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한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몸이 지치면 마음이 지치고, 마음이 지치면 몸이 지친다.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쓰러지지 않도록 중심을 잘 잡아야 하는데 나는 요즘 과부하가 느껴진다.
삶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온갖 문을 열었다 닫는다. 딸이 대학교를 졸업한 올해 나에게 대학교 편입의 문이 열려서 발을 들여놨다.
어린 시절 숱하게 공부 계획표만 짰다. 현실과 전혀 다른 멋진 삶을 살고 싶다고 공상하는 시간은 길고, 공부 계획표 짜느라 시간을 흘려보내고, 정작 공부는 안 했다. 무기력하게 앉아 있었다. 주변의 소음을 끄고 나에게 집중하는 방법을 몰랐다. 어두운 집안 분위기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나는 그 속에 깊이 들어가 꼼짝하지 않았다. 걱정하고 불안에 떨면서.
편입하면서 학기마다 수강해야 할 과목만 성기게 정리했다. 특별한 공부 계획표는 짜지 않았다.
열린 문을 밀고 발을 들여놓았다. 걱정 안 하고 나에게 펼쳐지는 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삶이 궁금했다. 집에서 온라인으로 듣는 수업이라 쉽게 지치는 내 몸을 토닥거릴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나의 마음과 학교의 시스템은 달랐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학교의 특강이나 오리엔테이션에서 ‘졸업요건’을 들을수록 한 학기마다 수강 신청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았다. 영역별 이수 시간을 채워야 졸업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부담으로 느껴졌다. 복수전공을 통해 좀 더 경쟁력 있으면 좋다는 말에 졸업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생각하지도 않았으면서 빨리 수강해야겠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내 삶의 태도가 100미터 달리기 출발선 앞에 서 있는 모습이다.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잘해야 한다는 생각, 얼른 해야 한다는 조바심, 잘 모른다는 불안감 등으로 바짝 긴장하고 있다.
가볍게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공부해 보자던 마음은 영역별로 어떤 과목을 수강해야 하는지, 복수전공을 통해 자격증 하나를 더 취득하기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로 초점이 바뀌었다.
온라인 수업이라 과목마다 참여해야 하는 게시판 활동이 많다.
수업을 듣는 시간보다 게시판에 올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정리하는 시간이 길다. 때로는 자료를 찾아봐도 게시판에 올릴 글을 정리할 수 없으면서도 머리를 쥐어짜서 게시판 활동에 최선을 다한다.
과목마다 점수를 산정하는 방식에 차이는 있어도 토론을 포함한 게시판 활동이 15% 정도를 차지한다. 출석은 10% 정도 점수에 반영된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서 시험을 잘 보지 못할 수도 있으니 게시판 활동과 출석 점수는 채워야 한다는 강력한 의무감이 작동한다.
꽃이 흐드러진 봄날, 중간고사가 다가오고 있다. 시험이 코앞이다.
어젯밤 온라인으로 3시간 넘게 진행된 스터디에서 내가 발표해야 하는 부분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강의노트를 그냥 읽었다.
1학년부터 시작했으면 기초가 다져져서 강의를 수강하기가 수월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3학년 편입이 가능한 상황에서 굳이 1학년부터 시작하며 애쓰고 싶지 않았다. 기초 지식이 어느 정도 있으리라 생각하고 진행하는 교수님의 수업은 난감하다. 어쩌면 교수님도 편입생이 많은 온라인 대학의 특성상 학습자에게 기초 지식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대학교 과정에서의 커리큘럼에 맞춰서 수업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기초개념이 부족해서 도서관에서 관련 책을 빌려왔다. 꼼꼼히 읽고 이해하고 싶다. 그런데 시간이 부족하다. 월요일마다 대학교 홈페이지에 내가 수강하는 6과목의 강의가 올라온다. 강의를 듣고 이해하고 내재화하기도 버거운데 15%의 점수를 확보하기 위해 게시판 활동에 무리했다.
애썼는데, 결과가 초라하다.
게시판 활동 현황을 살펴보니 온 마음을 바쳐서 했는데 과목마다 Q&A 활동 수가 부족하다. 수강하기 어려운 과목은 뭐가 뭔지 몰라서 질문조차 못 하고 있다.
막막하다.
달리기 출발 신호가 떨어져서 내가 한 발짝 내딛는 동안 주변 사람들은 저만큼 앞쪽으로 뛰어가 따라잡기는커녕 종착점도 보이지 않는 느낌이다.
나에게 펼쳐지는 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기를 놓치고 컴퓨터 앞에 앉아 강의를 듣고 게시판 활동을 했다. 밥 먹는 시간을 놓치기도 하면서.
밤 12시 넘어서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보면 나의 호흡이 편안하지 않다. 지쳐서 호흡은 거칠고 몸 여기저기에서 괴로워한다.
몸과 마음에 노란불이 깜박거리고 있다.
나는 몸이 괴로운 순간보다 괴롭지 않은 순간이 많으니 ‘나는 건강하다’라는 사실을 몸이 긴 시간 아프고 나서야 깨달았다. 편입하고 공부하면서 모르는 게 많아서 조바심이 난다. 나의 건강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듯이 대학교의 공부에서 즐거움을 경험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괜찮다고, 천천히 가도 된다고 나를 달래고 있다.
대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하기 전에 핸드폰으로 알람을 맞춰두고 컴퓨터와 먼 거리에 둔다. 수시로 일어나서 스트레칭하기 위해서다. 공부에 대한 조바심과 불안은 내가 방심하는 사이 수시로 고개를 들 테니 몸이 지치지 않도록 나의 호흡과 몸의 평안을 챙기려고 한다.
편입하고 첫 번째 시험이 코앞이다.
게시판 활동에 머리를 쥐어짜며 써냈던 글을 통해 평소에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을 고민했다. 강의를 들으며 무슨 말인지 몰라서 몇 번을 되돌려 듣기도 한다. 공부 계획표만 짜던 어린 시절의 습관에서 벗어나 공부하고 있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