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의뢰 전화를 받았다.
중학생 자녀를 둔 엄마였는데 자녀 개인상담을 요청했다.
우리 상담센터에서 상담받은 지인이 권해서 상담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럴 때 보람을 느낀다.
소개해준 지인이 누구인지 몰라도 우리 센터에서 받은 상담이 좋았다는 의미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인 추천(기존 내담자 추천)으로 연락하는 분들에게 마음이 쓰인다.
그런데 이번 요청은 거절했다.
내가 청소년 상담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년 상담을 할수록 부모 상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청소년에게 부모란 매우 중요한 환경이라서 부모가 함께 상담을 받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
청소년 자녀 상담을 요청한 엄마에게 지인 추천을 고려해 내가 예외적으로 청소년 상담을 하는 조건을 제시했다.
그것은 아이가 상담받을 때 엄마도 개인상담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는 문제가 없는데요?”
음, 어려운 상황이다.
엄마는 문제없고 아이만 문제가 있을 수 있나?
100퍼센트 아니다, 맞다고 할 수는 없다.
세상일은 늘 예외가 있기 마련이고 무 자르듯이 양분할 수 없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그러냐, 안 그러냐로 자꾸 나눠서 생각이 들면 이것을 이분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중간이 없는 생각은 불안과 분노를 쉽게 일으킨다.
어쨌든, 상담을 요청한 엄마는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문제가 없거나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런 경우 부모 상담은 더 중요하다.
전화를 통해 엄마의 긴장이 느껴진다.
안타깝지만 자녀 상담을 요청한 엄마는 아이만 상담받기를 원해서 나는 상담 요청을 거절했다.
내가 청소년 상담을 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위에서 언급한 “환경으로서의 부모”가 가장 크다.
예를 들면 청소년은 환경 영향을 많이 받아서 또래관계가 중요한데 그렇기 때문에 따돌림은 치명적이다.
따돌림 경험이 있다고 해도 가정에서 따뜻한 수용과 이해가 있으면 청소년은 버틴다.
친구들은 떠나기도 하고 만나기도 하지만 부모나 가족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기족, 특히 부모는 보호자, 울타리로써 중요한 환경이다.
중학교에서 상담사로 근무할 때 이것을 절실히 느꼈기에 청소년보다 보호자인 부모 상담을 선호하게 되었다. 부모가 달라지지 않으면 청소년은 부메랑처럼 다시 고통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래서 청소년만 상담할 경우 힘이 빠졌던 경험이 있다.
그렇다고 청소년 상담이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매우 중요한 상담 영역인데 나와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 청소년 상담을 잘하는 상담사들이 더 많이 생기기를 바란다.
중학교에서 상담을 할 때는 상담보다도 상사 때문에 힘들었다.
힘겨루기 아닌 힘겨루기를 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그날은 시트콤 같은 일이 연속 일어났다.
위클래스가 이러저러한 어려움을 넘어 겨우 완성되어 자리를 잡은 뒤였다.
오전에 상담이 없어서 행정을 하고 서류를 정리하던 중이었다.
아래쪽 서랍의 서류 뭉치를 꺼내려고 쭈그려 앉는 순간, 엉덩이 쪽에 자유로운 느낌이 들었다.
시원하고 편안한 느낌이 매우 당황스러웠다.
당시 여름이었는데 내가 즐겨 입던 얇은 정장 스타일 바지가 찢어진 것이다.
힘을 준 것도 아닌데.
내가 너무 즐겨 입어서 천이 삭은 것일까?
아니면 내 방귀가 너무 독했던 걸까?
나는 손으로 엉덩이 부분을 만져봤다.
바느질할 수 있는 정도인지 가늠하려 했는데 불가능한 상태였다.
설혹 바느질을 한다고 해도 상의가 짧아서 바느질한 것이 드러날 것 같았고 봉합해도 다시 찢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내 머릿속에 맥가이버(만능으로 위기를 넘기는 오래된 미드의 남주인공)가 등장할 때 나오는 음악이 재생되었다.
시간을 보니 11시 50분.
곧 점심시간이다.
학교에서 집까지 왕복 시간과 옷을 갈아입는 시간, 위클래스까지 올라오는 시간을 합하면 점심시간 안에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당시 위클래스는 학교 건물 윗 층 맨 끝에 있어서 학교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계단으로 빠르게 올라오면 10분은 걸렸다.
나는 아주 잠시 망설였는데 그러면서도 다른 선택지는 없다는 것도 동시에 깨달았다.
위클래스를 나와서 날다시피 주차장으로 갔다.
가는 길에 정지 신호를 덜 만나기를 기도했다.
