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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햇볕 Sep 06. 2024

똘기 완전 충전



나는 노동자로서 군에서 상담을 열심히 하고 싶었다. 

상담을 하려면 군부대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것이 어려웠다. 

내가 처음 맡은 지역은 상담관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었다. 

나는 두 번째 상담관이었는데 처음 근무했던 상담관 이미지가 좋지 않았기에 그 여파가 있었다. 

첫 상담관은 군인 출신이어서 그런지 상담사라기보다는 감찰관 비슷했던 것 같았다. 

군상담관 제도가 생긴 초반에는 군인 출신이 많았고 상담 자격이나 경력이 없어도 가능했다고 들었다. 

상담 인력을 상담 자격, 경력 없이 채용한다는 것이 참 이해하기 어려운데 어쨌든 여러 이유로 군상담 초반에는 비전문가가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 군상담은 상담 자격과 경력이 중요하며 전문 영역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내 전임은 비전문가였던 것이다. 

전임은 심리역동을 다루는 상담과는 무관했던 것 같고 자신의 군 경력으로 장병을 대했다고 들었다. 

장병들은(간부와 병사) 전임 상담관에 대해 피로감과 스트레스가 높았다. 

전임 상담관이 중대에 들어오면 상담이 아니라 감찰을 해서 상위 부대에 이를 전달해 갑작스러운 진단(감찰)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사정조차도 처음에는 알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상담 의뢰 자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맡은 지역의 부대들은 상담에 대한 신뢰가 거의 바닥이었다. 

상담관이 부대에 들어오면 소란스러워지고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상담 의뢰를 기다리며 상담실을 정비했다.           

부대에 처음 들어가서 신분증을 만들고 상담실로 향했다. 

상담실은 본 건물과 떨어진 식당 건물 2층 끝, 화장실 앞에 있었다. 

3평 정도 되는 공간이었는데 문을 여니 매캐한 먼지 냄새가 났다. 

실제로 바닥에 흙이 수북했다. 

며칠 전까지 상담실로 사용했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창문은 오랫동안 열지 않아서인지 잘 안 열렸고 창문틀은 오래되어 겨울에 추위를 막지 못할 것 같았다. 

책상 하나와 원탁과 의자 두 개가 전부였다. 

책상에는 두툼한 모니터와 커다란 프린터가 있었다. 

전임 상담관이 내게 전달해 준 유일한 말은 


“프린터에서 탱크 소리가 난다.”


는 것이었다. 

정말 프린터에서 탱크 소리가 났다. 

언제 고장 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낡았다. 

상담 공간은 안락하고 정서적이어야 하는데 여기는 취조실도 아닌 창고 같았다. 

상담실 구석에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빗자루와 커다란 쓰레받기가 인상적이었다. 

청소 도구가 있지만 상담실을 쓸고 닦은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 

그냥 방치된 창고. 

냉방 장치도 없었고 돌아가지 않는 선풍기가 한 대 있었다. 

상담실 문을 열면 남자 화장실(군대이기 때문에 여자 화장실은 본관 건물에만 있었다.)이 바로 보였다. 

청소 유무는 알 수 없었지만 암모니아 냄새가 솔솔 났다. 

그래서 문을 열어둘 수도 없었다. 

잘 열리지 않은 창문을 낑낑대며 열고 바닥을 쓸다 현타가 왔다. 

이곳이 경찰보다 나은 곳인가?

당장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부대가 많으니 상담은 많이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자신을 다독였다. 




휑한 상담실에 있기 싫어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읍으로 나가서 화원을 찾았다. 

과거 나는 잘 산다는 선인장도 죽이는 식물계의 마이너스 손이었다. 

그런 내가 화원에 간 이유는 사막처럼 척박한 상담실에 생기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화원에 들어가서 "죽지 않은 식물"이 있냐고 물었다. 

화원 주인아주머니가 나를 몇 초 응시했다. 

주인아주머니는 어이가 없었을 것 같다. 

죽지 않는다는 것은 좀비이거나 애초에 살아 있지 않은 것이니까. 

내 말은 어떻게든 살아남는, 잘 죽지 않는 식물을 추천해 달라는 뜻이었다. 

아주머니는 개떡 같은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죽지 않는 것은 없지만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그런 방법이 있나요?”


나도 나름 식물을 잘 키워보려고 인터넷 검색도 하고 식물을 잘 키우는 지인과 가족에게 방법을 물어서 시도해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였다. 

그러나 화원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뭔가 비기를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물을 줄 때 대화를 해보셨나요?”


대화?

식물과 대화를 하는 내 모습을 연상하니 살짝 정신이 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저는 물을 줄 때 말을 걸어요. 아침에 와서 환기를 시키면서 어젯밤에 잘 잤는지, 오늘 기분은 어떤지.”


화원 주인아주머니는 물을 줄 때도 식물들이 놀랄까 봐 받아놓은 물을 준다고 했다. 

아주머니가 추천해 주신 아이비를 가지고 나오면서 시큰둥했다. 

식물에게 말을 거는 것이 비기라고 믿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주머니가 매우 진지하게 말을 해서 나를 놀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반신반의하면서 아이비에게 말을 걸면서 물을 줬다. 

