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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끝에도 나답게

돌봄과 존엄, 마지막을 준비하는 마음

by 김승월
우리는 삶을 준비하듯, 죽음도 준비하고 있나요?

그 끝에서도 나답게 서 있을 수 있을까요?



요양원에서 들려온 현실의 목소리


“요양원 계시다가 돌아가셨어요.”

요즘 문상 가면 자주 듣는 말입니다. 제 장모님도 요양원에 계시다가 요양병원에서 눈을 감으셨습니다. 이제는 요양시설에서 삶을 마치는 것이 낯설지 않은 세상이지요.


생각하기 싫어도, 언젠가는 저나 제 가족이 마주해야 할 문제입니다. 요양원에 갈 것인가, 집에서 돌볼 것인가. 아직은 머나먼 얘기 같지만, 하루하루 그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지난 2월 16일, 저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코로나 시절, 다른 방송사에 다니던 분이 “줌으로 강의 듣고 자격증 땄다”라고 권했을 때 솔깃했지요. 수강료는 ‘내일 배움 카드’로 정부 보조까지 된다고 하니, 보험 삼아 해두자 싶었습니다. 누군가 몸이 불편해지면 ‘가족요양’을 할 수도 있다고 해서, 마포구 성산요양보호사교육원에 등록했습니다.


저녁반 수강생은 마흔 명. 의외로 남자도 열 명이나 있더군요. 50대가 제일 많았고, 저보다 한 살 많은 남자분도 있었습니다. 총 240시간의 수업과 80시간의 현장실습을 마치고 시험에 합격해야만 자격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수업에서는 식사, 배설, 위생, 임종 돌봄, 치매 대응까지 배웠습니다. 제세동기 사용법(AED)을 직접 실습한 건, 정말 소중한 체험이었습니다.

시립서부노인전문요양센터

현장실습은 마포구청 뒤 '시립서부노인전문요양센터'에서 했습니다. 어르신 270명을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간호사 195명이 돌보고 있는데요, 요양원이라면 으레 비좁고 우중충할 줄 알았는데, 공간이 시원하고 깨끗했습니다. 물리치료실, 작업실, 강당과 같은 각종 시설도 번듯하게 갖추어져 있었고요. 시설이 웬만하니, 신청자가 줄을 서나 보다. 2년에서 2년 반쯤 대기해야 들어올 수 있답니다. 다른 시립 요양센터도 대기 기간이 비슷하다네요.


어르신 대부분은 치매환자입니다. 한 없이 '섬마을 선생님'을 노래하는 분, 끝없이 배회하는 분 같은 치매 어르신들이나, 종일 침대에서 지내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시설이 아무리 좋아도 이렇게 살다 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들었어요


서부노인전문요양센터 최미경 사무국장은 말했습니다.

“혼자 생활이 가능하면 집에 계시는 게 제일 좋아요. 하지만 치매가 심하면 가족이 돌보기 어렵습니다. 그럴 때는 요양원에 오셔야죠.”


가족이 돌본다는 것의 무게


모든 노인은 가족의 보살핌 속에 자기 집에서 생을 마치고 싶어 합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는 <장애 등급 판정을 받은 어르신>을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는 가족>이 돌보면 지원해 주는 ‘가족요양인보호사제도’가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1일 60분 돌보면 월 40여 만원, 부부가 배우자를 1일 90분 돌보면 월 80여 만원을 받게 됩니다.

최태자 박사와 김승월

하지만 가족의 돌봄은 쉽지 않지요. ‘수발에는 교과서가 없다'라는 일본 책을 번역한 성산요양보호사교육원 원장 최태자 박사의 말입니다.

