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는 자신과 맞는 상담이론이 있다.
자신과 맞다는 의미는 상담 이론 공부를 하고 관련 워크숍이나 수퍼비전을 통해서 끌리는 이론을 이른다.
나는 대학원에서 많은 상담이론을 배웠지만 그중에서 대상관계이론에 끌렸다.
대상관계이론은 멜라니 클라인이 처음 저술했는데 대상관계란 생애 초기 의미 있는 대상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론이다.
멜라니 클라인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발전시켰다고 생각했으나 정신분석과 대상관계는 유사점이 있지만 다르다.
정신분석은 추동(drive)을 중시했고 대상관계는 관계를 중시했다.
물론 두 이론 모두 무의식의 중요성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이론이다.
대상관계 이론을 배우고 자신의 유년기를 대상관계 관점으로 보고서를 썼던 기억이 난다.
유년기를 탐색할 때 종종 사용하는 방법은 “인생 최초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다.
나도 상담을 할 때 내담자에게 이 질문을 한다.
그러면 대부분 4살 이상의 에피소드를 말한다.
인간의 기억이란 언어가 발달한 뒤부터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특히 장기기억은 해마가 담당하는데 해마는 출생 후 2년부터 본격 작동한다.
이런 기억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1, 2살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그게 바로 나다.
내 인생 최초 기억은 걸음마를 막 시작한, 1살이 조금 넘은 시점이다.
아주 더운 여름날에 언니 둘과 함께 놀이터에서 놀다가 다친 기억이다.
엄마는 없었고 언니 둘은 어린 내가 귀찮았던 것 같다.
다쳐서 아팠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울면 언니들이 나를 더 귀찮아할 것 같았다.
집에 돌아가서 엄마가 다친 나를 보고 언니들을 혼냈다.
그제야 나는 울음이 터졌는데 안심이 되어서가 아니었다.
언니들을 혼내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왜냐하면 언니들은 엄마에게 혼나서 기분이 안 좋을 것인데 나는 내일도 엄마와 떨어져서 언니들과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언니들은 엄마에게 혼나서 나를 더 싫어할 것 같았다.
어린 나는 내일 더 외로워질 것 같아 서러웠던 것이다.
나의 중요 대상은 엄마인데(대다수사람들에게 중요 대상은 엄마다.) 엄마는 나와 멀리 있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일하느라 늘 바빠서 어린 나를 돌봐줄 수 없었다.
의미 있는 대상인 엄마에게 충분히 애착하지 못해 성인이 되어서도 불안을 느낀다.
내가 느끼는 불안은 일상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때로 이 불안 때문에 미리 준비하고 계획을 세우기에 준비성이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잠들지 않는 거센 파도가 있다.
이런 내용으로 대학원 때 보고서를 제출했고 “엑설런트”를 받았다.
내가 다녔던 대학원에서는 보고서를 내면 “good, very good, Excellent”로 피드백을 받았다.
엑설런트를 받아서 잠시 기뻤지만 동시에 씁쓸했다.
내가 불안정 애착이란 확인 같았다.
어쨌든 대상관계 이론은 나를 이해하는데 유용했다.
현재 내가 사용하는 상담 이론은 대상관계를 포함한 정신역동이 주 이론이다.
끌리는 상담 이론만 있는 게 아니라 끌리는 상담 현장도 있다.
학교에서, 경찰서에서 상담을 하면서 안정적으로 상담에 몰두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곳이 어디일까 생각했더니 대학교 상담센터가 다양한 연령의 내담자와 안정적으로 상담이 가능한 곳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대학교 상담센터에 상담사로 지원했다.
여러 대학교에 지원서를 넣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내 실력과 자격이 부족해서 합격이 되지 않나 싶어 의기소침했다.
당시 경찰서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개인분석을 받고 있어서 이직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힘들 때 따뜻하게 공감해 주고 수용해 주던 상담사였기에 고민과 불안을 말할 수 있었다.
돌아보면 그때 개인분석을 받지 않았다면 상담사를 그만뒀을지도 몰랐다.
