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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Dec 20. 2017

세상에서 야근이 제일 쉬웠어요

<이제야 수요일> Chapter 1. 야근, 야근, 또 야근

이번주도 야근인가요


나는 야근이 많은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해 ‘야근이 당연한’ 업계에서 일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든 간에 (단기간의) 데드라인에 맞춰 업무를 끝내는 게 가장 중요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대응해야 해서 퇴근 후 업무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당연히 9 to 6는 잘 안 지켜지는 케이스가 종종 발생한다.


회사를 이직한 후 첫 3개월간은 가장 심하게 야근을 많이 했던 기간이었다. 8-9시에 퇴근하면 그날은 빠르게 퇴근한 편이었고 12시를 훌쩍 넘겨 2-3시가 되는 것도 부지기수. 계속되는 야근에 몸과 마음이 지친 팀원들은 점점 날카로워져 갔고 몸 구석구석 어디 안 아픈 데가 없었다. 결국 프로젝트가 끝나자 마자 여러 명이 병원 신세를 지게 되어버렸다.


‘야근공화국’ 월 초과근로 12.7시간, 뉴스1,  2017-12-15


이게 어디 비단 우리 회사 뿐이랴.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평균 월 초과근로 시간이 12.7시간이라고 한다. 여가시간은 평일엔 하루 평균 3.1시간, 주말 평균 5시간이다. 평균을 깎아먹는 우리 같은 업계를 고려하면, 대한민국의 누군가는 이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초과근로를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대체 왜 야근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대체 왜 야근을 하는 걸까. 내가 다니고 있는 업계처럼, 일의 절대량이 많아서 야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상 직장인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있다. 실상을 들여다보니 야근의 양상은 대체로 아래와 같았다.


1. 일의 양이 많은데 짧은 데드라인을 맞춰야 하는 경우

2. 업무 자체가 들쭉날쭉한 경우

3. 일이 없는데 눈치 때문에 퇴근을 못 하는 경우


1. 일의 양이 많은데 짧은 데드라인을 맞춰야 하는 경우

내가 있는 업계는 이 중 1에 속한다. 대체로 광고/홍보 계열이나 방송계통, 디자이너, 개발자, 건축 설계 등의 업계가 이 안에 들어가는데, 이런 업계에 있는 친구들 대부분은 '9시에만 집에 가도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이 꽤 된다.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따라 짧은 데드라인 안에 많은 양의 일을 진행해야 하다 보니 밤샘 작업도 부지기수. 대부분 이 업계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학교 다닐 때부터 과제나 공모전 준비로 밤샘 작업을 한 경우가 많아서 이런 일들이 이제는 익숙한 일상으로 자리잡아 있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밤에 더 작업이 잘된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을 정도....그렇지만 그들에게도 야근은 힘들다고. 대부분 이런 업계는 포괄임금제를 적용해서 야근을 밤새도록 한다고 해도 임금이 어마어마하게 오르는 경우는 없고 (!) 때문에 회사에서 하는 게 힘들면 아예 짐싸들고 집에 가서 작업을 하거나(만약에 이게 가능하다면), 오히려 집 구경을 며칠씩 못하거나(사실 이런 경우가 더 많다)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2. 업무 자체가 들쭉날쭉한 경우

2의 경우는 사실 1과 중첩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출퇴근 시간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거나, 언제 일이 터질지 예측할 수 없는 경우다. 이런 케이스의 경우 일이 미친듯이 몰려들어서 거의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가는 시즌과 일이 별로 없어 한가한 비시즌으로 극명하게 나뉜다. 초반에는 괜찮지만 몇 년간 이렇게 간헐적인 고통이 반복적으로 가해지다 보면 신체 이상증세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케이스로 우리 사무실에도 실려가신 분이...읍읍)


3. 일이 없는데 눈치 때문에 퇴근을 못 하는 경우

3의 경우는 사실 대기업, 그 중에서도 특히 경직적인 사내문화를 가지고 있는 기업들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경우다. 사내에 아직 군대문화가 굳건히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더더욱 그랬는데, 친구 A에 따르면 본인의 할당량을 모두 마쳤는데도 눈치를 보느라 10시까지 퇴근을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친구 B는 팀원들이 다 함께 퇴근해야 (혹은 막내가 제일 늦게 퇴근해야) 하는 문화라서 늘 항상 꼴찌로 퇴근하게 됐다고. 방식이야 어찌 됐던 결국 일이 없는데도 늦은 시간까지 퇴근을 못하고 사무실에 남아 있는 요상한 문화가 결국 한국의 야경 풍경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고 하니, 거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기분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야근이 전문가로서 일에 대한 책임감 내지는 회사에 대한 로열티(?)를 보여주는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마는, 잦은 야근으로 인해 몸과 마음과 (때로는 가정까지도) 망가뜨리고 있는 케이스들을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나로서는 조심스럽게 없어져야 하는 문화라고 생각해 본다. 일이 없으면 집에 가면 될 것이고, 일이 너무 많으면 개인이 일정 시간 내에 소화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주문한 조직 역시도 장기적으로는 시스템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새로운 인력 충원과 적절한 업무 분장, 그리고 유연한 사내 문화가 있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애사심을 가지고 더 열심히 일을 하지 않을까. 일례로 현재 내가 있는 업계는 굉장히 이직과 퇴직이 잦은 편인데, 과도한 업무량과 줄기차게 이어지는 야근 때문에 지친 경우가 꽤 많았다. 좋은 곳으로 이직하든 아니면 아예 퇴직을 하든, 더 나은 환경을 찾아서 떠났다는 것만은 모두 같았다. 장기적으로 연륜이 쌓인 좋은 인재들이 업계를 나가지 않고 오래도록 좋은 성과를 내도록 만들고 싶다면, 업계 자체가 보다 나은 환경을 제공해 주기를 소망해 본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사실 이건 어려운 일이고, 결국 퇴근하는 내가 마음을 먹는 수밖에 없다. 업무 시간에 일을 열심히 하고! 빨리 끝내고! 집에 당당하게 퇴근! 을......과연... 오늘도 퇴근할 수 있을까....


또다시, 수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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