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파티 효과
“죽기 전에 보자고?”
“춥기 전에 보자고!”
“춥기 전에야, 죽기 전에야?”
“더 추워지기 전에 한번 더 만나자고.”
일흔 살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 셋이서 주고받는 말입니다. 2023년 10월 17일 오후 3시경 을지로 3가 지하철역 개찰구 앞에서였습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점심하고 헤어지면서 하는 이야기 같습니다. 한 할머니가 ‘춥기 전에’ 다시 만나자는 말을 ‘죽기 전에’로 잘못 들었나 봅니다. 귀가 어두워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해서 죽기 전에로 잘못 들은 거 같기도 합니다. 누구나 무슨 소리를 들을 때, 자기가 생각하는 쪽으로 들으니까요.
사람은 자기 생각하는 쪽으로 생각하고 듣기도 하지만, 듣고 싶은 소리만 듣기도 합니다. 라디오 PD로 일하던 때 겪은 일입니다. 갓 수습이 떨어진 햇병아리 시절에, 선배가 지금은 고인이 된 김창열 화백의 개인전에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물방울 그림으로 유명한 그 화가입니다. 신나서 달려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화가를 직접 만나니 기분이 붕 떴지요. 그림을 둘러보고는 김화백과 나란히 앉아 이것저것 물어봤습니다. 녹음을 마치고, 우쭐해서 녹음자료를 넘겼는데 선배가 찬물을 끼얹네요. 오늘 녹음한 거, 주변 소음이 많아서 방송 불가라고요. 집중해서 다시 들어보니 주위 소음이 너무 컸습니다. 몇몇 부분에서는 김화백의 목소리가 소음에 아예 묻혀 버렸습니다.
‘칵테일파티효과’(cocktail party effect)란 이론이 있습니다. 시끄러운 곳에서 관심 있는 소리에 집중해 듣는 현상을 말합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 한꺼번에 이야기할 때,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골라 듣습니다. 아무리 시끄러워도 마음에 둔 사람의 말은 귀 기울이니 들립니다. 반면에, 마음에 없는 이의 소리는 조용한 곳에서 조차 들리지 않습니다. 청각의 그런 특성 때문에, 칵테일파티처럼 시끄러운 곳에서도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제가 김화백을 좋아했으니, 김화백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오죽 잘 들렸을까요. 주위 소음은 아예 들리지 않았을 거고요. 하지만 마이크는 귀와 다릅니다. 좋아하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소리 나는 그대로 듣습니다. 소음과 사람의 말소리를 차별하지도 않고, 똑같이 듣습니다. 인터뷰 당시, 저는 헤드폰 쓰지 않고 제 귀로 들은 소리만으로 판단하고 녹음했습니다. 만약에 헤드폰 쓰고 마이크로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면, 주변 소음이 들려서 녹음 장소를 바꾸거나 다른 조치를 취했을 것입니다.
어느 공간이나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소음이 깔려 있습니다. 늘 듣는 작은 소음은 인식하지 못하고 지냅니다. 같은 소리를 오래 듣다 보면 의식하지 않게도 됩니다. 눈감고 귀 기울이면 평소에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립니다. 냉장고 소리나 형광등 소리도 잡힙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런 소리를 의식하지 못하고 생활합니다. 헤드폰을 쓰지 않고 녹음하면 이런 소음이 녹음됩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말처럼 듣고 싶은 것만 듣기 쉽습니다. 라디오 오디오 콘텐츠 녹음을 할 때는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헤드폰을 쓰고 마이크가 받아들이는 소리를 판단해서 녹음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