어떤 결과가 생겼냐면 아이비는 오래 잘 살았다. 

그 후 나는 식물에게 물을 줄 때 말을 한다. 

아침에 출근해서 아이비에게 인사를 하고 퇴근할 때 인사를 했다. 

너무 잘 커서 주변 상담관에게 나눠주기까지 했었다. 

나는 이후 식물계의 마이더스 손이 되었다.  



    

잘 자라주는 아이비 덕분에 군 상담실은 조금씩 따뜻해졌다. 

상담실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큰 원탁 테이블 위에는 아이보리 패브릭 커버를 씌웠고 탱크 소리 나는 프린터는 최신으로 바꿨다. 

쓸데없이 커다란 빗자루는 상담실 앞 화장실 구석으로 옮겼고 예쁜 인테리어 소품으로 상담실을 꾸몄다. 

이렇게 나는 상담을 할 준비를 했지만 정작 상담 의뢰는 들어오지 않았다. 

고민 끝에 직접 방문하기로 했다. 

군부대는 신분이 확인이 되었다고 무조건 들어갈 수 있지 않다. 

출입 전 간부와 연락을 취해서 약속을 잡아야 한다. 

각 부대에 인사 겸 연락하려 마음먹고 있는데 군헬프콜에서 전화가 왔다. 

내가 맡은 부대에 있는 병사가 도움 요청 전화를 했다고 했다. 

헬프콜 상담사 말이 병사가 도움 요청했다는 것을 부대에 알리지 말고 만나보라고 했다. 

알려준 부대에 연락을 했다. 

상담관이 군부대에 들어가려면 인사장교와 약속을 잡아야 하는데 해당 부대 인사과에 전화를 하니 행정병이 인사장교가 출타 중이라고 했다. 

묘하게도 인사장교가 있지만 출타 중이라고 하는듯했다. 

그러나 느낌이라서 진위를 확인할 수 없어 내일 다시 전화를 하겠다고 했다. 

찝찝했지만 약속을 잡지 않으면 출입이 안 되어 어쩔 수 없었다. 







다음날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데 육군 본부에서 전화가 왔다. 

내 담당 지역에서 자살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갑자기 어제 전화했던 부대가 생각났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고 난 부대가 바로 그곳이었다. 

등골이 서늘하고 정신이 아득했다. 

헬프콜로 도움을 요청한 병사가 혹시 자살을 했나?

손이 덜덜 떨렸다. 

군에 들어온 지 두 달이 되지 않았던 시점에 일어난 자살사고였다. 

정신없이 위병소를 지나서 본관 인사과로 갔는데 간부들은 사고 난 부대로 갔는지 아무도 없었다. 

정신없는 와중에 그냥 기다리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도움을 요청한 병사가 무사한지 알아야 했다. 

군 차량을 관리하는 수송부로 갔다. 

새로운 상담관이라고 소개하고 차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사고 난 부대로 가야 한다고 했다.

내가 너무 비장하게 말해서인지 수송관이 차를 내주었다. 

레토나 운전병은 이제 막 운전을 시작한 이병이었다. 

이병도 잔뜩 긴장하고 나도 긴장했다. 

조용한 국도를 덜덜거리는 레토나를 타고 달렸다. 

부대 앞에 도착해서 상담관이니 들어가겠다고 했다. 

위병소의 병사가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안 된다고 했다. 

사고가 나면 부대는 모든 출입을 막는다. 

알고 있었지만 나는 군상담관이고 도움을 요청한 병사가, 내담자가 있어서 나는 들어가야 한다. 

가뜩이나 상담관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가 짙은 상황이라서 더욱 출입이 어려웠지만 그래도 들어가야 한다.


“후진해서 철로에 주차해 주세요.”


“네?”


이등병인 운전병이 내 말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눈치 빠른 운전병은 곧 후진을 시작했다. 

그 부대 앞에는 기차가 다니는 철로가 있었다. 

운정병이 철로에 레토나를 주차하자 위병소 병사들은 황당해했다. 

그리고 그들도 곧 나의 뜻을 알았다. 

나를 들여보내주지 않으면 부대 앞에서 다른 사고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이런 뜻이었는데 이는 곧 배수진을 친 거다. 

몇 분이 흘렀다.

2월이었지만 봄은 느낄 수 없었고 바람이 찼다. 

레토나 창문 비닐 틈으로 바람 소리가 들렸다. 

곧 기차가 다가올 시간이다. 

나도, 운전병도, 위병소 병사도 그것을 알았고 긴장감이 돌았다. 

위병소 병사가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러더니 들어오라고 다급히 손짓했다. 

우리는 위병소를 통과했다. 

위병소 병사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미친 상담관이 되는 순간이었다. 

위병소를 통과해 울퉁불퉁한 길을 달려 작은 막사 앞에 도착했다. 

어두컴컴한 중대로 들어가서 간부를 찾았다. 

그곳이 알파인지 브라보인지 찰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여튼 간부를 찾아 중대 병사를 집합해 달라고 했다. 

