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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반 Jul 22. 2024

분리수거

연재 소설

 윤희는 엄마와 만나기로 한 찻집에 먼저 도착했다. 안쪽 창가로 자리를 잡았다. 대화 중에 적당히 주의를 돌리기에는 밖이 보이는 자리가 괜찮았다. 그동안 마음의 구멍들이 많이 메워진 듯했다.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불안은 차분히 마주할 힘이 생겼으며 늘 자신을 흔들어 대던 가슴 두근거림은 많이 잦아들었다. 강박적인 성향이 있는 엄마가 약속 시간에 정확히 나타날 거란걸 알고 있는 윤희는 대추차 두 잔과 약과를 주문했다. 윤희의 엄마는 종업원이 테이블 위에 찻잔을 내려놓는 순간 찻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윤희는 손을 들어 보였다. 윤희의 엄마는 무표정한 얼굴로 딸의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윤희는 일 년 만에 만나는 엄마에 대한 감정이 많이 무뎌졌음을 느꼈다. 예전처럼 화가 나지도 마음이 불편하지도 않았다.

 “엄마, 잘 지냈어?”

 윤희의 엄마는 입을 오므린 채로 뾰로통해 있다가 선심을 쓰듯 입을 열었다.

 “너 같으면 딸년이 잘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집 나가서 카페 한답시고 일 년 넘게 연락도 없이 남처럼 사는데 잘 지냈겠어?”

 날이 선 말투였다. 말을 툭 뱉고 앞에 놓인 대추차를 후루룩 마셨다. 엄마의 모습을 보며 습관처럼 다문 윤희의 입꼬리는 양 끝으로 쏙 들어가 웃는 모양새였지만 눈빛은 쓸쓸해 보였다. 

 “아저씨도 잘 계시지?”

 “그 사람이야 뭐, 맨날 똑같지. 일은 안 하고 신선놀음하는 작자가 별일 있을 게 뭐야. 살아보겠다고 재혼한 내 팔자만 더럽게 꼬였지. 너 그 카페 안 망하고 용케 버티고 있다? 돈 많이 벌었니?”

 오랜만에 만난 딸의 안위보다 자신의 팔자타령을 늘어놓는 엄마의 의사소통 방식은 상대가 무엇을 묻든 생각을 거치지 않고 입안에 담은 말들을 쏟아내는 일방통행이었다. 그런 말들은 늘 윤희의 마음을 빗창으로 죽죽 그었고 지나간 자리마다 선혈이 흘렀지만, 그녀의 엄마가 알아챌 리 만무했다. 

 윤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엄마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으려 윤희는 힘겨운 표정을 애써 펴내며 담담하게 말했다.

 “분리수거.”

 윤희는 진숙의 말을 떠올렸다.

 “뭐라고?”

 “아저씨가 엄마 인생을 꼬이게 한 게 아니라 엄마가 선택한 사람이잖아. 그건 엄마가 감당해.”

 윤희의 엄마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얼굴을 했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가 하는 말 중의 팔 할은 부정적이야. 그 말을 엄마하고 나, 두 사람이 듣는 거야. 엄마 자신도 듣는 말이라고. 엄마가 엄마를 학대하지 마. 그리고 내가 왜 엄마 감정까지 감당해야 해?”

 “누가 너더러 감당하래? 얘 좀 봐.”

 “맞아. 내가 안 받으면 그만인데. 내가 쓰레기통 안 하면 되는데.”

 윤희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잠시 말을 머금었다가 오랜 시간 뒤엉켜 있던 실뭉치를 꺼냈다.

 “왜 내 앞에서 죽으려고 했어? 내가 두 눈으로 보고 있는데 그었잖아.”

 언짢은 표정을 있는 대로 뿜어내고 있던 윤희 엄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윤희는 화려한 큐빅이 알알이 장식된 시곗줄로 감싼 엄마의 손목으로 시선을 옮겼다. 감춘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 흔적이다. 윤희는 한 번쯤은 포장하지 않은 날것의 물음으로 직면해 내고 싶었다. 과거의 어느 날 아버지는 거짓말처럼 세상에서 사라졌고, 살아있는 게 불만인 것처럼 쏟아내는 말들이 칼이 된 엄마에게 묻고 싶었다.

 “그…, 그건……, 다 지난 일이야. 지금 와 그 얘기 꺼내서 뭐 하게.”

 윤희의 엄마는 단숨에 별것 아닌 지난 일로 치부했다. 과거의 행동이 어린 딸 앞에서 무엇을 남겼는지에 대한 회고는 없었다. 오랜 시간 자신을 괴롭힐 만큼 고통스러운 기억이 엄마에겐 시간이 지나 잊힌 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윤희도 알고 있었다. 명확한 대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엄마도 자신이 저지른 그 일에 대한 답을 갖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꼭 답을 듣고 싶은 건 아니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 둘 다 각자의 인생을 잘 살았으면 좋겠어. 엄마도 나도 아빠가 한 선택 때문에 과거의 상처에 발목 잡혀서 지금을 죽이면서 살기보단,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살면 좋겠어. 그래서 난 지난 일 년처럼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 거야. 각자가 선택한 삶을 책임지면서, 자신의 감정도 각자의 몫으로 그렇게.”

 윤희는 엄마가 진심으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다.

 비겁한 죽음을 선택한 아버지와 어린 딸 앞에서 평생 지우지 못할 상흔을 남긴 엄마로부터 파생된 지난한 삶이 자신을 때리는 것 같던 시간 속에서 윤희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생각했다. 삶은 나를 이렇게 대했지만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은 바꿀 수 있다. 윤희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붙어있던 관계의 찌꺼기를 떼 냈다. 너무 밀착된 감정이나 관계에서 오는 괴로움은 멀리 떨어져 관심이 없는 일로 취급하고 행동하기를 그만두면 객관적인 입장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윤희는 알게 되었다. 지난 일 년 동안 엄마와 절연하듯 거리를 두고 조용한 카페를 운영하면서 오롯이 자신에게 몰입해 얻은 결론이었다. 

 윤희의 엄마는 창밖을 향해 고개를 돌린 채 말이 없었다. 윤희는 내내 담담한 어투로 말을 전했고 생각보다 마음이 후련하고 가벼웠다. 접시에 놓인 약과를 집어 입 속에 넣었다. 고소하고 달큼한 맛이 혀끝에서 감돌았다. 아주 긴 잠 속에서 깨어난 듯 명료해진 의식으로 창을 투과해 정수리에서 빛나는 햇살을 온몸으로 빨아들였다. 그렇게 두 모녀는 각자의 방식대로 이날의 만남을 삶의 주변부로 물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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