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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햇볕 Jul 12. 2024

교감의 뚜껑을 날리다



내 반골기질 때문에 일상이 드라마가 될 때가 종종 있다. 

초등학교 시절 내 별명은 


“이의 있습니다.”

였다. 


어린이 회의 시간에 의문과 반론을 펼치기 전 내가 손을 들며 했던 말이다. 

회의는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에 진행되었는데 거의 빠짐없이 의견을 발표했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종종 “왜?”라고 묻는다. 

그러면 주변 사람은 때로 당황해한다. 

오히려 내게 

“그게 왜 궁금한데?”라고 되질문하기도 한다. 

내가 궁금해하는 것은 진지한 주제라기보다 순간 드는 느낌들 때문에 생긴다. 


상담대학원 석사 때 대규모로 진행된 공개사례발표가 있었다. 

공개사례발표란 자신이 상담한 사례를 슈퍼바이저 2명과 여러 참관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지도받는 것이다. 

상담사 입장에서 매우 긴장되고 걱정되는 일이다. 

상담을 늘 잘하기도 어렵거니와 초심 상담자일 때는 더욱 힘든 일이다. 

공개적으로 지도를 받고 나면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하지만 속상하기도 하다. 

그래서 상담사들은 슈퍼비전을 “술퍼비전(술을 먹게 된다는 의미), 슬퍼비전(슬퍼진다는 의미)”이라고 말한다. 


여하튼 이런 공개사례발표를 잘 모르는 석사 선배가 하게 되었는데 선배가 지도받을 때 너무 울어서 슈퍼바이저가 차마 말을 못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보기에 선배는, 스스로 알아서 자신을 처벌했으니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언급하지 말라는 무의식적 압력을 사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른 참관자들 대부분은 석사 선배의 눈물을 이해한다거나 공감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동감이 되지 않았고 마음속에서 


'왜 울었을까? 슬픈 것 같지 않은데?'


라는 말이 계속 떠올랐다. 

그래서,


“질문 있습니다.”


라고 손을 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도 사회화가 된 상태이기 때문에 꾹 참았다. 

참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문이 닫히려고 할 때 선배가 타게 되었다. 

선배 얼굴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다짜고짜 


“왜 울었어요?”


라고 물었다. 물은 것이 아니고 꾹 눌러놨던 생각이 용수철처럼 튀어나온 것이다. 

엘리베이터에는 나와 선배 말고 2명이 더 있었는데 그들도 깜짝 놀란 것 같았다. 

선배는 황당함과 짜증과 무엇인가를 들켰을 때 윽박지르고 싶은 분노가 섞인 표정으로 나를 쏘아보더니 아무 말도 않고 새침하게 등을 돌렸다. 

엘리베이터는 빠르게 올라갔고 문이 열리자 선배는 화난 걸음으로 사라졌다. 

   

내가 꾹 참은 것은 의식적으로 참은 것이고 이는 방어기제 중 “억제”에 해당된다. 

억제와 비슷하게 누른다는 의미의 “억압”이 있는데 이것은 무의식적이기 때문에 억제와 다르다. 

억제는 성숙한 방어기제로 볼 수 있다. 


내가 궁금증을 억제하려고 했던 것은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할까에 대한 염려였다. 

선배에게 질문 후 아주 짧은 순간 후회가 들었지만 그래도 하길 잘했다고 느꼈다. 

선배는 아무 말 없었지만 선배 태도를 보니 울음이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묻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선배 입장에서는 잘 모르는 후배가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인사도 없이 불쑥 질문을 해서 기분 나빴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선배의 태도는 그 이상을 넘어서 많은 감정을 내뿜었다. 


  






서두가 길었지만 내 이런 성향은 중학교에서 상담사로 근무할 때도 그랬다. 

우리나라 학교에 상담 전용 공간인 위클래스가 처음 만들어지는 것이라서 나는 고무되었다. 

상담에 대한 인식이 발전한 것처럼 느껴졌다. 

제대로 상담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도 들었다. 


위클래스가 만들어지고 얼마 되지 않아서 교감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당시 교감 선생님은 따로 교감실이 없었고 교무실 한쪽에 낮은 파티션으로 경계를 나눠서 사용했다. 

교감 선생님은 나를 보자 반가워하며 음료도 내줬다. 

