 그녀를 탓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서른이라는 나이를 넘기기 전에 결혼해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관념을 오랜 시간 주입받아온 여성들은 점차 조바심을 느끼게 되고, 때문에 스스로 삶의 방향을 선택하고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는 주체성을 상실하게 된다. '여자 고스펙은 장애물, 골드미스 마지노선은 서른셋' 같은 뉴스 제목이 아직도 넘쳐나고 있는 사회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서둘러 조건 맞춰 결혼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 너무 흔하디흔한 스토리 아닌가.
한번은 어떤 자리에서 어느 어른으로부터 '너무 배우고 나이만 먹으면 이제 너 찾는 사람 없으니 눈 좀 낮춰서 시집이나 가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심지어 그분도 여자분이셨는데, 그분은 웃으며 이 모든 게 널 위해 하는 소리니 쓰게 듣지 말고 빨리 남자친구 만나 결혼하라고 덧붙이셨다. 평소 같았으면 그저 웃고 넘어갔겠지만, 그날따라 그런 소리를 듣고 앉아있는 스스로가 너무 우스워 말대꾸처럼 한 마디 덧붙이고 말았다.
'제가 나이 드는 동안 남자들은 안 드나요?'
그리고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자들은 나이들어도 괜찮고 오히려 지위가 올라가니 더 낫지만, 여자는 나이 들수록 점점 입지가 줄어드니 빨리 시집을 가야한다'는 소리가 날아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분이, 혹은 우리 사회가 여성을 보고 있는 시각을 한번 더 느낄 수 있었다. 이십대 후반이 될 수록 나의 꿈과 앞으로의 계획, 혹은 사회적 지위에 대한 질문보다는 결혼, 임신, 출산에 대한 질문을 더 많이 받게 되는 것 역시 유사한 맥락이다. 점차 나이가 들수록 개인으로서 여성은 지워지고 아이를 낳고 키우기 위한 여성으로서의 역할만 남는다는 사실이 순간적으로 다시금 느껴졌다고나 할까. 그리고 한번 더, 점차 '마지노선'에 가까워질수록 이런 말들이 일상이 되어갈 것이라는 사실이 더욱 끔찍하게 다가왔다.
그 날은 그분의 그런 말에 그저, '때 되면 좋은 사람이 있겠죠' 하고 웃어 넘겼지만 지금도 그 의문은 나를 괴롭히고 있다. 왜 남성은 나이들수록 가치가 올라가고 여성은 나이들수록 가치가 떨어진다고 말하는 걸까? 사회적으로 출세하고 성공한 남성은 나이가 들었다 할지라도 젊고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할 수 있다는데, 사회적으로 출세하고 성공한 여성은 반대로 젊고 건강한 남성과 결혼할 수 있다는 생각은 왜 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 사회적으로 출세하고 성공한 여성은 결혼을 하지 않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는 것일까? 나이가 들어 가면 점점 눈을 낮추고 조건을 깎아 결혼해야 한다는 말들을 왜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것일까? 오랫동안 사회적 관습으로 자리잡아 온 관념이라면 그것이 무조건 맞는 것인가?
결혼이 가지는 의미는 시간에 따라 점차 변화해 왔다. 여성의 삶에서 결혼이 절대적인 가치를 지녔던 과거를 지나, 여성이 사회적 활동을 하는 비율이 늘어나면서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의 의미를 조금씩 가지기 시작했다. 특히 경제활동의 측면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온전히 의지해야 했던 과거에는 여성들의 건강과 외모, 나이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가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특히 신체적으로 힘이 약했던 여성들은 남성에게 의지하여 자신들의 삶을 꾸려 나가야만 했고, 때문에 여자 나이 서른은 과거 그녀들에게 있어 중요한 마지노선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점차 고도화되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노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 그리고 동시에 최근 들어 맞벌이를 통해 남자와 여자가 모두 경제활동에 참여해야만 겨우 살아갈 수 있는 사회경제적 환경이 되어버리면서 - 더 이상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있어 남성들에게만 의지하지 않게 되었다. 여기에는 여성들이 점차 더 고등교육을 받게 된 영향력도 한몫 할지도 모른다. 복합적인 사회적 상황과 변화들이 맞물려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때문에 과거에 가지고 있었던 통념들이 이제는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내가 서른이 되었을 때, 세상은 지금보다 조금 달라져 있었으면 좋겠다. '결혼은 언제 할 거니?'라는 질문을 받기보다는, '앞으로의 꿈은 뭐니?'라던가 '얼마나 행복해?' 또는 '이 다음엔 뭘 할거야?' 같은, 결혼 외의 다른 질문들을 좀 더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때가 되었다는 이유로 촉박하게 시간에 쫓겨 얼렁뚱땅 누군가와 대충 결혼하기보다는, 언젠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 이유가 풍부한 결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사회적 압박이 크게 작용하기보다는 내 주체적 선택에 의해 행동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결혼은 물론 신성한 것이고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지만, 결혼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압박감에 짓눌려 스스로를 잃게 되는 순간은 오게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지키는 과정에서 외부의 압박에 의해 스스로의 신념을 놓게 되는 날은 오지 않기를, 그 무엇보다도 열렬하게 소망한다.
그런 의미에서 SKII의 이번 캠페인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SKII의 이번 캠페인 영상을 통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되기를 바란다. 성별의 문제를 넘어 전 세대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금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으면 좋겠다. SKII의 캠페인의 슬로건처럼, 결국 세상을 바꾸고 운명을 바꾸는 것은 우리들 스스로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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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마이뉴스 기사로도 함께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