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제목에 일부러 ‘中’을 썼다. 가운데가 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중국 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꿈꾸는 세상은 ‘中’ 있는 세상이다. 물론 중국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이 있는 세상을 뜻하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가운데가 사라지고 극과 극으로만 치닫고 있는 듯하다.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정치가 아닐까 싶다. 정치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한 것이 있으면 못한 것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걸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가령 진보 성향을 가진 사람 앞에서 진보 성향 대통령의 흉을 보고 보수 대통령의 업적을 칭찬한다면 극우세력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반대의 경우도 다를 바 없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대화조차 시도하지 않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각자가 가진 색깔이 더 짙어질 수밖에 없다. 요즘 현대인들은 알고리즘에 지배받고 있기 때문이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조금의 정치색이라도 갖게 된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편향된 정보만을 접하게 되고 비슷한 생각의 커뮤니티의 글들을 보게 되기 때문에 그 색이 진해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결국 ‘中’은 존재하기 힘든 구조가 계속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치인들도 이런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고 심지어는 이걸 활용해 정치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편 가르기를 통해 각자의 세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 심지어는 싸움을 부추기기까지 하는 것 같다.
세대갈등, 남녀 갈등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타협과 배려가 없이 자기들이 속한 집단에만 유리하도록 치우쳐가고 있다. 이렇게 ‘中’이 없다 보니 더 나아가 서로가 서로를 싫어하고 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이 글의 제목인 ‘中 없는 세상’이라는 텍스트 그대로 중국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중 나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모든 중국 사람들이 나쁜 사람은 아니다. 나쁜 사람들 중 중국인 있을 뿐이다. 이런 뉘앙스의 이야기 정도만 해도 아마 나에게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대화와 타협이 점점 더 사라져 가는 요즘. 우리 모두 마음속에 ‘中’하나를 새겨보면 어떨까?
분명 자기 자신도, 세상도 더 편안해질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