이런 교감 선생님의 태도에 흠칫했다. 

평소 교감 선생님은 다정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커피도 로코코 시대처럼 화려한 찻잔에 마셔야 했고 스스로 커피를 타지도 않았다. 

누군가가 타주는 커피만 마시는 사람이 내게 스스로 음료를 내주다니. 

뭔가 있음을 감지했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수업 중에 말썽 피우는 아이들을 위클래스에서 맡아줘야겠어요.”


교감 선생님은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당시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피해를 받으니 대안으로 훈육관 비슷한 인력을 배치할 때였다. 

그런데 미처 인력을 배치하지 못한 학교들이 있었고 그때는 교감이 수행하라는 지침이 있었다. 


“마침 위클래스도 완공되었으니 딱 맞아떨어지네.”


내 안의 그놈, 반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클래스는 상담 공간이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교감 선생님의 얼굴에 짜증이 스쳐갔다. 

그러나 이내 평정심과 우아함을 회복해서


“상담도 결국 아이들 잘 되라는 거니까 아이들을 지도하면 되지요.”


“상담과 생활지도는 달라서 안 됩니다. 그리고 공문에는 교감 선생님 하시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순간 교감 선생님이 발딱 일어났다. 

더 이상은 못 해 먹겠다는 듯 얼굴이 일그러지며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에 나오는 바다 마녀 울슐라처럼 변신했다. 

교감 선생님의 평정심과 우아함은 빠르게 사라졌고 인내심이 사라진 마음 바닥을 득득 긁으며 소리쳤다. 


“내가 애들을 싫어하는 거 몰라요!”


교무실에 있던 선생님들이 큰소리에 놀라 교감 선생님과 나를 쳐다봤다. 

교감 선생님은 아랑곳없이 소리쳤다. 


“난 애들이 싫어요. 그런데 어떻게 내가 해?”


교감 선생님은 씩씩 대며 나를 내려다봤다. 

나는 천천히 일어났다. 

교무실 공기가 차갑게 식으면서 긴장으로 조여지는 기분이 들었다.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들은 숨조차 안 쉬는 것 같았다. 

교감 선생님을 비롯해 다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쳐다봤다. 

내가 마치 폭탄을 들고 있는 테러범이나 독립투사처럼. 

교감 선생님에게는 테러범이었을 것이고 교감 선생님의 자기애적 언행에 상처받은 다른 선생님들에게는 독립투사였으리라. 


“그래도 하셔야 해요. 위클래스에서 할 일이 아니니까요. 그럼 가 보겠습니다.”


교감 선생님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더니 신음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으으읍, 으아악.”


그러더니 들고 있던 볼펜을 구석으로 던졌다. 

볼펜이 날아가는 순간 교감 선생님의 머리 뚜껑도 함께 날아갔다. 

마치 빠르게 이동하는 미확인 비행물체처럼. 

나는 음료수 병을 테이블에 얌전히 올려놓고 살짝 목례를 하고 교무실을 나왔다. 

뒤에서 교감 선생님이 분에 못 이겨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후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현실은 냉혹했고 교감 선생님은 울슐라보다 더 집요하고 뒤끝이 창대했다. 

교무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내 이름을 언급하면서 “우리 학교 요주의 인물이니 잘 감시해야 한다.”라고 했다. 

당시 나는 교원이 아닌 계약직 상담사라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고 다른 선생님이 조심하라고 귀띔해 줬다. 

교감 선생님의 뚜껑을 날려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히긴 했지만 위클래스가 상담 외 공간으로 활용되지는 않았다. 

교감 선생님의 비협조는 은근히, 때로는 과감히 진행되다가 교감 선생님의 전근으로 끝이 났다. 


아닌 것은 아니다. 

상대가 누구라도 안 되는 것도 있다. 

안 되어야 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정의는 살아있다는 말이 아니라 삶에서 지키고 싶은 것들은 지켜져야 한다. 

“학생이 싫어요.”를 당당히 외치는 선생님은 내가 지키고 싶은 쪽이 아니다. 

자신의 책임을 전가하고 밀어붙이는 행위를 모르는 척 받아주는 것 역시 해당되지 않는다. 


의문 제기가 반골로 보이지 않는 세상, 

궁금함이 허용되는 세상을 무지개처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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