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상병님
군대 자대 배치를 받았더니 나보다 높은 계급의 달팽이가 계셨다.
“군대 내 살인죄, 사형 혹은 무기징역“
3년 전, 인천의 한 군부대에서 이제 막 일병으로 진급한 내가 저지른 죄였다. 생활관에서 편안한 주말을 보내고 있을 다른 분대원들과 달리, 나는 불도 키지 않은 채 멍하니 창가에 서 있었다. 뛰어내린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하루만... 아니, 10시간 전으로만 돌아갈 수 있다면 파우스트처럼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내게 제일 가혹할 수 있는 형벌, 재 입대라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내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단 말인가.
정 상병은 우리 분대의 실세였다. 자기 세력을 모아 맞선임을 몰아내고 상병 4호봉 때부터 정권 1위를 차지한 그였다. 그런 그가 내 아버지 군번이었다. 어느 날 생활관에 들어온 그는 한 손에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들고는 우리에게 말했다.
“자 주목, 내 친구 달팽이다. 부대 뒤 수풀에서 근무하던 친구야. 나랑 동기니까 ‘달 상병님’이라고 불러라.”
미친놈. 으레 집 갈 날이 머지않은 말년병장들이 할 일 없어 미쳐 날뛴다던데, 저놈은 벌써부터 이 지랄이니 여간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단 투명한 통으로 생활관 지어드려. 매일 아침 점호 끝나면 상추 모포 갈아드리고, 냉장고에 있는 과일 특식 넣어드려라. 그리고 칙칙이로 수분 공급해주고. 보자... 아들, 네가 담당해.”
내가 근무하던 곳은 군부대 회관으로, 병사들이 면회를 하고, 장교들이 회식자리를 갖는 부대시설이었다. 쉽게 말하면 식당이었다. 그러다 보니 신선한 과일과 음식들이 항상 차고 넘쳤다. 위생이 제일 중요했기에, 잡일은 끊임없었고, 나는 잘난 아버지 덕분에 잡일이 하나 더 늘었다.
정 상병은 매일같이 달 상병과 함께했다. 자웅동체인 달팽이 따위가 저리도 좋을까. 뭐, 특별한 성적 취향이겠거니. 내가 상추를 갈아줄 때는 시어머니처럼 뒤에서 감시했고, 큰 소리로 관등성명을 하게 했다.
“일병 유 OO, 달 상병님 깨워 드리러 왔습니다. 오늘의 조식은 싱싱한 오렌지입니다. 상추 모포 갈아드려도 되겠습니까?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다른 선임들은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만 볼뿐, 감히 남의 화목한 가정사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 했다. 차라리 고마웠다. 탄피보다도 작은 달팽이 때문에 동정받고 싶지는 않았다.
매일 아침마다 달팽이를 보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뚜껑을 열 때마다 달팽이 때문인지 상한 상추 때문인지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또한 원래 상추에 붙어 있던 그를 새로운 상추로 이사시킬 때에는, 등딱지를 검지와 엄지로 살포시 잡고 살짝 떼야하는데, 가끔은 그 점성이 매우 심해서 살가죽이 주욱 늘어나곤 했다. 행여나 등딱지가 부서질까, 혹시나 살가죽이 찢어질까 하여 아기 다루듯 하였다. 가끔 상추에도, 투명 통 벽에서도 모습이 보이지 않아 간담이 서늘해질 때가 있는데, 빠삐용 놀이라도 하는지 뚜껑 안쪽에 붙어 있곤 했다.
그러던 나에게도 드디어 희망이 생겼다. 정 상병이 7박 8일 상병 정기휴가를 간 것이다. 그는 아니나 다를까 달 상병을 잘 부탁한다는 헛소리를 남긴 채 부대를 떠났고, 내 관심도 달 상병을 떠났다. 정 상병이 부대를 비운다고 막내인 나의 일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했다. 동시에 선임 2명이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2일 정도 지났을까, 그래도 걱정이 되어 달 상병을 찾아가 보았지만 다행히 무사했다. 매일 같이 역한 달팽이 냄새를 맡는 것이 싫어서, 칙칙이로 수분을 공급해주는 대신에 물 반 컵을 부어 넣고 나왔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그가 돌아오는 날 당일이었다. 정 상병이 돌아오면 달 상병을 제일 먼저 찾을 것이기에 달 상병의 생활관이 있는 2층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하늘이 우중충했다. 뚜껑을 열자 평소보다 더 역한 냄새가 올라왔고, 그 냄새를 따라 달 상병의 사체가 물 위로 떠올랐다. 귀찮아서 가득 부은 물에 그가 빠져 죽은 것이다.
‘선임이 죽었다. 달 상병을 내가 죽였다’
나는 다른 누가 이 살인 현장, 아니, 살생 현장을 목격할까 두려워, 힘없이 흐물거리는 그것을 화장실로 가져가 변기통에 넣고 물을 내렸다. 내 미래가, 내 휴가가, 내 주말이 소용돌이치는 변기통 물 너머로 사라졌음을 확신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데, 하늘도 나를 가엾이 여기는지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빗물 사이로 아직 제초작업을 하지 않은 회관 주변의 풀들이 보였고, 나는 홀린 듯 그리로 달려갔다. 제발... 제발.. 하늘이시여 제발...
3시간 정도 후, 피부가 한껏 좋아진 채로 회관으로 돌아온 정 상병은 역시나 달 상병부터 찾았고, 두 마리의 달팽이가 평화롭게 상추를 뜯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정 상병님, 달 상병이 외로울까 봐 제가 근무 서고 있던 동기 한 명을 더 찾아왔습니다. 어떻습니까? 마침 밖에 비도 오는데 더 찾아드립니까?”
행여나 사기행각이 들통날까 하여 두 마리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나는 발악했다.
“아이씨, 두 마리? 네가 키워라, 귀찮아 죽겠다. 재미없어 이제. 야, 근데 내가 이번 휴가 때 친구들이랑 축구를 했는데...”
그날 새벽, 변기에 다시 한번 소용돌이가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