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드는 생각 01
때때로 사는 게 참 별 거 아니다 싶을 때가 있죠.
어느 날은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마구 발버둥치다가도, 아주 약간 더 높은 연봉과 아주 약간 더 넓은 집과, 아주 약간 더 나은 삶이 대체 다 무어냐 싶어져서 하던 걸 다 내던지고 어디로든 숨어버리고 싶은 날이, 모두에게 다들 한번씩은 있다고 믿습니다. 숨어봤자 멀리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냥 무작정 하던 일을 다 팽개치고 인천공항으로 떠나버리고 싶은 날.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그냥 방 안에 쳐박혀서 하루종일 침대 속에 웅크리고 싶은 날. 저에게도 그런 날들이 찾아왔습니다.
혹자는 그것이 건강한 일이라고 말하더군요. 누구든 슬럼프가 있는 법이고, 누구든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다면서. 그런데 저의 문제는 그런 생각이 너무 자주 찾아온다는 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는 이런 제 성격을 쉽게 질리는 성격이라 말할 것이고, 누군가는 끈기가 없다고 혹평할 수도 있겠지만, 여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평소의 일들을 묵묵히 잘 견디던 어느 날, 그렇게 갑자기, 그런 순간들이 찾아왔더랬습니다.
아무래도 슬럼프를 견디는 방법은 모두 다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면으로 슬럼프를 마주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혹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회피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겠죠. 한동안 저는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맛있는 것을 먹고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 모든 근심사를 나누는 순간들이 있었더랬죠. 그리고 그 모든 근심과 걱정을 술잔에 담아 마시다 보면, 문득 그런 걱정들이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은 순간들이 찾아왔었거든요. 그렇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사람들과 어울려 술 한잔을 기울이다가도, '지금 당장 객사한다 해도 별로 삶에 미련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아, 그렇지만 오해는 하지 말아 주세요. 그렇다고 그렇게 우울하거나 그렇게 살기 힘들거나, 딱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일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거든요. 그런데도 그냥 가끔 그런 기분이 들 때가 누구나 한 번쯤은 있는 거 아닐까요.
누군가에게는 슬럼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시간. 한동안의 공백기가 저에게는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지, 내가 정말 잘 하는 일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인생을 꾸려나가야 하는지. 아무리 고민해도 늘 답을 찾기는 어려운 그 고민들이 폭풍처럼 지나가는 시기가 드디어 끝이 난 것 같아요. 아직도 정답은 찾지 못했지만, 다만 폭풍이 끝났으니 이제 뒷처리와 재정비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쉬는 동안 대신 많이 먹었어요. 인스타그램에 먹는 사진들과 좋은 곳에 간 사진들을 많이 올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고 저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하는 시간들을 가지려고 노력했었습니다. 쉬는 동안 갔던 좋은 곳들을 조금 정리하며 앞으로는 제가 좀더 잘 하는 것들에 집중해 보려고 해요. 보다 자주 글로 여러분들을 찾아뵐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더더욱 좋겠죠.
그러니까 저, 다시 돌아왔습니다 :)
기다려 주셨었다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