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내가 여길 지나갔지' 하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나는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일과 허구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가늠해 보았다. 소설 속 인물에 대해서는 직접 겪은 일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그때 내가 여길 지나갔지' 하는 구절이 나오더라도 미심쩍은 감정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아니 에르노 / 단순한 열정 中 >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우리는 시간을 세 부분으로 나눈다.
그러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무서운 속도로 우리를 휩쓸어가기 때문에 현재라고 생각하는 순간도 금세 과거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내 손바닥에서 시작해 팔과 몸통까지 쓸어보며 이 시간과 공간에 내가 실재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 현재라는 것은 유튜브나 넷플릭스에서 영상을 앞뒤로 움직이기 위해 사용하는 이동바와 같아서,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는 경계선에 불과한 것이다. 이동바가 위치한 특정 프레임은 일시정지를 통해 멈춰진 장면을 들여다볼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잠시나마라도 순간을 잡아둘 수 없다.
그렇다면 시간을 두 부분으로 나누는 것이 옳겠다.
현재는 시간을 반으로 자른 단면과 같으니, 과거와 미래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과거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걸어온 세월이자 경험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를 전부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과거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기억한다. 설령 오래 전의 강렬한 경험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해도, 수십 년의 세월에서 겨우 몇 시간 분량의 기억일 뿐이다. 학창 시절의 일상이나 수년 전의 연인과의 대화, 심지어는 수많은 밤을 괴롭힌 고민들조차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지 않는 과거를 진짜로 겪었다고 할 수 있을까? 반대로 기억나는 과거가 왜곡 없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실제로 겪은 과거의 경험과 일어난 것으로 믿고 있는 허구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오랜 시간 고민해 보았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실제로 이 둘의 차이점이 없다면, 애초에 답이 없는 질문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우리는 이러한 기억의 한계와 불확실성 때문에 소중한 순간을 붙잡기 위해 노력한다. 일기나 편지, 사진, 동영상과 같은 기록을 통해 쉽게 잊혀지는 과거를 다시 떠올리고 현재로 가져온다. 가끔은 오래된 기록을 보며 잊었던 추억, 당시의 감정, 그 순간의 날씨나 냄새까지 기억나는 경우도 있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의 과거가 분명히 존재했음을 깨닫는다. 결국 과거라는 것은 우리의 기억과 이를 보조하기 위한 기록물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날짜, 숫자, 글자와 같이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낸 인위적 개념이 아닐까. 그래서 '알파벳 A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처럼 '시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 역시 쉽게 답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에 시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만 마주할 수 없고, 저항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가고 있는 시간 덕분에, 되돌아갈 수 없는 절대적인 특징 때문에 후회하고, 아쉬워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내 두 팔을 쓸어보듯이,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실재한다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이다. 훗날 시간이 데려다주는 그 도착점에서 후회나 아쉬움이 아닌, 각자만의 미소와 함께 뒤를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