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면 달라질 줄 알았던 어느 날들에 대한 기록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의미없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약간 이런 식이다. 어느 날은 회사의 모든 것이 싫어지다가 어느 날은 그 싫어지는 것마저도 무뎌져 버린다. 때때로 누군가와 일을 하고 관계를 맺고 유지하고 신경쓰고, 하는 그 모든 일들이 다 귀찮아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런 날은 나도 모르게 제 삼자의 입장에서 내 삶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게 된다. 그래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었겠지, 그래 그 순간에 그 사람은 그런 행동을 할 수도 있었어. 내가 상처받았던 혹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던 그 순간들을 그렇게 곱씹다 보면, 어느새 그 모든 것들이 대체 다 무슨 의미냐 싶은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어쩌면 그 기분이 아주 가벼운 우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는 수도 없이 떠올렸었다. 사실 나는 어디가 고장난 사람일지도 몰라, 사실 나는 지독히도 망가져 있는 사람일지도 몰라.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할 때면 그 장소가 어디든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두 번째 회사에서 내 사수였던 A과장님은 그런 나를 보며, 'S씨가 지금 너무 많이 힘들어서 그래. 지금 머리끝까지 힘든 감정들이 차올라 있어서 더 그런거야.' 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이 왜인지 또 울컥해서, 그분께 안겨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유도 없이 매일을 울고 다닐 때가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상처받고 또 울고, 울음을 쏟아내고, 멍청이같이 달래주던 사람들의 어깨에 기대 또 웃고. 어느 날은 울다 웃다를 반복해서 그렇게 울다 웃다를 반복하는 내 자신이 별로다 싶다가도 또 어느 책의 제목처럼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었다.
죽고 싶었다고 말하는 건 솔직히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그닥 딱히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열심히 해야하는 이유도, 이 다음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도 전혀 느끼지 못했었다.
이 얘기를 과거형으로 말하는 것은 지금은 울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주체할 수 없게 눈물이 나는 날들은 두 번째 퇴사와 함께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 당시의 내 감정상태는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것이었다. 하루에 열두시간 이상을 같은 장소에 앉아 보내면서, 새벽 두 세시를 예사로 넘기는 야근을 일상처럼 보내면서, 내 속에 가장 먼저 쌓인 것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였다.
그 즈음 나는 아무런 이유 없이 자주 화를 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리고 때때로 내 주변 사람들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오징어를 씹는 것마냥 질겅질겅 분노를 씹어냈다. 꿈 속에서 내일 밀린 일을 하다가 새벽에 깨기를 매일같이 반복하고, 그런 날은 회사에 가서 제일 비싼 점심을 먹었다. 먹고 또 먹고, 간식을 먹고 점심을 먹고, 먹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는 사람처럼 그렇게 매일을 먹었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그렇게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고, 늘어나는 몸무게만큼이나 스트레스도 늘어났지만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곧바로 회사를 그만두지 못한 것은
일상이 매일 우울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우울했지만 순간순간 행복했다. 회사에서 친해진 동료들과 어울려 점심을 먹을 때, 내가 쓴 기사 초안이 칭찬을 받았을 때, 내가 기획한 콘텐츠가 온라인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을 때, 내가 운영하는 SNS 채널이 지난 달보다 아주 약간 발전했을 때. 힘든 일들이 쌓여 폭발할 것만 같은 어느 날 저녁 동료들과 어울려 마신 맥주 한 잔이 기분 좋게 달콤할 때. 그렇게 순간순간 소소한 일상들이 쌓여 그래도 그럭저럭 나는 살 만했다. 아니, 살 만하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한 순간은 생각보다 어이없이 찾아왔다. 열두시 퇴근은 우습고 새벽 1시 2시에 집에 가는 일들이 최소 일주일에 한 번씩은 생기던 그 즈음, 그냥 새벽에 퇴근하는 일상이 릴레이로 이어지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새벽 택시를 타고 3시간 쪽잠을 자러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서 나는 그냥 큰 이유 없이 결심을 했다. '아, 그만둬야겠다.'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했을 때, 회사 동료들과 선배들이 가장 먼저 한 건 내 미래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 따위는 상관없이, 지금 당장 하루하루가 행복하지 않아서 힘들었던 순간들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다.
어쩌면 이번을 끝으로 너는
다시는 이 업계로 돌아오지 못할 지도 몰라.
아무것도 하지 않기엔 스물 여덟은 너무나도 젊은 나이지만, 또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도 조금 늦은 나이라고, 선배들이 말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내 미래를 걱정해 주었던 많은 사람들 중 누구에게도, 내가 너무나도 우울하다는 이야기는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나를 걱정할까봐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보다는, 우울증에 걸린 이상한 사람으로 비춰질까봐 겁이 났다.
