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오〮디오 콘텐츠를 만드는 자세
사람의 목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물론 말소리로 여러 가지 의미나 정보를 전달할 수가 있지요. 말하는 빠르기와 높이에 따라서 성격이 드러나니까, 성격도 드러낼 수 있겠 구요. 성별이나 나이도 나타낼 수 있겠지요. 그 밖에, 더 무엇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라디오 만드는 사람들은 소리 만으로 프로그램을 만드니까, 소리로 더 많은 무언가를 연기하고 싶어 합니다. 성우는 소리의 표현에 대하여 예민합니다. 목소리만으로 연기해야 하니까요.
저는 <격동 50년>, <배한성 배칠수의 라디오 삼국지>와 같은 MBC라디오 드라마를 연출한 적이 있습니다. 성우들과 오래 동안 함께 일하며 그분들로부터 듣고 배웠습니다. 특히 배한성 씨, 김종성 씨처럼 이 시대의 뛰어난 성우와 MBC 극회의 여러 성우 분들이 소리로 많은 것을 표현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우선 소리는 장소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상상해 보세요, 우리가 큰 공간에서 말할 때와 작은 공간에서 말할 때 소리의 세기와 울림이 달라집니다. 말소리는 말하는 공간 안에서 울립니다. 그 울림이 공간의 크기나 형태를 짐작하게 합니다. 동굴처럼 밀폐된 공간인지, 탁 트인 너른 들판인지 들으면 알 수 있습니다. 발성도 다르지요. 너른 들판에서는 소리를 내지르고, 실내에서는 소곤거릴 것입니다. 목소리만 듣고도 공간의 크기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으니, 그 상상에 맞추어 목소리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소리로 계절이나 시간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추워서 떨면서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 겨울을 느끼게 되겠지요, 졸리는 목소리로 말하거나 말하면서 하품을 하면, ‘아 잠잘 시간이구나’ 하고 청취자들이 짐작하게 됩니다. 목소리만으로 시간과 계절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소리로 옷차림을 그려낼 수도 있습니다. 온몸이 눌리는 무거운 털옷을 껴입은 것과 날아 갈듯 가벼운 옷을 걸쳤다고 상상해 보세요, 두툼한 차림으로 말을 한다면 당연히 무거운 옷에 눌린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가벼운 옷을 걸쳤다면, 가볍게 날아가는 소리를 낼 것입니다.
여러 성우들이 말합니다. “성우는 목소리로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합니다. 연극으로 치자면, 인물의 성격은 물론 무대, 의상과 모든 소품까지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연기해야 합니다. “
귀로 듣는 청각정보는 눈으로 보는 시각정보 보다 훨씬 부정확합니다. 해서 성우가 내는 소리를 성우의 의도대로 듣지 않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모든 것을 표현했다고 해도 생각만큼 전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소리는 귀로 듣지만 마음으로 느낍니다. 소리의 차이는 작아서 구별이 안되기도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차이를 느끼기도 합니다. 그 작은 차이를 기대하고 목소리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리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목소리를 내다보면 조금이라도 더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요? 라디오 리포터 김경아 씨의 말입니다. “목소리 만으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취재 녹음합니다.”
오디오 연기자는 물론, 라디오 PD나 라디오 리포터도, 라디오나 오디오 콘텐츠를 만들려면, “목소리만으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라는 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