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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Oct 18. 2017

매일 마시는 커피값을 모으면 정말 부자가 될까?

'탕진잼'이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이유

커피 한 잔이 밥값과 맞먹는 세상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 프랜차이즈에서 구매하면 4,100원.

한때 '짠테크'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생활 속에서 짠돌이가 되어 작은 부분에서 소소하게 돈을 아끼는 것이 재테크의 첫걸음이라고 하던가. 아침 출근길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을 프랜차이즈 가게에서 사면 4,100원. 하루에 두 잔을 마시면 8,200원. 그걸 한 달을 아끼면 164,000원을 아낄 수 있다는 거다. 동일한 논리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에서도 여러번 반복된다. 야식값을 아껴서 적금을 들고, 데이트 비용은 한 달 15~20만원을 넘지 말고, 헬스장을 등록할 값을 아끼고 걸어다니며 살을 빼라는 식이다. 우리는 이런 식의 말들에 익숙하다. 옛 속담에서도 그랬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고. 버는 돈을 조금씩 아끼고 모으다 보면 많은 돈을 저축하게 되니 그때 가서 한 번에 크게 쓰라는 논리인데, 요즘 말로 바꾸면 한 푼 두 푼 열심히 모아 '차를 사고 집을 사라'는 식인 셈이다.


우리는 왜 돈을 모을까

인생 뭐 있어? 왜 그렇게 살아야하지?

그렇게 살다 보면 갑자기 근본적인 의문에 부딪힌다. 요즘같은 취업난에 취업도 별따기인데다가 월급은 쥐꼬리는 커녕 손톱만큼도 안 되게 적고, 한 달에 저축할 수 있는 돈도 얼마 되지 않는다. 열심히 모아 봤자 1억이라는 돈을 모으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 알 수가 없는데, 서울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요샌 평균 6억을 찍는다고 한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서울 시내, 아니 서울 근교에도 전셋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소리도 들린다. 지금은 아니지만 몇 년 사이 결혼도 해야 할텐데, 결혼 자금으론 또 별도로 3~4천이 든단다. 매일 마시는 커피값을 몇 년을, 아니 몇십 년을 아껴야 대체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런지 알 수가 없다. 아니, 실은 회사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야근을 시키니 돈을 벌어도 쓸 데도 없다. 재테크에 소질이라도 있으면 모르지만 그런 방면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다. 돈은 버는 족족 겨우겨우 적금을 들 뿐이고, 학자금대출이 있는 경우라면 이자를 메꾸면서 원금을 갚아나가는 데 월급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을 테다. 돈을 벌기 시작했으니 부모님에게 용돈이라도 조금 드려야 할 것이고, 경조사 시즌이 돌아오거나 추석 설날 명절 때면 또 그때대로 돈이 나가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아무리 발버둥을 쳐봤자 나아지는 기미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하루에 마시는 커피 한 잔, 점심값 몇 천 원을 아껴서 정말로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탕진잼'?

그래서일까, 길고 긴 불황이 계속되고 있다는데도 이번 추석엔 백만 명이 넘는 인파가 해외여행을 갔다고 한다. 말 그대로 ‘탕진잼’이다. 요즈음 청춘들은 집 살 돈은 없어도 맛있는 것 먹고 여행 갈 돈으로 월급을 탕진한다. 소소하게 탕진하는 재미를 뜻하는 이 단어는 최근 소비 패턴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른바 작은 사치라고도 불리는데, 유사한 단어로는 시발비용이나 홧김비용이라고도 일컬어진다. 이름이야 어찌 되었든, 알뜰하지 않은 방식으로 소소한 금액들을 낭비하는 요즘의 소비 패턴을 일컫는 단어들이다.


뒤집으면 이 단어들은 그만큼 절박한 청춘들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소위 말하는 삼포세대, 오포세대들이 경제적으로 인생의 많은 부분들을 포기하고 살 수밖에 없게 되면서 작은 것에서나마 행복을 느끼고 소비를 하려 하는 현상이 최근 들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월급도 나왔으니 옷이라도 실컷 사겠어......!

그렇게 살면 또 어때서?


이 자조적인 단어들은 누군가에게는 일견 씁쓸한 사회 현상을 비추는 의미일수도 있고, 또는 누군가에게는 미래를 그리지 않는 최근의 젊은 세대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탕진잼’이 우리 삶에 가져다주는 오묘한 생기를 좋아한다. 사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아침 출근길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 주는 것은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다. 하루종일 일에 시달려 지친 등을 토닥여 주는 것은 퇴근길 무턱대고 들른 바에서 마시는 생맥주 한 잔. 혹은 좋아하는 연예인이 발표한 한정판 음반, 꼭 보고 싶었던 뮤지컬 티켓, 굳이 필요 없는 건 알지만 꼭 사고 싶었던 캐릭터가 그려진 충전기. 친구와 만나서 충동적으로 끊은 다음 달 출국 예정인 비행기표. 구매 후 2주면 곧 무용지물이 될 각종 운동기구와 미용기구들. 제아무리 힘든 일이 있었던 날이라 할지라도 지름신과 함께라면 어깨가 으쓱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을 메우고 있는 것은 실은 이런 소소한 순간의 사치들이다.


좋은 곳에서 좋은 시간을 즐길 수 있다

탕진잼이 우리 삶에 여유를 가져다주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소소한 부분에서의 사치를 통해 외부로부터 받은 좌절감을 해소하는 동시에 자기 삶에 대한 통제감을 보다 확보하게 되기 때문일수도 있고, 순간적으로나마 사치를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더욱 높게 평가하게 되어 삶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것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삶의 긴장과 갈등으로부터 벗어나 사회적, 정서적 도피처로써 작은 사치를 선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언제 올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의 가치보다 눈에 보이는 확실한 현재의 가치를 더욱 중시하는 세태로 변해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우리는 그저 지금 당장, 조금 더 좋은 곳에서 조금 더 좋은 이들과 조금 더 많은 시간들을 즐기고 싶을 뿐이다. 누가 그랬듯, 삶은 단 한 번 뿐(you only live once)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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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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