대학 상담센터로 이직을 하기 위해 애를 쓰던 중 한 곳에서 면접을 보라는 연락이 왔다.
나는 너무 신나서 면접을 보러 갔다.
대학 상담센터는 조용하고 안락했다.
경찰서와 다르게 상담실에 창문도 있고 환한 햇빛이 들어왔다.
향기로운 꽃도 있고 부드럽고 따뜻한 우드 앤 화이트 톤 분위기였다.
면접을 보기 위해 대기하는 것도 참 행복했다.
면접은 잘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꼭 합격해서 경찰서를 떠나고 싶은데 면접을 보고 나니 기대 반, 걱정이 반이었다.
상담사에게 이런 내 마음을 말했다.
안정적인 상담 현장에서 상담에 매진하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상담사가
“대학 상담센터는 선생님과 어울리지 않아요.”
라고 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상담사 말은 이러했다.
내가 에너지 수준이 높으니 다이내믹한 곳이 맞을 것 같다고.
대학 상담센터는 자율권이 크지 않다고 했다.
순간 가슴속에서 커다란 불덩이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다이내믹한 곳이 나는 싫다.
지금 경찰서가 너무 다이내믹해서 떠나고 싶은데 더 있으라는 것인가?
이곳처럼 다이내믹한 곳은 싫다.
다이내믹 코리아란 말도 싫은데.
상담 환경이 안락하고 뱀 같은 동료가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
상담사가 말하는 내 “높은 수준의 에너지”가
“너는 불안정해.”
라고 들렸다.
상담사는 대학에서 상담을 했기에 나는 더 화가 났던 것 같다.
본인은 되고 나는 안 된다는 것처럼 들렸다.
왜 나는 안 된다고 하는 거야?
화가 났지만 그래도 나를 지지해 준 상담사이기 때문에 참았다.
내가 불안정한 것이 안락함을 누릴 수 없다는 말인지 생각해보았다.
불안정하다면 더 안락함을 누려야 하지 않을까?
불안정하다, 불안하다는 것이 내 유년기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면 불안은 돌봄을 충분히 받지 못해서 오는 불만족이다.
아이에게 돌봄은 곧 생존이고 사랑이다.
돌봄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랑이 부족했다는 뜻이 된다.
불안은 사랑받지 못할까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렇다면 불안정하다는 것은, 불안하다는 것은
“너는 앞으로도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할 거야.”
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화가 났던 것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말처럼 들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상담사는 “‘자율권”을 말했다.
상담 전체 진행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정도를 의미했다.
나는 자율권이 있기를 바랐고 그것이 내게 맞다.
자율권 측면이라면 상담사 말이 수긍이 되었다.
여기까지 생각을 하니 화가 누그러졌다.
상담사 말이 제대로 이해가 되었다.
자율성을 발휘할 때 높은 에너지가 도움이 될 테니 내 특성을 고려하라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마음은 씁쓸했는데 근본적인 내 불안 때문이었다.
상담사 말을 왜곡시킨 짙은 농도의 불안은 머리로 이해했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화가 나서 상담사가 밉고 원망스러웠던 마음은 사라졌다.
상담사에게 부정적 감정을 느껴서 좋은 대상을 상실할까 불편하고 두려웠던 마음도 사라졌다.
불편한 감정을 느끼니 더 이상 불편하지 않아서 내 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내 마음은 안락하고 싶어 했다.
따뜻한 엄마 품에 안겨서 편안하고 안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눈물이 핑 돌았다.
마음속에 아장아장 걷는 아기인 내가 안쓰럽다.
경찰서 계약 기간을 완료하고 개인분석도 종결했다.
내 에너지와 자율성을 발휘하고 상담도 많이 할 수 있는 곳으로 지원했다.
처음 상담사 면접을 봤을 때처럼 솔직하게 면접을 보고 통과해서 병영생활전문상담관이 되었다.
군에서 안락하기를 바랐다.
내 바람이 꿈이 아니고 현실이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기도가 누구에게라도 도달하기를 바랐지만 기도로는 어림도 없는 곳이었다.
나는 언제 안락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