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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다니는 엄마

by 마음햇볕




바람이 조금씩 따뜻해지니 옷도 가벼워지는 초봄이었다.

클럽에 가기 딱 좋은 계절이다.

어떤 옷을 입고 클럽에 갈까?

봄은 옷 입기 애매하다.

얇게 입으면 쌀쌀하고 두껍게 입으면 덥다.

그래서 클럽 갈 때는 얇은 겉옷을 챙긴다.

오래 입어서 편안하지만 예쁘지 않은, 빨아도 팔꿈치가 여전히 튀어나와 있는 고동색 니트 카디건을 걸친다.

클럽을 가려니 가방도 필요해서 봄과 어울리는 초록색 가방을 골랐다.

가방이 너무 큰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클럽을 갈 때면 차라리 큰 것이 낫다.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클럽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해서 잠시 망설임을 접고 신발을 신는다.

거실에 친구와 놀고 있는 딸에게 인사를 했다.


“엄마 하나로 클럽 다녀올게. 친구랑 놀아.”


딸은 내 얼굴을 쓱 보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친구와 만화를 보고 있어서 형식적인 인사를 하는 것이다.

딸 친구도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는데 표정이 울 듯 말 듯 희한하다.

멍한 표정의 친구를 딸이 올려다보다가 친구 팔을 잡아끌었다.

딸 친구는 잠에서 갑작스럽게 깬 것처럼 다시 만화책을 보기 시작했다.

클럽을 다녀오니 딸 친구는 집에 가고 없었다.

초등생 딸이 친구와 나눈 얘기를 해줬다.


“민영이가 엄마 클럽 다니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하니까. 울려고 하더라.”


딸 친구는 자기 언니가 클럽을 다니다 부모에게 들켜서 혼나고 집을 나갔다고 한다.

민영이 엄마는 클럽은 “날라리”가 다니는 나쁜 곳이라고 말했고 민영이도 그렇게 믿는다고 했다.

그런데 친한 친구 엄마가 클럽을 간다고 하니 깜짝 놀랐던 모양이다.

민영이가 놀란 다른 이유는 내가 클럽을 간다고 하면서 입은 옷 때문이다.

민영이 언니는 클럽을 갈 때 화장도 옷도 화려하고 예쁘게 하고 갔는데 친구 엄마는 동네 슈퍼 가는 모양이어서 말이다.

친구 엄마, 즉 평범한 아줌마도 동네 슈퍼 가듯이 클럽을 다니는 것을 보고 세상이 나빠졌다고 여겼는지 모른다.

딸은 친구 민영이가 클럽 때문에 울려고 했던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울적해하던 민영이는 더 놀지도 않고 멍하니 있다가 집에 돌아갔다고 한다.




민영이를 울릴 뻔했던 클럽은 하나로 클럽이다.

농수산물과 임산물 등 신선한 식재료 파는 곳이다.

하나로 마트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규모가 큰 곳은 “클럽”이라 부른다.

봄 세일을 하는 날이면 사람들이 많아서 서둘러야 한다.

하나로 클럽에서 받은 초록색 장바구니는 이것저것을 담을 수 있어서 쓰임새가 좋다.

날이 따뜻해지니 야채 가격이 좀 더 내려가고 봄나물도 나왔다.

잘 먹지도 않으면서 냉이를 데려왔다.

왠지 냉이를 먹어야 봄이 완성되는 기분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하나로 클럽에 갔는데 친구 딸은 음주가무 클럽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우리는 과거 경험을 통해 현재를 이해한다.

경험은 5가지 감각을 통해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부로 들어온 경험, 즉 정보들이 모여 빅 데이터를 이룬다.

정서적 충격이 있는 경험들은 특별히 별표가 붙는다.

대부분 고통이 강렬한 경험들이며 이를 외상, 트라우마라고 부른다.

고통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특별 관리가 된다.

시간이 지나면 의식에서 흐려지거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듯 하지만 상처받은 상황과 비슷한 조건에 놓이면 나도 모르게 고통 회로가 작동된다.

나도 모르게 작동되는 것을 무의식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의식이 되지 않기 때문에 예측 없이 고통을 경험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고통 회로 작동의 몸 증상으로 긴장, 뻐근함, 가슴이 답답함, 두통, 멍함, 심장이 빨리 뜀, 땀이 남, 어지러움, 멍해짐, 손과 발이 저림 등이 나타난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더욱 당황해서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기 어려워진다.

뇌는 신체 증상을 악화 상태로 의미 해석해서 고통에 쉽게 말려든다.

고통 회로가 작동이 되면 마음의 시야가 점점 좁아져서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결국 고통에 사로잡혀서 옴짝달싹 못하게 될 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번 생은 망했어.”


“가망도 없는데 살아서 뭐 해?”


“내 팔자가 이럴 줄 알았어.”


“잘못 태어난 거야.”


고통을 반복해서 겪다 보니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서 스스로를 비난하기도 한다.

고통의 원인이 자신 자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고통이 지속되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원인 없이 고통을 계속 당한다는 것보다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편이 덜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타인을 비난하기도 하지만 좀 더 깊은 마음속에는 자신이 문제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고통이 타인 때문이라고 하면 타인이 달라지기 전까지 고통은 지속되기 때문에 차라리 자신이 문제라고 하는 것이 낫다고 느낀다.

자신이 문제라면 스스로의 노력에 따라 고토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마음들은 아주 오래전 마음이라 현재에서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자신을 비난하는 것만 남는다.

자신이 고통을 일으키는 핵이라고 생각이 들면 답이 없다고 느낄만하다.

이것이 착각임을 모르고 타인에게 들킬까 숨기느라 에너지를 다 쓴다.

또는 내면으로 화를 돌려 우울에 빠지기도 한다.

모두가 마음의 시야가 좁아진 상태이다.

마음의 시야를 넓히려면 주변을 살펴봐야 한다.




딸 친구 민영이는 “클럽”이란 단어를 듣고 고통이 소환되었다.

엄마와 언니의 싸움, 언니의 가출, 예쁘게 하고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은 나쁜 일이라는 혼란이 클럽 한 마디에 먼지처럼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친구 엄마가 클럽에 간다고 하니 어떤 클럽에 가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못했다.

딸 역시 자신이 알고 있는 클럽은 하나로 클럽이었기 때문에 친구가 시무룩해진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묻지도 못했다.

작은 에피소드이기 하지만 딸이나 친구나 자신의 세계에 있었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다음에 민영이가 집에 놀러 오면 내가 다니는 클럽을 설명해 줘야지 마음먹었다.

민영이가 클럽 때문에 놀라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민영이는 그 뒤로 놀러 오지 않았다.

클럽에 다니는 엄마가 있어서 놀러 오지 않았을까?

마음이 고통스러울 때는 한숨 쉬듯이 긴 숨을 내쉬며 주변을 돌아보기를.

벽지와 책상과 시계를 묘사하듯 살펴보고 바닥에 닿은 발바닥의 느낌을 느껴보기를.

모든 감각을 동원해 주변을 살펴보면 조금씩 시야가 회복된다.

있는 그대로 보면 고통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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