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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햇볕 Jul 05. 2024

창작 욕 래퍼



상담대학원을 진학하면서 이직을 했다. 

대학원이 공부를 엄청 시키는 곳이라는 말을 듣고 직장과 대학원의 물리적 거리를 줄였다. 

중학교 상담실에서 근무를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고등학교보다 낫겠지 했다. 

그런데 내가 이직한 중학교는 다양한 어려움을 갖고 있는 곳이었는데 이 어려움은 개인적 생각이 아닌 어느 정도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했다. 


이 학교는 복지지정학교로서 많은 학생들이 복지 도움이 필요한 상태였다. 

중학교로 이직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학교마다 위클래스를 만들게 되었다. 

교육청에서 준 예산으로 상담실을 위클래스 상담실로 인테리어 하는 것이다. 

당시에는 매우 새로운 도전이었는데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위클래스가 설치되기 전, 학교 상담실은 학생부 옆에 조그맣게 붙어있었다. 

상담실로 들어오려면 학생부를 통과해야 했다. 

상담실과 학생부는 방음벽이 아닌 선팅된 창문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학생부 소리가 대부분 들렸다. 

나는 상담을 할 때 상담 내용이 학생부에 들릴까 봐 상담 테이블을 학생부 공간과 최대한 떨어뜨려 놓았다. 

상담을 할 때도 조용조용히 말했다. 


어느 날, 출근하니 상담실과 학생부 사이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누군가 상담실에 들어온 것 같았다. 

기분이 상했다. 

상담실은 내담자 정보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 

학생부에 나이 든 여선생님이 앉아 있길래 상담실에 들어온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바로 그 선생님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유를 물으니 학생부가 답답해서 상담실과 학생부 사이의 창문과 복도 쪽 상담실 창문도 다 열었다고 했다. 내가 상담실 비밀 보장에 대해 언급을 하니 그 선생님은 내 말을 자르고 말했다.      


“답답하다고요. 전 답답한 걸 못 참아요.”     


아, 나는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전투 의지를 느꼈다.      


“선생님, 답답하시면 나가셔서 바람을 쐬시는 것이 어떨까요?”     


그 선생님이 


“아, 몰랐네요. 고맙습니다.” 했을까? 

아닐 확률이 매우 높은 분으로 한술 더 떴다.      


“내가 왜 밖으로 나가요?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거예요.”

     

이런 젠장.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 대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하고 싶었다. 

가까스로 이성의 얇은 끈을 붙잡고 말했다.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죠. 그런데 곧 상담이라서 창문은 다 닫겠습니다.” 


“저기...”      


여선생님이 뭐라 했지만 창문을 서둘러 닫았다. 

그 여선생님은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건강 핑계로 자기중심적으로 굴었다. 

공부한 꼰대로서 단연 으뜸이었지만 사실, 학생부에는 그 선생님 못지않은 선생님들이 있었다. 

학생부 소속 선생님들이 이상한 쪽으로 독특했던 이유는 학생부가 선생님 사이에서 선호하는 부서가 아니기 때문이리라. 

물론 선호해서 학생부에 오신 분도 계시겠지만 내 경험에서는 아니었다. 





창문을 닫고 열불을 식히고 있는데 학생부에서 남자선생님 목소리가 들렸다. 

오전부터 어떤 학생을 훈계하고 있는 듯했다. 

학생이 지각을 한 모양인데 도망가다가 걸려서 학생부로 끌려온 것 같다. 

학생이 뭐라 뭐라 했는데 발음이 부정확해서 잘 들리지 않았다. 

순간 남자선생님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큰소리에 깜짝 놀라서 상담실과 학생부 사이 문을 조금 열고 내다봤다. 


중2 정도 되어 보이는 남학생을 남자선생님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야단을 치고 있었다. 

남학생은 고개를 옆으로 살짝 틀어서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학생에게 화가 났는지 선생님이 소매를 걷어 올렸다. 

긴장이 되었다. 

혹시 선생님이 학생을 때릴까 염려가 되었다. 

그간 학생부에서 체벌을 한 것을 본 적은 없었지만 그만큼 긴장이 되는 상황이었다. 

학생도 약간 흠칫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팔을 걷어 올리며 학생에게 다가갔다. 

학생이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선생님 얼굴은 붉은 악마처럼 빨갛다.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속사포처럼 멈추지 않고 계속 뭐라고 뭐라고 했다. 

거의 토해내는 것처럼 말을 이어갔는데 내용을 정리하면 학생이 지각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간단한 문장을 토해내듯 한 것이 아니라 문장의 대부분은 욕이었다. 


처음에 들을 때는 욕인지도 몰랐다. 

흔히 듣는 욕이 아니었기 때문인데 예를 들면 

“수박씨 발라먹어.”, “다 적 같이 느껴진다.”를 빨리 말하면 욕 같은 느낌이 나는 것과 비슷했다. 

또는 긴 저주문 같은 서사로 이뤄진 욕들도 있었다. 

위로 3대, 아래로 3대를 넘나드는 망조와 저주가 판소리처럼 전개되었다. 

지속되는 욕은 나중에 나름의 리듬을 형성하게 되어서 랩을 듣는 것처럼 느껴졌다. 

긴 욕을 듣는 학생은 넋이 나갔다. 

상대에게 변명이나 설명할 짬을 주지 않아서 그저 듣고만 있어야 했다. 

긴 욕의 여정이 끝나자 선생님이 말했다.


“나가봐.”


학생은 그제야 주술에서 풀려서 휘청거리며 나갔다. 

선생님은 매우 개운한 표정으로 커피를 홀짝 마셨다. 

이것이 학생 지도일까? 

내가 보기에 선생님의 투사로 보였다. 

상담에서 투사란 자신 내면의 소화하지 못하는 부정적인 것을 타인에게 던져서 자신에게 부정적인 것이 없다고 느끼는 심리적 방어기제다. 

사람은 좋은 것은 접근하고 부정적인 것은 피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이런 접근과 회피 정도가 심한 경우 조금이라도 고통을 유발하는 불편한 것, 부정적인 것이 있을 때 견디지 못한다. 

부정적인 것을 타인에게 넘긴다고 자신의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투사한 순간 고통에서 해방되었다고 착각할 뿐이다. 

그 선생님은 대부분 시간에 짜증스러워했는데 일상에서 주로 빈정대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이에나처럼 투사할 대상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교사란 이름 아래, 부모라는 이름 아래, 상사라는, 선배라는, 교수라는,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자신의 불안, 두려움, 분노, 억울함을 타인에게 던지고 있는지. 


이 글을 통해 당시 학생 지도라는 이름으로 투사 대상이 된 학생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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