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햇볕 Aug 30. 2024

은혜롭고 우아한 상담관




군상담관에 합격해 5일 정도 합숙 교육을 받았다. 

군이란 조직에 대한 이해와 군상담의 특성, 트라우마 상담 관련 교육이었다. 



훈련병, 신병, 이병, 일병, 상병, 병장. 

계급에 따른 병사 호칭부터 부사관, 장교의 호칭도 알게 되었다. 

요즘은 군대에 다녀오지 않더라도 드라마를 통해서 군대 문화를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직업 현장이 군대이다 보니 긴장되었다. 

호칭부터 익혀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문화”라는 측면에서 우선 군 문화를 알아야 했다.



지금까지 인상에 남는 것은 차를 타거나 건물을 나설 때 간부가 문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스스로 문을 열고 탈 수 있는데 왜 이래야 하는지는 설명이 없었다. 

민간인에 대한 그들의 예의로 생각했는데 상담관으로 지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간부가 상담관들에게 매번 문을 열어주지도 않지만 열어준들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예의는 상대를 존중하는 의미인데 문만 열어주고 존중이 없다면 그것은 생색일 뿐이니까. 



어쨌든 처음 군에 들어가서 상담을 시작했을 때는 별세계였다.      

나는 육군에서 상담을 하게 되었다. 

육군 상담관이 군상담관들 중 가장 많은 숫자로 비슷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상담관들은 서로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군상담관은 각자 맡은 구역의 부대를 상담하기 때문에 서로 겹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비슷한 지역에 있으면 간혹 함께 일을 할 때도 있다. 

사단이나 군단 회의에서 볼 수도 있고 같은 사단이면 서로 협조해야 할 일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군상담관 초반일 때는 사단을 넘어서 군단 개념으로 새로 상담관이 들어오면 인사 자리를 마련했었다. 

군상담관 대부분은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었고 간혹 젊은 여자 상담관이 있었다. 



다과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각자 근무지로 가는 길이었다. 

육군 부대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근무지로 갈 때 차가 필요했다. 

나는 막 군상담이 되어서 전담 차가 없었을 뿐 아니라 길도 몰라 어떤 상담관 차를 타게 되었다. 

나 이외에도 여러 명의 상담관이 함께 그 차를 탔다. 

“레토나”라고 불리는 차였는데 군용차였다. 

뒷좌석에 여러 명이 붙어 앉았는데 의자 바닥이 나무판처럼 딱딱했다. 

레토나가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온몸으로 충격이 전해졌다. 

그래도 여러 명이 함께 타고 가니 나름 재미있었다. 

한 적한 도로를 평화롭게 지나가는데 나이 지긋한 상담관이 내게 말을 걸었다. 

경력이 꽤 된 상담관이었는데 귀부인 느낌이 났다.      


“선생님은 어떤 이유로 군상담에 지원한 거예요?”     


이 질문은 군상담관 면접에서 받았던 것이다. 

군상담관 면접은 압박 질문이었는데 지원자 1명에 면접관이 5, 6명이 되었던 것 같다. 

그들이 동시에 정신없이 질문을 했었다.

면접 질문은 대부분 직설적이었다. 

직설적인 압박 질문을 하는 이유는 군상담은 위기상담 성격이 강해서이다. 

위기상담에서는 당황하지 않고 대처하는 능력이 중요한데 판단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나는 순간 면접 장면이 생각이 났다. 

그때 했던 답변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월급을 많이 주고 상담도 많이 할 수 있다고 해서 왔어요.”     


우아한 선배 상담관이 얼굴을 찌푸렸다. 


마치 불쾌한 냄새를 맡은 듯한 표정이다.     

 

“선생님, 상담은 봉사하는 마음으로, 좋은 마음으로 하셔야죠.”     


응? 나는 직업 상담사인데 봉사하는 마음이라니?

그리고 월급을 많이 받으면 좋은 마음이 아닌가?    

 

“선생님, 저는 받는 만큼 열심히 상담합니다.”     


“상담이 중요하지 돈이 중요한가요?”     


우아한 선배 상담관은 눈을 치켜떴다. 

그녀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가드가 쳐지는 것 같았다.   

   

“저는 돈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상담을 열심히 합니다.”     


선배 상담관은 “쯧.” 소리를 냈다.      


“돈은 돈일뿐이에요. 상담은 다르죠.”    

