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보약이다

중간고사 기간

by 김작가

잠이 보약이다. 40대의 잠 못 들던 괴로운 시간이 지나고 오십 즈음부터는 그럭저럭 잘 잔다. 예외가 있지만.

여성으로서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호르몬의 주기가 되면 몸살기와 발 시림과 수면장애가 따라온다. 가볍게 넘어가 주면 감사하고 잠 못 자는 날이 길어지면 몸도 마음도 예민해져서 불편하다. 한 달 혹은 몇 달을 건너뛰기도 하지만 몸살기와 수면장애는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있다. 사이버대학에 편입하고 첫 번째 중간고사와 호르몬 주기가 겹쳤다.


시험이 시작된 첫날 밤새웠다.

아흔아홉 마리부터 거꾸로 양 숫자 세기, 발 부딪치기, 입을 살짝 벌리고 길게 숨 내쉬기를 땀날 만큼 해도 잠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잠들지 않는 밤 불안이 꾸역꾸역 올라왔다.


십 대의 에너지로 날밤 새우며 공부할 생각은 없었다.

잠이 안 들어서 차라리 일어나 강의노트를 읽다 보면 졸음이 오겠지 생각했다.


강의노트를 읽다가 개념을 요약해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주요 개념에서 헷갈리기 쉬운 것, 알아두면 좋을 만한 것들을. 날이 밝아지고 몸이 으스러지는 느낌인데 시험 범위를 정리하느라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토할 것 같은 상태로 아침 8시에 잠이 들었는데 2시간 만에 잠이 깼다.

시험이 저녁에 있어서 충분히 잠자려고 알람을 맞춰뒀는데 2시간 자다가 잠이 깨서 말똥말똥했다. 더 자고 싶은 간절함은 호르몬 변화에 따른 신체 변화를 짜증으로 받아들였다.


“꼭 이래야겠니? 좀 그럭저럭 지나가 주면 안 되겠니?”


하고, 화내다 입 다물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는데 어지럽고 울렁거리고 뼈가 부서지는 듯해서.


나를 보살펴줄 사람은 나다.

짜증은 잠을 못 자서 괴로운 나의 몸이나 마음에 득 될 게 없다. 내 앞에 펼쳐진 상황을 화내봐야 두려움이 몰려올 뿐이다. 한쪽만 보지 말고 내 앞에 펼쳐진 다양한 것을 살펴야 하는 위기다.


잠이 안 든다. 호르몬 변화에 따라 몸이 예민해졌다.

쉰 살 넘어 편입한 대학생의 첫 번째 중간고사가 부담스럽다. 6과목을 수강하기도 버거운데 시험을 준비하려니 한글 자모도 구분하지 못하면서 화학식 시험을 보는 느낌이다. 나의 부담감은 호르몬 변화로 예민해진 몸을 더 자극한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아슬아슬하고 안타까운 잠을 자는 중간고사 넷째 날 시험을 보다 난리가 났다.

서술형 다섯 문제를 30분 동안 해결해야 하는 시험에서 1번 문제를 풀다가 임시저장을 눌렀는데 인터넷이 꼼짝하지 않았다. ctrl 같은 기능키를 누르면 부정행위로 간주된다고 했는데 나는 새로고침 버튼을 찾지 못해 헤맸다. 새로고침 단축키가 f1인지 f5인지 기억나지 않아서 f1을 눌렸더니 시험 보던 사이트에서 빠져나갔다. 머리는 백지가 되고 온몸은 굳은 채 바들바들 떨렸다. 학교에 전화하니까 시험 응시 시간이 남아 있으면 다시 들어가서 볼 수 있다고 했다.


30분의 시험 응시 시간에서 10분 정도가 사라졌다.

서술형 다섯 문제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답을 적었다. 문장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키워드를 나열하는 수준으로.


시험에 응시하다가 튕긴 상황은 몸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며칠째 이어진 수면장애로 아슬아슬하던 몸에 급성 스트레스에 반응해 분비되는 코르티솔이 위협에 대항하겠다고 기를 쓴다. 과도하게 근육을 긴장시키고 감각 기관이 예민해지다 보니 오히려 불안과 초조, 두통을 일으키고 수면장애를 악화시킨다. 내 몸의 변화를 관찰하며 호흡마다 주의를 기울이고 따뜻한 물을 마시면서 천천히 움직이지만, 몸이 경직되고 손이 떨리고 시험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다.


중간고사가 남아 있던 두 과목의 시험은 될 대로 되라며 강의를 1.5배속으로 들었다. 글씨를 읽으며 공부하기 어려워서.


나는 이제 중간고사가 끝났다. 나쁜 컨디션이어도 시험은 마무리 지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불편한 몸으로, 사이트에서 빠져나가 바들바들 떨면서도, 공부할 수 없는 불안을 느끼고도, 될 대로 되라며, 시험에 응시했다.


이번 달의 여성 호르몬 주기는 끝나지 않았다. 길게 이어지고 있다.

밤에 침대에 누울 때 긴장한다. 그런 나를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지켜보고 있다. 어젯밤에는 많이 졸려서 잠자리에 들었는데 3시간 넘게 침대에서 뒤척였다. 내 몸의 신경계가 안정화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가 보다.


잠이 보약이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잠을 잘 자는 사람이면 좋겠고, 웬만한 것들에 놀라지 않는 강심장을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나는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이해했다고 응용하려면 더디고, 호르몬 변화에 따른 수면장애를 피하기도 어렵다. 긴 시간 뒤척이지 않고 잠이 들면 아침에 깨면서 보약을 먹은 듯 감사하다.


내 나이가 오십 대라서 좋다. 뭐 하나 잘하는 게 없는데 뭐든 잘해야 할 것 같아서 힘들기만 하던 날들이 지나 서다. 때때로 잠을 잘 못 자는 날이 있고 그 시간이 길어질 때도 있지만 기다릴 수 있다. 잠이 보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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