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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햇볕 Oct 11. 2024

나 홀로 논문




아이비 화분을 들고 상담실 문을 열었다. 

십여 일 비어 있었던 상담실에 얇은 먼지가 앉았다. 

창가에 아이비 화분을 놓았다. 

회색 스크린에 아이비만 초록색이다. 

한숨이 나왔다. 

마치 유배지에 도착한 것 같았다. 

이제부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가라앉을 듯 말 듯한, 지루한, 답답한 일상으로 들어간다. 

출근부를 찍고 상담이란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게 되리라.      



에너지가 바닥난 마음을 닥닥 긁어서 힘을 내본다. 

쥐어짜본다. 

벌써 숨이 벅차다. 

겉으로는 멀쩡한데 속은 아슬아슬하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내가 일상 무대에 서 있으려면 기댈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논문을 쓰기로 했다. 

논문은 표면적으로 상담 민간학회 자격증을 얻기 위한 조건이다. 

그러나 내 마음은 자격증을 얻고자 하는 욕심이 아니었다. 

처음 써보는 논문은 어려웠다. 

논문 주제를 선정해야 하고 양적연구를 할지 질적연구를 할지 선택해야 한다. 

내가 쓰고 싶은 주제는 생각보다 빨리 떠올랐다. 

군 상담 사례를 통한 상담관의 상담 경험을 썼다.  

당시 나는 군상담의 경험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야 내 버팀목이 될 것만 같았다. 

질적연구로 논문을 쓰고자 했지만 생각과 달랐다. 

일반적인 질적연구는 내가 쓰고 싶은 방식이 아니었다. 

상담 경험을 문장으로, 단어로 조각내어 평가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질적이란 것은 통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마치 면면히 흐르는 큰 강처럼. 

궁하면 돌파구가 생긴다고 했다.

질적연구 중 내러티브 연구방법을 알게 되었다. 

내러티브 연구는 이야기를 통해 경험을 탐구한다. 

분석하고 나누지 않는다. 

마치 삶처럼 이어진다. 

원인과 결과가 아닌 맥락 차원에서 폭넓게 이해하게 된다. 

내러티브 연구방법론 워크숍에 참여하니 에너지가 피처럼 돌았다. 

숨이 편하게 쉬어졌다. 

내러티브 연구방법을 공부하며 홀로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석사 시절, 상담 자격증 준비에 석사 공부에 논문까지 쓸 힘도 시간도 부족했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영어 논문을 독해할 정도 실력이 아니면 논문을 쓰지 마라.”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신경초처럼 오그라들었다. 

영어 실력이 안 좋은 나로서는 논문을 쓰지 말라는 말처럼 들렸다. 

알아서 주제파악을 하고 논문을 쓰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교수가 너무 불친절한 것 같다. 

영어권 자료가 많은 것은 알겠지만 상담연구를 하는 기회를 축소할 우려가 있다. 

나는 당시 늦은 나이에 상담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부당함을 애써 느끼지 않으려 했다. 

상담 실전에 필요한 상담 자격증에 올인하는 것이 맞다고 자신을 설득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어떤 분야나 논문을 쓰는 환경이 그리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논문을 지도해 주는 사람, 즉 교수가 필요한 환경이다. 

나는 석사를 졸업하고 오래된 상태였고 석사 시절 교수의 말대로 “영어 논문을 독해할 정도”가 아니었기에 교수에게 논문 지도를 상의할 수 없었다. 

문득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쓰고 싶은 논문이 있는데 꼭 교수가 있어야 하나?

이리저리 알아보니 논문에 교수가 없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원칙일 뿐 현실에서 교수는 필수 아닌 필수였다. 

논문을 쓰면 논문 주제와 관련 있는 학회지에 발표를 한다. 

발표 전 학회 홈페이지에 논문 접수를 해야 하는데 지도 교수를 적는 칸이 있다. 

그 칸을 채우지 않으면 접수가 되지 않았다.(극히 개인적 경험임)

그래서 학회에 전화를 했다. 

교수가 있어야 접수가 되는 거냐고. 

돌아온 답변은 아니라고 했다. 

