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담고, 사진으로 기억
사진 찍을 때 웃는다. 웃는 이유가 무엇일까.
미간에 힘주고 눈을 부릅뜨고 화난 사람처럼 찍은 사진과 입꼬리를 올리고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 사진은 다르다. 여권 사진 찍을 때도 사진사가 미소 지으라고 말한다.
사진 찍을 때 아름답게 존재하려고 웃는다.
화났을 때는 사진을 안 찍는다. 가족들과 여행을 가거나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면 사진을 찍는다. 우리의 그 순간이 행복해야 한다는 염원을 담아서. 오랫동안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속 깊은 곳의 욕구를 담아서.
사진을 많이 찍는 날도 있다.
내가 살아있는 날 중에서 가장 젊은 ‘오늘’을 기념하자며, 봄날 새순이 돋는 모습이 황홀해서, 목련이 하얀 꽃망울을 오그리고 있는 모습이 우아해서, 벚꽃이 흐드러지게 날리는 모습이 간질간질해서, 초록색이 100가지 넘게 피어오를 때 감동해서, 파도치는 바다에 흥분해서, 노을의 형형색색이 아름다워서, 햇볕이 비치는 모습이 따뜻해서, 초승달이 처연해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춤추는 것 같아서, 비 내리는 모습이 시원해서, 하늘에 구름이 뭉실뭉실 나타나고 사라지는 게 신기해서, 가을 낙엽이 저릿해서, 소복소복 내리는 하얀 눈이 좋아서.
그러나, 순간의 풍경을 사진에 담아보면 눈으로 보는 것과 느낌이 다르다.
눈으로 봤을 때의 감동을 카메라에 다 담지 못한다. 나의 사진 찍는 기술이 부족해서일 가능성이 크지만, 책으로 읽을 때의 눈부신 상상을 영화가 다 담아내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진 속 얼굴이 낯설 때도 있지만 웃는다.
나의 입술이 비뚤어진 것 같고 눈썹 모양도 왼쪽과 오른쪽이 차이가 난다. 마음이 따뜻한 친구의 얼굴이 각도를 잘 맞추지 못해서 날카로워 보일 때도 있다. 사진 속 모습이 근사하기를 바라며 다리가 길어 보이는 효과를 위해서 카메라 각도를 기울이고 얼굴이 예쁘게 나오게 하려고 턱을 당긴다. 입꼬리를 올려서 활짝 웃는다. 미소의 힘으로 피부에 탄력이 생겨서 나이보다 몇 살은 젊어 보이게.
인류의 모든 기록이 사진으로만 남는다면 훗날 지금의 인류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사진마다 얼짱 포즈에 웃는 얼굴이니.
내가 눈으로 담는 멋진 풍경을 사진으로 형상하지 못해도 후대에 괜찮은 자료로 보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저마다 웃고 있는 이유가 근사한 자연환경에서 편하게 누리며 살았던 인류의 자신감이라 할지 모른다.
100가지 넘는 초록색이 물든 산을 바라본다. 좋은 느낌이 스며든다.
바람에 흔들리며 나뭇잎이 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람결에 따라 빛이 달라지는 초록색을 아무리 카메라에 담아보려 해도 방법을 모르겠다. 그래서 눈을 감았다 뜨면서 갖가지 초록색이 파도치는 산을 눈으로 담는다.
여유로운 햇볕 아래 부드러운 바람을 맞으며 이 순간의 행복을 기억하려고 다시 사진 한 장 찍는다. 내 눈에 담기는 초록색을 모두 담아내지 못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