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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반 Aug 05. 2024

이해한다는 것의 전제

연재 소설

 마음의 마당에 심긴 꽃들이 만발했다. 수많은 빛이 겹쳐 영롱하고 날카롭게 빛나는 햇살이 새파란 하늘의 구름 사이를 뚫고 내리쬔다. 윤희가 심은 꽃들은 수분과 햇빛을 양껏 빨아들여 더 큼직하고 풍성해졌고 민들레 꽃씨가 언제 날아와 내려앉았는지 화단 여기저기서 쫙 편 손가락 같은 잎을 뻗어내더니 그 가운데서 노란 꽃과 몽실몽실 하얀 홀씨가 솜뭉치처럼 피어올랐다. 땅속에 심어 두었던 튤립 구근에서는 손가락 길이 정도 마디의 잎을 밀어 올리고 있다. 꽃눈이 올라온 벚꽃 나무도 제 할 일을 열심히 해내고 있었다.

 윤희는 호스를 연결해 화단에 물을 주다 물줄기 끝에 생긴 희미한 무지개를 보았다. 윤희는 자신도 모르게 우와,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처음이었다. 일상의 작은 일에 감탄해 본 적. 자신의 느낌도, 감정도 남의 것인 것처럼 한 발짝 멀찍이 떨어져 보던 윤희가 새로운 감각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윤희는 엄마와의 만남 이후로 공허했던 마음이 조금씩 차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화단에서 흘러내린 물이 이제 막 열린 대문으로 들어선 지원의 발밑을 적셨다.

 “어서 와요.”

 지원이 까치발을 하고 카페 안으로 길게 목을 빼고 들여다보는 시늉을 했다.

 “이제 마음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네요.”

 “사람이 많아져서 서운해요?”

 지원은 멋쩍은 듯 웃으면서 목소리를 낮추고 소곤거리며 말했다.

 “서운하다기보다 왠지 나만 알고 있던 아지트였는데…, 하는 아쉬움?”

 윤희가 웃었다. 호스를 내려놓고 안으로 향하는 돌계단을 오른다.

 “그래도 여기에 오면 평화로워서 마음도 머리도 쉬는 느낌이에요. 묘한 매력이 있어요.”

 “고마워요.”

 윤희가 문을 열기 전, 지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원은 윤희의 말에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지원은 윤희를 따라 들어가 메모로 주문하고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윤희는 지원이 주문한 음료를 내주고 카운터로 돌아와 출근하면서 가지고 들어온 우편물을 뒤적였다. 각종 고지서 사이 눈에 띄는 분홍색 봉투에 ‘마음 사장님께’라고 쓰인 삐뚤빼뚤한 글씨, 윤희는 글씨체가 낯이 익었다. 한국인 직원과 함께 간혹 들러 커피를 주문하던 히잡을 쓴 외국인 여자가 떠올랐다.

 —오만으로 돌아가요. 갑자기 가요. 마음 예뻐요. 기억나요. 사장님 웃으면 예뻐요. 나중에 한국 오면 꼭 올게요. 안녕.

 한 글자씩 꾹꾹 눌러쓴 여자의 마음이 담긴 짧은 작별 인사였다. 카페에 오가며 그저 눈빛과 표정으로 인사를 대신했던 이가 남긴 편지라니, 뜻밖이었다. 이름조차 모르는, 어쩌면 인생에서 스치는 인연으로 끝날 수 있는 이의 편지 한 통이 준 여운은 윤희에게 마음 깊숙이 남았다.

 겨울나무의 앙상한 가지를 보며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던 윤희가, 삶이 보잘것없고 남루하다고 느끼던 윤희가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만든 이 공간에서 마음으로 만난 사람들에게 조금씩 치유 받고 있었다. 공간이 주는 힘이 있다. 그 안에서 잠시라도 머문 사람들이 각자 무언가를 얻었다면 감사한 일이다. 어느 한순간의 일상이, 어떤 이의 말 한마디와 눈빛이 누군가의 삶 속에서 빛이 될 수도 있는 일이기에.

