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에서 살아남기

시베리아 횡단 열차 차장님의 업무는

by 디주


영하 24도의 추위, 15kg 배낭을 메고 플랫폼을 찾아오니 아,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 보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참 크고 얼마나 길던지. 그저 길을 잃지 않았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던 중, 칸 중간에 서있던 한 여성분과 눈이 마주쳤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와의 시작이자, 첫 만남이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서의 생활은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청결에 예민했던 내게 훨씬 열악했다. 창문이 없어 환기가 전혀 되지 않고 건조한 공기에 샤워를 한 번 하는데도 3000원이라는 거금을 들여야 했다.


그렇게 잔뜩 예민한 내 발 사이로 무엇인가 스쳤다. 코딱지가 잔뜩 낀 얼굴을 들어 대체 누가 날 건드린 건지 확인했는데 웃으면서 청소를 하고 있는 차장님이었다. 차장님은 하루에 두어 번 그렇게 웃는 얼굴로 청소를 하셨고, 쓰레기통을 들고 다니며 쓰레기를 수거하셨다. 더하여 냄새가 너무 심해서 가기 힘들었던 화장실을 하루에 세 번 정도는 청소를 하시는 것 같아 보였다.



나의 예민함 덕분에 나의 얼굴은 곧 차장님에게 금방 익을 수 있었다. 걸핏하면 화장실에 가서 씻고 남들 한 번도 이용하지 않은 샤워실을 무려 2번이나 이용하고 뜨거운 물을 받는 곳이 차장님 방 바로 앞에 있었는데 늘 식기를 소독하러 엉덩이를 가만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차장님이 친숙했는데 차장님은 우리와 많이 닮아 있었다. 처음에는 한국 사람이 아닌가 착각까지 들 정도였지만 친구들이 고려인이라고 말해줘서 다행히 한국말로 물어보는 실례는 면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차장님을 유심히 보게 되었고 차장님의 일을 대충 알 수 있게 되었다. 차장님의 일은 1. 탑승객의 여권, 탑승 티켓 확인하기 2. 새로 온 탑승객의 침구를 정리하여 나눠주기 3. 횡단 열차의 실내와 화장실 청소하기 4. 컵 빌려주거나 가끔 팔러 다니기 5. 열차가 정차하면 얼음 깨기 6. 앉아있는 시간에는 서류 작성하기 등이었고 2교대로 근무하셨다.



우리와 닮아있는 차장님이셨지만, 영어를 하지 못하셔서 의사소통을 전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부터 고이고이 챙겨 온 인터뷰 종이가 무용지물이 되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물류 학도이자 미래의 물류 종사자이기 때문에 걱정은 3000원어치 샤워를 하면서 이미 훌훌 털어 버렸다.


대신, 한국에서 가져온 초코 과자 듬뿍과 엽서를 주섬주섬 챙겨 차장실로 향했다. 우리의 수법은 과자를 건네고 인터뷰 종이를 건네는 것이었다. 처음에 과자를 건네니 차장님이 그 누구보다 환하게 웃으셨다. 그 후 인터뷰 종이를 건네니 한 번 더 웃으시면서 우리의 사진 요청에도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그렇게 우리의 횡단 열차 일정이 끝나고 내릴 때 우리에 환하게 웃어주시던 차장님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이 일을 좋아하고 행복하게 일하는 차장님을 보며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확신이 그때 들었다. 따듯했던 차장님 덕분에 열악함 속에서도 행복이 피어날 수 있었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의 5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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