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작가 Jul 11. 2023

가치 없는 이는 아무도 없다

가치 없는 경험은 없다

나에게 고통스러운 감정이나 감각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는 순간 불편함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이 생긴다. 억지로 생각을 전환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그렇구나’ 알아차림으로써 새로운 시각이 발생한다. 내 속의 사랑받고 싶은 욕구, 인정받고 싶은 욕구, 정제되지 않은 거친 모습을 친절하게 바라보며 지금 이대로 가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생각으로 물들이며 한 껍질 벗고 나면 또 다른 껍질이 보인다. 좋은 모습일 때도 있지만 거칠어서 놀랄 때도 있다. 나의 새로운 껍질과 만날 때 싫다고 외면하지 않으려 하지만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기차 안에서 한 어르신이 큰 목소리로 자기의 실수를 반복해서 이야기하며 나를 불편하게 한다. 어르신은 목포에서 갈치를 사가는 중이라며 커다란 스티로폼 상자와 장바구니를 카트에 묶고 배낭도 하나 짊어지고 통로를 막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찾아서 앉을 수 없게 하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되풀이한다. 내릴 곳이 아닌 역에서 내릴 뻔하다 다시 자리에 앉아야 한다며, 자기 나이가 여든둘이라며, 나이 들면 자식이랑 다녀야 한다더라며, 자기는 수서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언제 내리냐며……    

 

어르신의 목소리가 듣기 불편해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려 했으나 내 속에서 화가 꿈틀거린다. 음악 소리를 높여도 틈틈이 들려오는 어르신의 목소리가 불쾌하다.   

  

나 왜 이리 화가 나지, 어르신의 목소리가 왜 이리 듣기 싫지? 

    

내 속의 불편함을 알아차리며 질문을 던진다. 내가 화내고 있다는 알아차림에 당황스럽다.  

  

기차에서 큰 목소리로 자신의 상황과 맥락을 풀어내는 어르신의 모습이 몇십 년 후 내 모습이 될까 봐 두렵다. 어르신이 다른 이들의 길을 막고 민폐를 끼치는 모습처럼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실수할까 봐 겁난다.  

    

내가 하면 실수이고 남이 하면 민폐라고 여기는 나의 오만함도 놀랍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내 감정과 감각을 마주하며 수행자의 태도로 바르게 살기를 의도하면서 쉽게 화나고 누군가를 내 멋대로 판단하고 있다.

      

얼마 전 80대 노모와 둘이서 여행하며 어머니가 자신의 삶을 좀 더 멋지게 물들이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나의 바람은 금세 불편한 감정으로 바뀌었다. 어머니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태도에 화가 났다. 그때 차마 다 표현하지 못하고 눌렀던 감정을 기차 안에서 만난 팔십 대 어르신에게 투사하고 있다.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책임질 뿐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없다. 부모가 어린 자식을 보살피지만 끝내 서로 독립해야 하고, 자식이 연로한 부모님을 봉양한다지만 끝내 경제적인 지원일뿐이다. 

    

내가 어머니가 어떤 생각과 태도로 살아왔는지 안다고 착각했다. 어머니가 어떤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판단하고 나의 기준에 미치지 않는다고 화를 냈다. 내가 감정을 눌렀다지만 나는 분명 쓴소리를 내뱉었다. 더 터져 나오려는 쓴소리를 참아냈을 뿐이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기차 안에서 만난 어르신에게 짐을 빨리 치우지 않는다고, 목소리가 크다고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 있다.  

   

나는 화낸다.

나는 내 마음대로 판단한다.

어찌 보면 별일 아닌 일에 끄달려한다.    

 

내가 수행자의 바른 태도로 살아야지 생각하면서도 종종 화내고 거칠어진다. 이 모습도 나일 뿐이다. ‘그렇구나’ 받아들이니 화의 소용돌이가 가라앉는다. 어머니의 있는 그대로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함부로 인생의 책임을 논한 내가 부끄럽다. 어머니와 여행하고 한동안 끄달려 한 나 스스로에게 미안하다. 어머니 삶을 함부로 판단해서 죄송하다. 기차 안의 어르신에게 민폐형이라고 속으로 분노하며 내 감정을 투사해서 죄송하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내가 화나서 속으로 씩씩거렸어도 가치 없는 게 아니다. 화나는 감정, 판단하는 나를 알아차렸다.  이번 경험이 나와 어머니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지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치 없는 이는 아무도 없다. 가치 없는 경험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