 윤희는 카운터에 놓아둔 진숙의 그림과 태수가 인화해 액자에 넣어 선물한 메밀 꽃밭의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그 옆에 분홍색 편지 봉투를 나란히 세웠다. 그리고 그리워하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아 덮어두기만 했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사람들이 일주일을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윤희는 일찍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고 택시로 이동해 정오가 가까워져서야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납골당에 도착했다. 윤희는 오랫동안 아버지를 찾지 않았다. 작은 칸막이 안에서 이름이 새겨진 작은 유골함에 담겨 영원히 잠들기를 선택한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해하려 할수록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음울함에 휩싸여 윤희는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었다. 이해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상대를 위한 것임을 윤희는 아주 뒤늦게 알았다. 나의 이해가 전제되지 않더라도 상대를 이해하는 것. 이제는 물을 수도, 답을 할 수도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마주한 윤희는 깊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오래전 하지 못했던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어려움이 아버지의 마음에 있었겠죠. 사랑해요. 안녕.’

 윤희는 아버지를 향해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웃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 나왔다. 건물 밖으로 나온 윤희는 아침부터 흐릿하고 축축했던 하늘이 곧 쏟아낼 듯한 빗줄기를 기다렸다. 한바탕 시원하게 씻겨 내리는 빗발에 마음에서 덜어낸 짐들의 흔적조차 깨끗이 지우리라.

 후드득.

 굵은 빗발이 땅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금세 먹구름이 뒤덮은 하늘은 세상을 산산조각 낼 듯한 굉음을 냈다. 납골당에 들고 나는 이들의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윤희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갑자기 내린 비에 발이 묶인 사람들이 건물 처마 밑에서 서성였고 윤희는 서늘한 기운에 몸을 움츠렸다. 잠시 앉을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검은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씁쓸한 표정으로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멍하니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윤희는 무의식적으로 걸어가 그 남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자신의 어깨를 두드린 누군가를 향해 고개를 돌린 그, 태수였다.     



 소낙비는 아닌 모양이었다. 자동차 와이퍼가 좌우로 반원을 그리며 앞 유리를 닦아내도 양동이로 들이붓듯 내리는 빗줄기는 금방 시야를 가렸다. 차들이 도로 위에서 기어가다시피 했다. 태수는 조수석에 앉은 윤희에게 자신의 내원 환자였던 이가 작년 이맘때쯤 생의 끝을 선택해 잠든 곳에 들렀다는 말을, 그 때문에 한동안 힘들었었다는 말을 덤덤히 늘어놓았다.

 “거기서 윤희씨를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아버지가 그곳에 계세요.”

 “그렇군요…….”

 차창을 때리는 빗소리가 둘 사이의 정적을 메꿨다. 때로는 침묵이 상대에게 위로가 되는 때도 있다. 점점 더 강하게 내리는 비는 통곡하듯 울었다. 윤희가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언젠가 눈물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눈물…, 요?”

 “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울감이 있었던 거 같아요.”

 “…….”

 차가 밀리는지 저마다 브레이크등을 붉게 뿜어냈다.

 “오월에 메밀꽃 보러 갈까요?”

 태수가 윤희를 잠깐 봤다가 다시 정면을 주시했다.

 “제가 잘 못 들은 건 아니죠?”

 윤희는 태수의 옆얼굴을 보며 말했다.

 “오늘이 세 번째에요.”

 태수가 윤희에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태수와 눈이 마주치자, 윤희는 태수의 말을 차용해 담백하게 읊조렸다.

 “우연.”

 윤희는 태수의 말대로 마음의 공간을 냈다. 억지로 넓힌 게 아니라 주인 없는 짐들을 정리하고 먼지 낀 바닥에 물걸레질하듯 깨끗이 닦아내고 제 삶을 들여놓기 시작한 것이다. 태수의 얼굴에 내내 드리워 있던 그늘이 걷혔다. 약간은 간질거리는 잔잔한 미소가 둘의 얼굴에 스며들었다. 길게 늘어선 차들의 행렬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섭게 내리치던 빗줄기가 잦아들고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들이 바람에 실려 밀려나기 시작했다. 깊고 어두운 장막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윤희의 속마음처럼 푸르른 하늘이 얼굴을 드러내고 빗물에 젖은 차창이 구름 사이를 뚫고 나온 빛을 받아 반짝였다. 윤희는 보조석 창문을 열고 손을 살짝 내밀어 비 온 뒤의 상쾌함을 손으로 훑었다. 윤희는 길고 긴 터널의 어둠 속에서 이제 막 빠져나온 생의 환희를 비로소 한없이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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