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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월 Nov 12. 2023

사실음이라고 사실처럼 들리는 건 아니다

그럴듯한 효과음 만들기

폭포소리를 녹음하면 폭포소리처럼 들릴까요? 적당한 거리에서 녹음하면 폭포소리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폭포에 아주 가까이서 녹음한 폭포 소리를 들으면 기계 돌아가는 소리나 공장소리처럼 시끄럽기만 합니다. 그 시원한 폭포의 이미지는 전혀 떠오르지 않습니다. 사실음 事實音이라고 해서 사실처럼 들리는 건 아닙니다.

라디오 오디오 콘텐츠를 만들 때는 사실음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사실처럼 들리는 소리를 사용해야 합니다. 더 나가 연출하는 사람이 그리는 이미지에 맞는 소리를 찾아내거나 만들어야 합니다.


MBC 라디오의 오디오 드라마 ’ 배한성 배칠수의 고전열전, 삼국지’를 연출할 때였습니다. 재미있게 만드느라 작가가 고스톱 치는 장면을 넣었습니다. 화툿장이 바닥에 떨어지며 내는 ‘딱’ 소리 효과음이 필요했습니다. 노련한 효과맨(폴리)이 온 힘을 다해 화투장을 바닥에 내리쳤습니다만 제가 기대한 소리의 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NG를 연발하며 “다시 한번 더!”를 몇 번이나 외쳤습니다. 


효과맨이 더 이상 안 나온다고 했을 때였습니다. 성우 이윤연 씨가 바지에서 혁대를 풀었습니다. 그리고 채찍질하듯이 공중에 혁대를 쳤습니다.  공중에서 혁대의 가죽이 서로 맞부딪치며 강렬하게 ‘짝’ 소리를 냈습니다. 저는 단번에 O.K를 했습니다. 그 성우의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소리가 제가 기대했던 소리였습니다. 


소리의 이미지를 잘 만들기로 유명한 분이 돌아가신 김벌레 선생님입니다. 생전에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키 작은 저보다 한참 작은 왜소한 분이었습니다만 소리에 대한 열정은 거인이었습니다.  본인 말로는 “집사람이 아기 낳을 때, 마이크를 들이대고 녹음했다.”라고 했습니다. 부인 입장에서는 어처구니없었겠습니다만, 그분의 소리에 대한 열정과 집념은 그만큼 놀라웠습니다.

그가 만든 대표적인 소리가, CF에서 콜라 병마개를 딸 때 나는 ‘팍~’ 소리입니다. 콜라 병마개 따는 소리를 아무리 녹음해도 시원한 느낌이 나지 않았답니다. 궁리궁리하다가, 풍선을 바늘로 터뜨릴 때 ‘팡 ‘터지는 소리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풍선 터지는 소리와 병마개 따는 소리를 합쳐서 그 유명한 콜라 병마개 따는 시원한 소리 ‘팍~’을 만들었습니다. 가짜 소리지만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소리였습니다. 해서 백지수표를 받았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두둑한 보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소리는 귀로 듣지만 눈으로 보고 소리를 구별합니다. 보지 않고 듣기만 할 때는 듣는 사람의 연상과 상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청각의 그런 특성을 고려해야, 실제음 實際音 보다 더 실감 나는 소리를 만들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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