내 미래를 걱정해 주는 과장님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나는 회사를 나왔다. 퇴사하는 날, 말로 하기 어려운 후련함이 몰려와 나는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하루종일 사무실을 걸어다녔다. 열 달 동안 정이 든 곳들에, 그리고 열 달 동안 매일같이 하루의 거의 20시간을 부딪히며 함께 살다시피 한 모두에게, 하나하나 인사를 건네고 세상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그곳에서의 10개월을 마무리했다.
나는 회사가 싫었지만,
그곳에서 만난 모든 것들을 사랑했다.
사실 딱 죽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10개월 간 나는 그 장소를 지독히도 사랑했다. 매일 아침저녁 출퇴근을 하면서 목격한 수많은 순간들 때문에 그 골목 그 장소를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낡은 인쇄 기계들이 빼곡히 차 있는 낮은 건물들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골목을 나는 참으로 사랑했다. 높은 유리건물들 대신 3~4층짜리 낮은 건물들 사이로 풍기는 이유 모를 사람 냄새가, 소자본으로 출발해 각자만의 특색을 살린 조그만 가게들이, 그리고 오래된 가게들을 지키고 있는 인정 많은 사장님들이 많은 그 동네를 나는 참으로 사랑했다.
회사에서 만난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가족보다 더 가족 같아진 그들을 나는 아주 많이 사랑했다. 큰 프로젝트를 하면서 우리는 종종 밤을 샜고, 함께 보낸 시간만큼 서로에게 정이 들었다. 회사가 아니라 동아리나 학회 같다는 느낌을 받은 것도 그 즈음이었다.
어쩌면 태어나 다시는 못할 수도 있는 올림픽 준비 과정은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나는 그 안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자랐다. 진부한 꼰대 같지만 그 아픈 순간들이 지나고 보니 다 추억으로 남아 아름답게 마무리됐다.
어쩌면 퇴사했기 때문에 그렇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지금에 와서야 하는 말이지만, 그때 실은 퇴사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지도 몰라, 하는 생각도 어느 즈음 한 번쯤은 해본 적이 있다. 너무너무 힘들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빛이 바래지고 나니,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지도 몰라, 하는 무기력한 순간들로 남았다.
나는 그렇게 일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두 번이나 퇴사를 했다. 두 번의 퇴사를 했지만 첫 번째도 두 번째도, 회사에 대한 불만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게 불안감 내지는 가벼운 우울의 형태로 나타나서, 지내는 내내 나를 괴롭혔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내 퇴사는 드라마틱한 계기가 있지도 않았고, 퇴사 이후의 삶이 180도 달라지지도 않았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은 마치 하루라도 더 출근하면 죽을 것 같이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퇴사 이후 엄청나게 행복해진 것도 아니었다. 딱히 새로운 목표나 완전히 다른 직업을 꿈꾸며 퇴사를 한 것도 아니어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자격증을 따거나 묵혀두었던 꿈을 꺼내들거나 했던 것도 아니었다.
퇴사가 내 삶을 마법같이 바꿔줄 것 같다는
내 기대는, 아주 헛된 기대에 불과했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두 번째 퇴사 이후 나는 결국 일년 반 동안 일했던 경험을 살려 회사에서 알게된 B과장님의 추천으로 새로운 회사에 입사했다. 지금 회사에도 여전히 야근은 있지만, 하루 열 시간 이상을 회사에서 보내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덜 우울해졌다.
그러나 내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마케터로 일을 하고 있고, 여전히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된 사회 초년생에 불과하고, 예전보다 조금의 여유가 생겨 평일 저녁과 주말에 밀린 약속들을 잡는다. 삶은 아주 조금 나아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교훈을 줄 만큼 엄청나게 내 삶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살아남아야겠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며 나약하다고 혀를 쯧쯧 찰 지도 모르겠다. '우리 땐 더 힘들었어. 이정도도 못 버티면 어떡하니?' '괴롭다고 우울하다고 회사 그만두면 회사 다닐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누군가는 이런 얘기를 하며 내 참을성을 탓할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힘든 세상에서 왜 유독 너만 그렇게 힘든 척을 하냐고. 그냥 싫증나고 짜증나고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던 거면서, 뭐 그리 거창한 이유를 붙여 그렇게 힘들었다는 변명을 하냐고.
어떤 사람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또 누군가는 그랬다. 그 누구도 남들의 고통을 그렇게 재단하고 평가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질 수 없다고. 세상 모두가 똑같이 아프듯, 각자의 삶의 무게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남들이 똑같이 아프다 해서, 네 아픔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애써 포장하고 덜어내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누가 그렇게 말해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누군가가 내 어깨를 토닥이며 해준 그 말 덕분에, 나는 오늘도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그 사람 덕에,
나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나처럼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어 스스로를 괴롭히고만 있다면, 우울한 날들이 끝없이 이어지지만 이게 우울인지도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나도 그의 등을 토닥이며 똑같이 말해주고 싶다. 네가 힘들면 도망가도 괜찮다고. 도망가는 것이 그냥 그 순간만 모면하는 방법일지도 모르지만, 이게 완전한 해결책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도망가도 상관없다고.
살아남는 방법이야 어쨌든 살아남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