“타인을 돌보는 것은 교과서라도 있지만 내 가족을 돌보는 것은 교과서대로 가지 않아요. 가족요양이 어려운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요양보호사는 8시간 일하고 퇴근하면 되지만 내 남편, 내 부모 요양은 싫다고 그만둘 수가 없어요. 그 속에는 사랑도 있지만, 어려움과 고통도 많아요, 특히 ‘노노(老老) 케어’는 더 힘들죠. 옛날에는 노인학대의 가장 많은 행위자가 ‘아들’이었는데 최근에는 배우자에 의한 노인학대가 가장 많습니다. 노노케어의 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산노인복지센터(데이케어)에서 실습했을 때는 사정이 조금 달랐습니다. 낮 동안 어르신들을 모시는 곳이라 비교적 상태가 양호했고, 대화도 이루어졌습니다. 여자 어르신들은 서로 친구처럼 지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남자 어르신들은 과묵하고, 특히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았던 분일수록 적응이 어려워 보였습니다. 대부분 여성 중심의 프로그램 속에서 남성 노인이 살아내야 하는 현실이 안쓰럽게 느껴졌습니다.


“치매라도 단편적인 대화는 가능하기도 합니다. 여자 어르신이 남자 어르신보다 대화가 활발해요. 짝꿍처럼, 내 친구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고요,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편인데 남자 어르신들은 대체로 과묵한 편이지요. 한평생 가족 위해 치열하게 살다가 나이 들어 상실감이 큰 것도 이유 중 하나같습니다.”



성산노인복지센터(데이케어)에서도 실습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르신들을 돌보는 시설인데 주대상은 4등급, 5등급 어르신입니다. 규모는 요양원보다 작지만, 어르신들의 상태가 요양원보다 나아서일까. 어르신끼리 소통이 그런대로 이루어지고 있었어요. 일본에서 사회복지학 석사를 받은 심명숙 성산노인복지센터 시설장의 말입니다.

“치매라도 단편적인 대화는 가능하기도 합니다. 여자 어르신이 남자 어르신보다 대화가 활발해요. 짝꿍처럼, 내 친구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고요,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편인데 남자 어르신들은 대체로 과묵한 편이지요. 한평생 가족 위해 치열하게 살다가 나이 들어 상실감이 큰 것도 이유 중 하나같습니다.”


남자 어르신들은 시설 안에서 관계 형성이 서툰 편이라네요. 특히 사회적으로 고위층에 있던 분일수록 적응이 쉽지 않은 듯합니다. 요양시설 입소자 대부분이 여성이고 서비스하는 분도 거의 여성이지요. 프로그램 대부분이 ‘그림 그리기’, ‘종이접기’처럼 여성 취향적입니다. 남성으로 요양시설에 살기가 고달파 보이네요다.

우리나라 노인인구의 10%는 치매나 거동이 불편해서 등급을 받습니다. 등급을 받으면 하루 3시간 정도 요양보호사의 방문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데이케어센터, 요양원을 이용할 수 있지요. 좋은 요양원 선택조건에 대한 최태자 박사의 조언입니다.

“‘건물’이나 편리한 ‘교통’보다는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과 ‘시스템’이 중요합니다만, ‘사람’과 ‘시스템’은 잘 보이지 않아서 판단하기 쉽지 않아요. 봉사 활동을 하던지 해서 직접 겸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죠. 그리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3년에 한 번씩, 요양시설을 평가해서 홈페이지에 올려요. 선택의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존엄하게, 나답게 마무리하기


2008년 영국에서 발간한 <생애말기 돌봄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좋은 죽음’이란 1) 익숙한 환경에서 2) 존엄과 존경을 유지한 채 3) 가족, 친구와 함께 4) 고통 없이 죽어가는 것이라 합니다. 자신의 묏자리를 미리 봐 두는 이는 적지 않지만, 요양시설을 미리 알아두는 이는 보기 힘들지요. 심명숙 시설장은 연명치료에 대한 본인의 결정을 '사전의료지시서'로 쓰듯, '사전케어지시서'를 미리 써두길 제안합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내 남은 인생을 나답게 마무리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준비하지 않으면 두려움이지만, 준비한다면 존엄이고, 무엇보다 나다움입니다.


* 이 글은 MBC 사우회보 2024년 3월호에 실린 필자의 글'나답게 내인생을 마무리 하려면'을 수정한 것입니다.



ksenia-perepelkina-6ynu_UvtNpk-unsplash.jpg Ksenia Perepelkina on Unsplash

지나온 날들은 모두 흩어진 것 같지만, 돌아보니 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보았고,
앞으로의 걸음도 나답게 이어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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