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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햇볕 Jun 21. 2024

밥값 하기



남고에 상담사로 출근하면서 청소년소설 창작 모임에 나가지 못했다. 

전일제로 근무해서 시간을 낼 수 없었다. 

온전히 한 달을 근무한 뒤 휴가를 내서 창작 모임에 나갔을 때 창작 모임 동료들이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거 아니냐?”라고 염려했다. 

나는 자신 있게 아니라고 했다. 

나는 오로지 창작을 위해 내 경험을 넓히고 있는 중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글보다 상담에 마음이 쓰였다. 

내가 상담사로서 월급을 받을 때 마음이 불편했다. 

창작 열망을 속에 품고 있어서가 아니라 학생 내담자와 상담을 할 때 무력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상담은 심리 역동을 다루는 것이며 역동을 다루려면 단순히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할 수는 없다. 

즉, “나 때는 말이야, 내가 살아보니 말이야.” 입장에서 조언해 주는 것이 아니다. 

비슷하게 보여도 하늘 아래 똑같은 일을 겪는 사람은 없다. 

상담은 경청인데 그냥 듣기만 해도 되는가? 

그런데 듣는 것도 힘들었다. 

내담자가 하는 이야기가 내 생각과 다를 때 내 안에서 반감이 들어서다. 

그렇다고 아니라고 하면서 토론을 하는 것은 상담이 아니기에 꾹 참고 듣는다는 것은 힘들다. 

듣고만 있을 수도 없고 역동도 다루지 못하니 활동을 많이 했다. 

그려도 보고(어설픈 그림검사였다.) 적어도 봤다. 

그러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내담자 이야기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기억나는 학생 내담자가 있다. 

내담자 보호를 위해 글에 내담자가 특정되는 내용은 적지 못함을 먼저 알린다. 

   

처음 학교상담자로 근무하면서 오래도록 기억나는 내담자는 엄마가 부재했고 아버지는 이따금 집에 들러 얼마간 돈을 주고 다시 떠난다고 했다. 

그 학생은 중학생인 여동생과 둘이서 지냈다. 

그 학생은 긴 앞머리로 눈을 가리다시피 하고 다녔고 상담 중에도 고개를 숙이거나 다른 곳을 봐서 제대로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상담에서는 “아이 컨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언어와 비언어가 있다. 

표현 비중을 100%로 놓을 때 언어는 10%가 안 된다. 

비언어가 90% 이상이다. 

비언어적 표현이라는 것은 태도, 뉘앙스, 눈 맞춤으로 그중에서 눈 맞춤은 여러 정보를 준다. 

관계가 어려울수록 눈 맞춤이 어려운데 타인에 대한 불신으로 불편감이 높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상처를 받은 과거 경험이 있을 때 방어하게 된다.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 것도 눈을 통해 두려움, 불안, 분노 등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학생은 얼굴을 보기 어려운 것뿐 아니라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나는 여러 상담 활동지를 하다가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마음에 내담자가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날도 내담자 학생은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앉았다. 

낮에는 아직도 여름의 열기가 가득해서 운동장으로 난 상담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체육관 건물에 있는 상담실은 층이 높아 창문으로 바람이 잘 들어왔다. 

시원한 바람이 순간 내담자 학생의 앞머리를 들어 올렸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내담자의 오른쪽 얼굴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마치 마징가 제트에 나오는 아수라 백작 같았다. 

아수라 백작이라는 상상이 드는 나를 발견하니 내가 굉장히 옛날 사람처럼 느껴진다. 

어쨌거나 학생 오른쪽 얼굴이 눈부터 뺨까지 검붉은 멍이었다. 

학생이 성급히 머리를 내렸다. 


학교폭력을 당한 걸까? 

아니면 이 학교에 폭력적인 교사가 있나? 

나는 상담사로서도 청소년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어른으로서 학생에게 멍든 이유를 물었다. 


학생은 말을 하지 않다가 머뭇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에게 맞았다고 했다. 

아버지가 여중생인 내담자 동생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때리려고 해서 내담자가 여동생을 피신시키고 대신 맞은 것이다. 

인권감수성이 현재보다 덜 했던 때였지만 이것은 학대였다. 

그래서 담임선생님과 상의해 학생 보호자인 학생 아버지를 만났지만 개선의 여지가 없었다. 

내담자 학생은 법적으로 아버지라는 보호자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없었다. 


나는 이 학생을 상담하면서 무력감을 느꼈다. 

우울하냐고, 힘드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이 학생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궁리를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내담자 학생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지금 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내담자가 대답했다. 

   

“선생님, 밥은 어떻게 해요?

   

밥?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슬픔, 괴로움, 분노 같이 감정이 묻어있는 에피소드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폭력적인 아버지가 밉고 자신의 삶이 억울하고. 

고통을 겪지 않을 방법에 대해 알고 싶다는 이런 것을 예상했다. 


내 예상과는 영 다른, 심플하고 너무나 현실적인 질문이었다. 

나는 왜 밥 하는 것이 궁금한지 물었다. 

정말 내가 궁금했다. 

  

 “동생이 자꾸 늦게 집에 와서 아빠한테 맞을 뻔했어요. 

  그래서 일찍 오라고 하니까 여동생이 집에 밥이 없어서 늦게 온다고 말했어요. 

  밥이 있으면 여동생이 일찍 올 것 같은데 제가 밥을 할 줄 몰라요.”

   

내담자 학생이 길게 말한 게 처음이었다. 

그래서 내가 울컥했나?

울타리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고등학생이 자신보다 어린 동생의 울타리가 되려고 한다. 

동생 대신에 맞고 동생을 위해 밥을 짓는 방법을 배우려고 한다. 

나는 나오려는 눈물을 삼켰다. 

혹여라도 내담자 학생이 자신을 동정한다고 느낄까 염려되었다. 

인간은 어떤 가혹한 상황에서도 사랑을 향해 갈 수 있음에 감동했다. 


나는 심리검사, 상담 활동지를 옆으로 치우고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리고 아주 자세히 밥 짓는 법을 알려줬다. 

쌀을 3번 정도 씻고서 어떤 조리 도구라도 물을 손등에 찰랑거리게 부으면 된다고. 


내담자 학생은 눈이 반짝였다. 

얼굴도 발그레해졌다. 

오늘 당장 집에 가서 밥을 해야겠다고 했다. 

나는 처음으로 상담사가 된 기분이 들었다. 

심리상담이론과 상관없이 내담자와 소통한 느낌을 받았다. 

이 경험은 현재까지 상담자로의 내 신념이 되었다. 

상담이론이 중요하긴 하나 내담자의 고통과 바람을 이해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것이 살아있는 상담이다. 

듣기 좋은 이야기, 만능일 것 같은 해법 제시가 아니라 내담자를 이해하고 함께 하는 것이 진짜다. 




   



나는 이후 상담자로서 밥값을 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아닌 것 같았다. 

내담자를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해는 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니 공부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알고 싶은 것은 꼭 알아야 하는 성향이기 때문에 상담 공부를 본격적으로, 

제대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밥값을 하려면 밥 짓는 법을 먼저 알아야 했다. 

내게 석사 진학은 밥을 짓는 법을 배우는 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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