내가 온라인 논문 접수가 되지 않는 상황을 설명하니 시정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학회는 시정되지 않았다. 

결국 지도 교수 없이 혼자 쓴 논문 심사가 가능한 곳에 신청했다.      







내러티브 연구방법론 워크숍 강사에게 들은 얘기는 신선하고 부러웠다. 

강사가 외국에서 공부할 때 목격한 일이라고 했다. 

대학 건물 로비에 일주일 중 정해진 요일이 되면 교수가 로비에 앉아 있는다고 한다.

로비니까 강의를 할 목적은 아니고 쉬고 있는 것도 아닌 논문을 지도해 주기 위한 것이다. 

교수가 앉아 있으면 그 학교 학생은 누구라도 논문에 대해 교수에게 물어볼 수 있다고 한다. 

여러 명이 함께 교수와 논문에 대해 토론을 하기도 하는데 어떤 주제나 연구방법이나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너무 부러웠다. 

우리나라에서 논문을 교수에게 지도받으려면 뭔가를 해야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뭔가란 정말 뭐든 말이다. 

우선 교수가 논문 지도를 응해줘야 하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고 그 뒤로는 교수의 시간에 무조건 맞춰야 한다. 

교수가 논문 지도 할 때 자신의 하소연으로 시간을 허비해도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들어줘야 한다. 

논문 쓰는 사람은 을이 된다. 

교수라는 타이틀만으로 논문 지도할 때 갑이 된다. 

중간에 언급했지만 이것은 온전히 개인적 경험임을 다시 밝힌다. 

논문 쓰는 학생, 사람 입장에서 도와주는 교수도 있으리라. 

그런데 나는 아쉽게도 경험하지 못했다.      



어쨌든 나는 혼자 논문을 썼다. 

혼자 쓴 내 논문은 심사 통과하기까지 1년이 걸렸다. 

학회에서 4, 5번은 반려된 것 같다. 

그때는 학회가 미웠지만 지금은 학회가 고맙다. 

왜냐하면 내가 쓴 논문을 나중에 읽으니 수준이 눈물이 날 정도다. 

그런 논문을 통과시켜 준 학회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내 논문은 현실에 존재하나 아무도 모르길 바랐다. 

지금 박사 과정에서 논문을 준비 중인데 부담이 크다. 

두 번째 논문이나 내게는 처음처럼 떨린다. 

수준을 올리고 싶은 욕심도 있고 버팀목 역할이 아닌 논문답게 쓰고 싶기도 하다. 

생애 처음 논문을 어렵게 혼자 쓰고 나니 기운이 났다. 

논문 쓰는 것이 재밌었다. 

여기서 재미란 예능을 보거나 놀이동산 같은 재미는 아니다. 

논문을 쓸 때 여름휴가를 가서도 논문을 수정하느라 쉬지도 못했다. 

계곡에 책상을 놓고 논문을 읽었다. 

노는 것도 아니고 안 노는 것도 아닌 상태였다. 

하지만 혼자 논문을 완성했을 때 뿌듯함은 잊을 수 없다. 

첫 논문은 못난이 논문이었지만 내게는 사랑스러운 논문이다. 

교수 없이 쓴 논문은 내 새끼였다. 

애쓴 만큼 정이 들어 더 논문을 쓰고 싶었다. 

흑백처럼 울적한 군에서 못난이 논문은 나를 버티게 해 줬다. 

홀로 논문을 쓰고 나니 벽 하나를 무너뜨린 것 같았다. 

동시에 다른 사람은 가지 않는 길을 걷는 내가 씁쓸했다. 

인적이 없는 산에서 풀을 헤치고 길을 내며 걷는 기분이었다. 

새로운 시도이기도 하면서 외로웠다. 

외로움이 나를 버티게 해 준 것인가 싶기도 하다. 

외로움에 익숙해질까 두려웠던 것 같기도 하다.

논문을 쓰고 마음이 복잡했지만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가고 있음이 안도가 되었다. 

달빛도 없는 깜깜한 밤길을 걸어가는데 촛불 하나 켠 기분이다.     


촛불에 의지해 걸어간다. 

바람에 촛불이 꺼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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