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은 여름만이 아니다.
온종일 난방을 하는 겨울 실내에 있으면 갈라질 것 같이 건조하다.
인위적으로 수분을 말리고 있는 느낌이 든다.
빨래를 실내에 널면 하루가 넘어가기 전 바싹 마른다.
가습기가 내뿜는 하얀 증기를 보면 위안은 되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름과 다른 겨울 갈증이다.
달콤한 수분 알갱이, 수박을 먹고 싶어진다.
수박은 자르면 박처럼 터지는 순간부터 시원해지는 것 같다.
쩍 갈라지는 수박을 가르면 선명한 붉은빛에 까만 씨가 디자이너 작품처럼 미적이다.
한 입 베어 물면 입안은 풍성해진다.
세컨드 하우스에서 나는 지주 아닌 지주가 되고 남편은 일꾼 아닌 일꾼이 되는데 남편은 일꾼을 자처하기도 한다.
무엇이든 심어서 틔우기를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건강한 먹거리를 먹는다.
채소들은 잘 자라는데 과일은 어렵다.
어떻게 어려운지 나는 잘, 거의 모른다.
세컨드 하우스에 가면 조용히 책을 보고 싶은 나는 지주처럼 주는 것을 받아먹기 때문이다.
때로 남편에게 미안해지면 이것저것 관심을 끌어모아 물어본다.
이때 들은풍월은 과일처럼 열매를 맺는 것들은 많은 영양분(퇴비, 비료)이 필요하고 벌레가 잘 생기기에 손이 많이 간다고 했다.
세컨드 하우스라서 열매 식물을 심으면 매일 돌볼 수가 없다.
그런데 작년 여름, 남편은 세컨드 하우스에 복수박을 몇 개 심었다.
꽃이 떨어지고 뭔가 맺혔는데 세상 귀엽다.
처음에는 콩알만 하다가 조금씩 커지면 수박 줄무늬를 눈으로 볼 수 있다.
마치 예술가가 만든 미니어처처럼 정교하고 예쁘다.
시간이 가면 복수박은 마트에서 파는 것과 비슷한 크기로 자란다.
수박을 좋아하는 나는 맛이 덜 들은 복수박도 맛있게 먹었다.
복수박이 자란 과정을 보니 맛이 어쩌니저쩌니 평가를 하고 싶지 않았다.
부족해도 내 새끼 같은 기분이랄까.
작은 모종에서 수박이 자라는 것을 보면 마법 같다.
큰아이는 수박을 먹을 때 귀찮은지 씨를 그냥 삼킨다.
어릴 때도 껌을 뱉는 게 귀찮은지 삼키고는 했다.
수박을 잘라 큰아이에게 주면서 잔소리를 했다.
아이가 잔소리를 싫어하는 걸 알아서 짧고 빠르게 말했다.
“수박씨발라먹어.”
아이가 눈이 동그래져서 쳐다봤다.
역시 내 잔소리가 싫다는 건가?
아니면 내가 너무 빨리 말해서 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말했다.
“수박씨 발라 먹으라고.”
그래도 아이는 똑같은 표정이다.
아이에게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 물어봤다.
“엄마가 욕하는 줄 알았어요.”
음?
머릿속으로 내가 한 말을 되새겨 보니 정말 욕처럼 느껴진다.
아이와 함께 웃었다.
상담을 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내가 한 말을 내담자가 듣고 아이와 비슷한 표정을 지은 적이 있었다.
“다 적같이 느껴졌겠어요.”
당시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고 상담을 해서 내 발음이 다르게 들렸던 것 같다.
군상담관으로 병사와 상담을 과정이었는데 사실 욕으로 바꿔도 의미는 통했을 상황이었다.
병사가 처한 상황은 주변이 “적같이” 느껴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스크 때문에 병사가 내 말을 못 들었나 싶었다.
그래서 크고 정확하게 다시 말을 하면서 욕처럼 들렸다는 것을 깨달았고 나도 병사도 웃었다.
전이는 정신분석 사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신분석에서 무의식적인 욕망이 어떤 형태의 대상관계-특히 분석적 관계-의 틀에서, 어떤 대상에 대해 현실화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거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확연히 체험되는 유아기적 원형의 반복이다. 분석가들이 별다른 수식어 없이 전이라고 부를 때 그것은 대개 치료 과정에서의 전이를 말한다. 전통적으로 전이는 정신분석 치료의 문제가 드러나는 장소로 여겨지고 있다. 그것의 정착, 그것의 양태, 그것의 해석, 그것의 해결이 정신분석 치료의 특징을 구성하는 것이다."
(장 라플랑슈·장 베르트랑 퐁탈리스, 임진수 역(2006), 『정신분석 사전』, 열린책들)
심리상담에서 전이, 역전이(내담자의 전이에 대한 상담자의 무의식적 반응 전체) 용어는 자주 사용된다.
상담 과정 자체가 전이의 과정이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전이라는 심리역동을 다루는 것이 상담이다.
『정신분석 사전』에서 말하듯 외부 자극, 정보는 내면의 무의식적 욕망 때문에 굴절된다.
마크 앱스타인은 전이를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 상태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자기 체험에 색을 입히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전이를 참 아름답게 표현했다.
자기 체험에 어떤 색을 입힐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 상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는 내 잔소리가 싫었던 나머지 “수박씨 발라 먹어.”가 욕처럼 들렸을 수 있다.
자신을 힘들게 만드는 동료 병사와 간부에 대한 미움 때문에 병사 내담자는 “적같이”란 표현이 다른 의미로 채색되었는지 모른다.
욕설이 아닌데도 욕처럼 들릴 때 웃고 넘어갈 수 있지만 내 마음 상태가 어떤지 살펴보면 어떨까.
외부 정보와 자극을 들리고 보이는 것이 언제나 진실은 아니다.
내 마음 프리즘이 어떤 상태냐에 따라서 굴절되어 다르게 들리고 보일 수 있다.
주변이 적같이 느껴질 때도 수박씨를 발라먹으며 천천히 살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