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반 Feb 23. 2024

마음을 말하는 연습

 나에게는 배냇병 같은 불치병이 하나 있다. 

 "가시내('여자아이'의 전라도 방언)가 질질 짜기나 하고 무슨 말을 할 거면 울지 말고 또박또박 말해!"

 어려서는 엄마가 윽박지르는 통에 우느라고 제대로 말을 못 하나 싶었는데 40살이 다 되어가는데도 이 모양새인 걸 보면 정확한 의사 전달을 하기 전에 이미 눈에서 물줄기를 뿜어낼 시동을 거는 이 증상은, 배냇병임에 틀림이 없다.

 안과 질환으로 인한 눈물이 아닌 이상에야, 눈물은 다양한 감정변화와 많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슬픔, 분노, 기쁨, 억울함, 서러움... 등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는 여러 가지인데 나의 눈물은 어떤 상태일 때 나오는 걸까. 나도 가끔은 우느라 말을 못 하는 내가 정말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생각이나 감정이 말로 나오면 이상적인데 그 단계에 접어들기 전에 이미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모든 상황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멈춰지고 해소되지 않은 감정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로 마음에 남게 된다. 한바탕 울고 나면 속이 시원해진다고 하는데 그것은 단편적인 면만 보면 그래 보일 뿐이다. 나처럼 말보다 눈물이 앞서는 감정의 진짜 이유를 알아차리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은 언어적 표현력이 장착된 다양한 감정과 성향을 지닌 동물이다. 인간의 성향에 따라 그 표현력은 언어적인 것과 비언어적인 것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인간의 성향도 크게 이분법을 해보면 감성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으로 나뉘는데, 이런 기준으로 보자면 나는 감성적인 성향에 비언어적 표현력을 가졌다. 억울하거나 속상하거나 불편한 감정이 들 때, 겉으로 표현되는 수단이 ‘눈물’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나는 왜 감정을 말 대신 눈물로 표현하게 되었을까.

 내가 배냇병이 아닐까 생각했던 만큼 어릴 적부터 나의 이 증상은 나와 함께 자랐다. 그렇다면 내가 자라온 환경과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인 부모에게서 이유를 찾아보면 답답한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까 싶다.

 나의 부모의 대략적인 이야기는 알코올 중독과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편과 아이 둘을 데리고 가장 노릇을 하던 엄마가 결국엔 얘 둘 딸린 이혼녀가 되는, 옛 주말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자주 쓰였던 진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혼 후의 삶은 반전 없는 가난한 이혼녀의 고생스러움과 착실한 남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사람이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하지 않던가. 청소년기까지 크게 다르지 않았던 부모의 상황에 또래 친구들처럼 부모에게 심리적으로 의지하거나 필요한 것을 요구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더구나 몇 번의 가출이 있었던 엄마의 부재를 경험한 나와 동생은 엄마의 기분 상태에 따라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엄마도 본인의 삶이 힘들었던 탓인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자식들의 감정을 수용하는 것에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랬기에 힘들거나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엄마 앞에서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다. 엄마는 불편한 감정이나 갈등이 생기는 상황이 놓이면 감정 공유와 대화로 대처하기보다 그 자리를 회피하거나 자조적인 말투로 더 이상의 대화가 이어질 수 없도록 만들었다. 엄마의 말에는, 선을 넘을 듯 말 듯 한 부정적인 관점이 미세하게 깔려 있다. 이 부분도 엄마와 진솔한 대화를 하기엔 큰 방해 요소가 되었다. 상대의 생각이나 감정에 공감이나 수용의 단계가 없다면 대화는 일방통행이 된다. 그냥 대화라는 형태만 갖춘 한 사람의 넋두리가 될 뿐이다. 우리는 서로를 힘들게 하지 않기 위해서 침묵을 선택했고 해소되지 않은 감정은 마음속으로 삭이는 형태로 고착화되었다. 이것이 나의 심리적 베이스캠프를 잃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감성적인 유형도 여러 갈래로 나뉘겠지만 대부분 예민한 사람이 많다. 예민한 사람은 일상의 모든 일들이 자극으로 다가오고 주위 사람의 말과 행동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주기적으로 정신 심리 상담을 받기 전까지 나는 내가 예민한 사람인 줄 몰랐다. 그저 감성적인 면이 조금 더 발달한, 눈물이 조금 많은, 마음이 조금 여린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다. 예민한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보다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타적인 기질이 있다. 그래서 상대의 기분이나 미묘한 감정 상태를 빨리 읽어낸다. 이런 부분이 장점이 되기도, 아주 피곤한 단점이 되기도 한다. 생각보다 내가 누구인지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많다. 나도 40살이 가까워져서야 진짜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심리적 베이스캠프를 잃어버린 나는 점점 인내심만 발달된 어른으로 자랐나 보다. 말보다 눈물에 익숙해진, 몸만 커져 버린 어린아이가 아직 나에게 있다. 이 아이를 따뜻하게 보듬어 사랑으로 키워내야 할 사람은 이제 내가 되었다. 

 나의 눈물은, 억압된 많은 감정이 곪아있어 어떤 단어나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는 나를 보여주는 건 아닐까 싶다. 서럽다, 억울하다 등의 단순한 단어로 표현하기 힘든, 과거의 감정까지 쓰나미처럼 다가오는 중압감의 그 무언가가 있다. 그 말하기 어려운 눈물의 의미를 표현하려면 아이가 말을 배우듯 마음을 말하는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감정이나 마음 상태, 생각을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때가 늦더라도 상대에게 일목요연하게 적은 노트 내용을 대사 외우듯 로봇 같은 말투로 미세한 목소리 떨림과 함께 나의 감정을 말로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비록 이미 지나간 상황에 대한 때 늦은 감정 전달이지만 울기만 했던 이전과는 달리 나의 감정 상태를 좀 더 자세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옹알이만 하다가 이제 겨우 단어를 말하게 된 시점이라고 보면 되겠다.

 왜 우느냐고 답답해하며 물어보는 상대에게 나도 왜 우는지 설명할 수 없었던 나는 오죽이나 괴로웠을까. 나처럼 마음이 힘든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느라 말 못 하는 나와 같은 이들이여, 울면서도 눈치 보지 말고 울지 말라고 채근하는 상대에게 내가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용기 내 합시다! 내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지금 나의 내면의 상황이 어렵고 힘든 것일 뿐, 나는 그저 나로서 존재 가치가 충분한 사람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여자의 품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