집에 도착해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고 찬물 한 잔을 벌컥벌컥 마시고 차를 몰고 학교로 향했다.
다행히 빨간불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학교에 다 왔을 무렵 도로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다.
막히지 않았던 도로가 여름휴가길처럼 막히기 시작했다.
덕분에 점심시간은 다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학교 주차장에 도착해서 위클래스까지 얼마나 빠르게 올라갈 수 있을지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긴장되는 마음을 다독였다.
‘그래. 계단을 뛰어가면 시간 안에 갈 수 있을 거야.’
‘오후에 바로 상담이 없어서 다행이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삶에 근태란 없었기에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외부로 외출한 것이 신경 쓰였다.
물론 근태라고 할 수 없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점심시간은 휴게시간이니 어떻게든 시간 안에 도착하려고 했다.
하지만 세상일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서 나는 점심시간이 10분 지나서 학교에 도착했다.
나는 날다람쥐처럼 뛰어서 위클래스에 도착했고 안도의 숨을 쉬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로 그때 위클래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에 있다가 지금 오세요?”
그 남자는, 교장 선생님이었다.
나는 순간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 같았다.
뭐라고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바지가 찢어져서 집에 가서 갈아입고 오는데 도로가 공사 중이라서 겨우 다녀왔다고 하나?
이게 팩트지만 그 교장 선생님에게는 솔직하고 싶지 않았다.
극히 개인적인 내 생각임을 전제하고 교장 선생님에 대해 언급하자면 그분은 신뢰를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위클래스 관련해서 교장 선생님이 협조적이기는커녕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을 겪었던 경험이 있어 더욱 믿음이 안 갔다.(구체적인 에피소드를 적고 싶지만 생략한다.)
위클래스에 관심이 없으면서 이 시간에 위클래스에 앉아 있는 이유는 뭘까?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공격을 막는 수비수처럼 마음의 진영을 갖추기 시작했다.
교감 선생님은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했다.
“제가 30분 전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디에서 뭘 하시느라 이제 오시나요?”
나는 사회적 미소를 살짝 지으며 교장 선생님 앞에 앉았다.
교장 선생님이 다 알고 있으니 말해보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교장 선생님이 알고 있다는 의미는 이랬다.
당시 교장 선생님에 대한 불만이 있는 편이었기에 계약직을 포함 교직원들이 험담을 한다는 추측을 교장 선생님은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다른 선생님들과 교장 선생님의 험담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른 게 아니냐는 뜻일 거라고 추측했다.
교장 선생님은 집요한 성향이 있어서 떠도는 이야기도 출처를 확인하려고 했었다.
교장 선생님은 나를 코너로 몰았다는 확신을 하는 표정이었다.
교장 선생님이 반박하거나 확인하지 못할 만한 이유를 생각해내야 했다.
몇 초의 시간이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나는 마지막 스파이크를 날리는 심정으로 말했다.
“화장실에 있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이것 봐라?’는 얼굴을 했다.
“화장실에서 30분 넘게 있었다는 건가요?”
“네. 제가 변비라서요.”
교장 선생님 입이 떡 벌어졌다.
나는 교장 선생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교장 선생님은 현실감 떨어지는 상황에 사고가 정지된 것 같았다.
상담사가, 성인이 변비라고 대놓고 말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터였다.
변비라고 하는데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20초 뒤 교장 선생님이 현실감을 찾고 나자 황당한지 “변비라고요? 변비시구나.”라고 하며 웃었다.
그 웃음은 이번에는 물러나지만 변비는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비웃음이었다.
아무려면 어떤가.
나는 뻔뻔하게 맞다고 대답했다.
교장 선생님은 비웃음을 흘리며 사라졌다.
교장 선생님이 사라지기 전에 위클래스에 온 이유를 물었더니 선생님은 대답을 얼버무렸다.
격려 차원 방문이라는 둥, 위클래스 운영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둥.
내가 변비라고 둘러댄 것보다 더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어쨌든 변비라는 거짓 커밍아웃 뒤로 교장 선생님은 나에게 터무니없는 부탁을 하거나 꼬투리를 잡지 않았다. 자기애적 성향이 강한 교장 선생님이 보기에 나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덜 피곤하겠다 싶었던 것 같다.
교감 선생님 뚜껑을 날리고 교장 선생님과 변비 논란을 겪고 난 뒤 학교에서 상담하는 것이 싫어졌다.
학교가 학생들을 위해 존재하는 곳인지 의문이 들었고 다양한 내담자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도 커져서 결국 학교 상담사를 그만뒀다.
막상 그만두니 내가 어디에서 다양한 내담자를 만날 수 있을지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단 퇴사하니 속은 후련했다.
상담사로서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