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듣는 소리

김천징

by 김승월

가슴으로 듣는 소리가 있다.

손을 내밀면 손바닥에 잡히는 소리가 있다.

소리가 울리거든 한 뼘쯤 징 가까이 손을 내밀어 보라. 그 부르르 떨리는 울림이 손바닥에 물결처럼 잡히고, 그 울림은 그대로 그대 가슴을 흔들어 놓을게다.

“쿠우웅 우웅 우웅 우웅......”


‘김천징’으로 유명한 경상북도 김천은, 조선시대부터 ‘김천장’(場)으로 이름난 고장이다. 그러한 배경 속에서 유기가 발달했는지도 모른다. "용두산의 사모암은 신랑이오, 황금동의 선바위는 신부다. 신랑신부의 혼례잔치에 하객이 많아 그릇을 많이 만들어 내어도 모자라, 김천유기는 날개 달린 듯 잘 팔렸다." 라는 전설이 김천유기의 명성을 짐작하게 해 준다.


스테인리스의 등장으로 유기그릇은 사라져 가고 있지만 소리를 생명으로 하는 김천징은 아직도 살아남았다. 황금동의 고려전통농악사 김일웅(金一雄 60세)씨가 5대째 징을 만들어오고 있다.


징은 질 좋은 놋쇠를 두드려서 만든다. 방짜방식이다. 먼저 구리와 주석을 75: 22 비율로 섞어 놋쇠로 합금하고, 이를 빈대떡처럼 납작하고 둥근 모양의 ‘바디기’로 만든다. 바디기를 달구어 메질을 하면서 모양을 만드는데, 바닥을 늘리고 가장자리를 오므려 춤을 세운다. 비틀어진 트집은 바로 잡는다. 일단 모양이 나오면 다시 담금질을 하여 강도를 높인 뒤, 쇠를 조이고 풀면서 소리 잡기를 한다.


살이 덜 붙으면 얇은 소리가 난다. '촤아앙 촤아앙' 하며 가볍게 떠는소리는 피한다. 쇳소리나 잡소리를 없애는 걸 ‘풋울음 잡기’라고 부른다. 풋울음을 잡고 나면, 비로소 ‘울음 잡기’에 들어간다. 김일웅 씨다.

“좋은 징소리란 부드럽고 쇳소리가 없어야 합니다. 대그랑 카면 안 돼요. 그리고 황소울음 맨치로 뒤소리가 ‘우욱’ 하니 치올라가야 됩니다. “

그가 말하는 좋은 징소리는 황소울음 같은 소리다. 뒷소리가 치켜 올랐다가 떨어지고 다시 올라가는 소리란다. 굳이 글자로 표현하자면 ‘쿠우웅 우웅 우웅 우웅...’이다. ‘우’하며 떨어질 듯하다가 ‘웅’하며 올라가고, 떨어질 듯하다가는 돼 올라가면서 긴 여음을 내는 소리다. 김 씨는 윗대부터 전해오는 그런 소리를 찾아서 김천 우시장을 돌며, 황소울음소리를 가슴에 새겨두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만들어 내려고 무진 애를 썼다.


김 씨의 주장에 따르면 지방마다. 좋아하는 징소리가 다르다. 그 소리는 각 지방 사투리 억양과 비슷하단다. 그래서 그는 전라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징소리, 충청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징소리를 원하는 대로 만들어 준다. 김 씨는 그런 솜씨를 인정받아 지난 82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받았다.


유난히 타악(打樂)이 발달한 우리나라다. 꽹과리, 장구, 북등 많은 타악기 중에서 징은 장단의 기준이다. 농악의 리듬사이클에서는 징이 한번 울리면 1채 장단, 2번 울리면 2채 장단, 그리고 3채, 5채, 7채 장단이다.


국악인 최종민 교수는 징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한다.

“서양악기가 공명을 살리는데 비해서 우리의 악기인 북, 장구, 징 등은 쇠, 가죽, 나무와 같은 물질 본연의 소리를 울려서 냅니다. 그러다 보니 국악기는 음색이 각기 다르고 가락도 멋대로 치기 때문에, 소리가 무질서하고 시끄럽게 들리기도 하지요. 이 같은 무질서한 소리를 징이 하나로 감싸주는 역할을 합니다. “

황해도에서는 무당이 굿을 하기 전에 징을 울려서 하늘에 고하고, 북을 쳐서 땅에 고했다.


징소리는 신비한 소리다. 길고도 깊은 떨림으로 가슴을 설레게도 하고 감정을 뒤흔들어 놓기도 한다. 그리고 징소리는 그 크고 넉넉한 울림으로 모두를 휘감아준다.

김천징 장인 김일웅(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

이 글은 필자가 1999년 한국통신 사보 '여보세요'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취재원의 나이는 그당시 기준입니다


#김천징 #전통악기 #국악소리 #무형문화재 #가슴으로 듣는 소리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도자기에서 들리는 천년의 속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