이미 한차례 집합을 겪었을 병사들은 어리둥절해서 모였다. 

중대 세 곳을 다니며 병사들을 만났다. 

병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들은 선뜻 이야기하지 못했다. 

나는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니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상담관에게 말하면 더 안 좋은 일을 겪었던 과거 경험이 있기에 더욱 불신했다. 

그래서 쪽지를 쓰게 했다. 

관등성명을 밝히지 말고 내 이야기가 아닌 들은 이야기를 적으라고 했다. 

쪽지에 적은 이야기들은 본인들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병사들이 바삐 적기 시작했다. 

쪽지를 수거한 뒤 나는 병사들에게 사과했다. 

어제 부대로 오려고 했는데 못 들어왔다고. 

그러자 한 병사가 갑자기 소리쳤다. 


“왜 이제야 왔어요?”


울컥했다. 

그 병사가 바로 도움을 요청한 병사였다. 

병사가 한 말은 원망과 반가움이 뒤섞인 외침이었다. 

나는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이제야 와서 미안해요. 하지만 지금부터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있을 겁니다.”


몇몇 병사가 눈물을 닦았다. 

명함을 병사들에게 나눠줬다. 

병사들이 명함을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냐면,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드라마 같은 일이 전개되었다. 

도움을 요청한 병사는 부대의 여러 부조리를 겪고 목격하면서 용기를 냈던 것이었고 내가 이것을 전달체계(군에서 명령이나 보고를 하는 위계)를 통해 알렸으나 누락이 되었다. 

누락이 된 것을 알게 된 것도 병사들이 알려줘서 알았다. 

상부의 간부들은 내가 부대를 방문해서 상담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공공연히 방해를 했다. 

방해란 부대를 방문하기 위한 차량 지원을 안 해준다던가 상담관에 대해 부정적 소문을 내는 행위 등이다. 

이것이 현실적인 면이다. 

그럼에도 내가 배차 요청을 지속하니 어쩔 수 없이 차량을 내줬다. 

운전병 중에 운전이 미숙한 이등병 운전병과 함께.

철로에 주차했던 그 운전병이었다. 

운전병이 반갑게 나를 맞이하면서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상담과 님, 레토나가 너무 안 좋아요. 가다가 설 수도 있어요.”


외관으로 봐도 이 레토나는 박물관에 있을 법한 비주얼이다. 


“그렇군요. 걱정 말아요. 차가 퍼지면 버리고 택시 타고 가요.”


운전병이 굳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덜덜거리는 레토나를 타고 울퉁불퉁한 길을 달렸다. 

우리가 달리는 길 위에는 엔진 오일인지 뭔지가 자꾸 흘렀다. 

정유가 아니기를 바랐다.  

나는 여러 비협조 속에서 도움을 요청한 병사를 그 부대에서 탈출시켰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달체계를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전달체계로 보고하면 전달이 안 되기 때문이다. 

최고 지휘관과 독대를 통해 병사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길 수 있었다. 

이 일로 여러 간부들은 나를 함부로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비협조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비협조는 치사하고 교묘해졌다.

그 뒤로 이등병 운전병은 나와 한 조가 되어 부대를 누볐다. 

그러던 어느 날, 유물 같은 레토나가 드디어 퍼졌다. 

도로를 달리는데 운전병이 다급히 소리쳤다. 


“핸들이 움직이지 않아요!”


곧 커브를 틀어야 하는데 핸들이 돌처럼 딱딱했다. 

운전병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길섶에 주차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냥 도로 한복판에 멈췄고 운전병과 나는 도로를 벗어났다. 

부대로 전화를 했고 우리는 정말 택시를 타고 복귀했다. 

이런 에피소드가 출퇴근 부대에 알려지면서 최고 지휘관의 재량으로 나는 민간 차량을 고정배차 받았다. 

이는 나만의 차가 생겼다는 말이다. 

나는 배차를 위해 여러 행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고 상담을 위해 전용차가 생긴 것이다. 

당시 전용차가 있는 상담관은 없었기에 다들 깜짝 놀랐다. 

나는 주변 상담관들이 차가 필요할 때 시간을 맞춰 도와줬다. 

이 부분이 드라마틱한 면이다. 

지금은 과거니까 편안하게 쓰지만 핸들이 움직이지 않는 차라니 아찔했다. 

시골 외곽 도로라 망정이지 자칫하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전용차가 생기고 병사를 탈출시킨 일 때문에 나는 자발 상담 요청을 많이 받는 상담관이 되었다. 

간부들과 동료 상담관 사이에서는 나에 대한 호불호가 나눠졌다. 

일부 간부들은 자신들의 잘못이 병사 상담 중에 드러날까 두려워하기도 했다. 

어떤 간부들은 상담으로 병영 위기를 관리하게 되어 좋아했다. 

동료 상담관들은 내가 열심히, 많이 상담을 하니까 자신들도 상담을 많이 하게 될까 염려했다. 

어차피 군상담은 케이스로 급여를 받는 게 아니라 월급이니까. 

그리고 나를 잘난 척한다고 생각하는 질투 어린 시선도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똘끼 충만한 상담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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