 

“선생님은 돈이 필요 없으신가 봐요?”     


“네. 저는 돈 필요 없어요.”    


상담은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 

그럼 지금 나와 함께 덜덜 거리는 레토나를 타고 가는 이유는 뭔가?



선배 상담관은 상담과 돈을 연결시키는 내 말이 매우 마땅하지 않은 듯싶었다. 

감히 심리상담을 돈으로 운운해?

이런 도도함이 선배 상담관 말에서 느껴졌다. 







상담은 돈은 받지 않을 때 더 위대하거나 의미가 있나?

상담은 심리역동을 다루는 전문적인 작업이며 전문인은 합당히 보수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병원에 가서 진료받을 때 경력이 많은 의사에게 진료비를 더 내지 않나?

인턴이냐 레지던트냐 교수급이냐에 따라서. 

그런데 상담은 왜 돈을 안 받아야 의미가 있나?



나는 선배 상담관의 자기중심적 휴머니즘이 역겨웠다. 

나도 모르게 마음의 소리가 음성으로 나왔다.      


“돈이 필요 없으시면 선생님 월급 저 주실래요?”     


내 말을 들은 우아한 선배 상담관 표정이 어땠냐면, 

백설공주가 죽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난쟁이와 알콩달콩 살고 있는 모습을 봤던 그 표정이 되었다. 

당황스럽고 화도 나고 의아한 표정. 

선배 상담관은 더 이상 이상하고 되바라진 신참 상담관을 상대하지 않겠다는 의지로써 등을 돌려 앉았다. 

레토나 안의 분위기가 불편해졌다. 

차 안 공기가 후덥지근해졌다. 

레토나는 에어컨이 없고 창문도 유리가 아닌 두꺼운 비닐이다. 

비닐에 벨크로 테이프가 달려서 붙였다 뗐다를 했다. 

나는 벨크로를 반쯤 떼어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들어왔지만 불편한 공기는 쉽게 환기되지 않았다.      




나는 심리상담사도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노동자는 유무형의 노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다. 

그런데 심리상담에 대해서는 심리상담사조차 노동자라는 인식에 불편함을 갖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여기에는 노동을 낮춰보는 인식과 심리상담을 레벨 높은 형이상학으로 보는 인식이 깔려있다. 



심리상담사는 결론적으로 삶을 잘 사는 사람, 직설적으로는 잘난 사람, 도가 튼 사람, 인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 착각이 있는 것 같다. 

상담은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담사는 “갑”이 아니라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의 동반자, 가이드다. 

함께 공포영화를 보는 동지라고 생각한다. 


상담사가 뭐 그리 잘났나?


인간의 고통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심리상담사이다. 

당연히 심리상담사도 사람이니 고통이 있다. 

심리상담사도 상담을 받고(개인분석) 헤매고 실수하기도 하고 감정 조절이 안 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다른 점이 있다면 실수를 알고 인정하고 나도 모르게(무의식) 한 언행에 대해 심리역동적 이해를 할 수 있다는 것이리라.      




군상담관이 되어서, 노동자가 되어서 열심히 상담을 했다. 

덕분에 상담 요청이 많아져서 몸과 마음이 참 힘들기도 했다. 

월급을 받을 때마다 내 노력이 환산된 것 같았다. 

돈이 필요 없다고 하던 선배 상담관에 대해서 간혹 이야기가 들려왔다. 

선배 상담관은 상담에 관심 있는 군 간부 부인들을 모아서 갑처럼 행동한다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그 선배 상담관은 누구를 만나도 자신의 돈은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월급을 타도 커피 한 잔 사는 법이 없다고 한다. 

너무나 우아하고 은혜로워서 타인에게 대접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했는지. 



선배 상담관 상담이 은혜로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선배의 월급이 축나지 않았던 것은 확실하다. 

은혜롭고 우아한 선배 상담관은 월급을 어떻게 했을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혹시 선배 상담관이 내 글을 본다면 지긋지긋하다고 할 것 같다. 

상담을 노동이라고 말하는 신참 상담관일 때부터 재수 없었는데 글까지 써서 되지도 않는 말을 한다고.







선배, 상담은 은혜롭고 우아하지 않아요. 

상담은 날 것의 삶이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입니다. 

상담자나 내담자나 땀 흘린 만큼 나아가는 정직한 노동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