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대리

여름밤마다 나를 찾아오는 불청객, 모기에 대한 성찰

by 유주임

2015년 9월, 가을이 슬금슬금 기어 오던 어느 날 새벽이었다.


04:30 A.M


1교시 강의에 지각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2시간 후에는 일어나야 했다.


그럼에도, 전혀,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모기 때문이었다.


난 평소에 모기향을 잘 쓰지 않는다. 대신 맨손으로 때려잡고는 두 눈으로 죽은걸 확인하고 뿌듯해하곤 한다. 내 방은 아주 작고, 벽지는 온통 하얀색이라서, 눈을 부릅뜨고 여기저기 휘적거리다 보면 그놈의 모기를 금방 찾을 수 있다. 여느 때 같으면 잠을 청하려 불을 끄고 누울 때 즈음 "웽-"하고 달려드는 이 모기가, 하필 1교시가 있는 날 새벽에 나를 깨운 것이다.


만취한 사람처럼 눈을 홉뜨고는, 신문지 속에 숨은 그림을 찾는 사람처럼 모기를 찾았다. 모기들이 영특해진 것인지, 아니면 잡동사니가 뒹구는 내 방 곳곳이 은폐 엄폐하기 알맞았는지, 그날따라 모기는 보이지 않았고,

나는 이내 다시 잠을 청했다.


"웽-"


짜증이 솟구치는 동시에, 돌연 모기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벌써 가을을 타는지, 모든 사물에 감정이입이 되던 때였다. 슬픈 영화는 물론, 8시 뉴스를 보면서 울컥거렸으니 이십 대 중반 남자의 감성치고는 꽤나 섬세하다고 할 수 있겠다. 취업을 앞둔 4학년인 나의 모습이, 막연히 무역회사의 해외영업직을 꿈꾸고 있는 나의 미래가, 한낱 모기의 일상과 같아 보였다.


"야, 모 대리! 너 인마, 오늘은 계약 좀 따와! 요즘 뭐 다른 일자리라도 찾고 알아보는 거야?

일 하기 싫음 말을 해. 책상 빼줄게. 너 말고 다른 모기들 많은 거 알아 몰라. 요즘 스펙 좋은 젊은 모기들이 얼마나 많은데 정신 못 차리고. 후배들 보기에 창피하지도 않아? 집에 있는 가족들 생각도 해야지. 거 참."


"예, 죄송합니다, 부장님..."


"대신에, 큰 건 하나 따오면 승진 팍팍 밀어줄게. 맨손으로 우리 애들 때려잡는 그 미친놈 알지? 그놈 피 좀 따와. 이제 승진해야지, 몇 년째 대리냐 너? OO아파트 337동 OOO호! 작은방. 거기 방충망 뚫려있더라, 그리로 들어가. 말만 하지 말고 실적으로 가져오라고."


"그 미친놈 피를... 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부장님."


05:30A.M


침대 놓기도 버거워 이불 한 장을 깔고 자는 내 좁은 방에 누워서, 두 날개가 축 쳐졌을 모기 대리, 모 대리를 생각하면서 나는 글썽거렸다.


'그래.. 저게 내 모습일 수도 있어...'


한 방, 두 방, 목이며 팔이며 다리가 접히는 부분까지. 미래의 나에게 내 몸을 기꺼이 내주었다.

모 대리가 실적을 채우고 돌아간 자리는 이내 빨갛게 부어올랐다. 하지만 감히 긁지 못하였다. 행여나 내 손톱이 모 대리의 가족을 굶어 죽게 할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모 대리가 얼굴을 향할 때만큼은 양손을 허공을 향해 훠이훠이 내저었다. 적어도 선은 지켜야 하니까.


06:30A.M


얼마나 지났을까, 요란스럽게도 알람이 울렸다. 이미 창밖이 환해졌지만, 모 대리에게는 퇴근을, 나에게는 등교를 알리듯 내 방 불을 켰다. 밤새 잠을 설쳐 멍하니 바닥에 앉은 내 눈앞에, 금일 실적을 초과 달성한 모 대리가 나타났다. 흰 벽에 붙은 채, 까만 양복을 입고, 뚱뚱한 빨간 넥타이를 두른 모 대리가 말이다. 반가웠다. 여러 의미로.


그런데 빨간 넥타이가 여간 거슬린다. 빨간 넥타이라니...


제까짓게 어디 임원이라도 된다는 말이던가.


그리곤, 오른손으로 냅다 때려죽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제 그만 현실로 돌아와야 했으니까.


저 빨간 넥타이는 내 것이니까.


그냥 모기니까.


하얀 벽지를 새빨간 나의 피로 물들인 그 잔해를 마땅히 치워야 했으나, 맨손의 미친놈 광기를 모 대리의 부서

에 알리기 위해서라도 그냥 두고 나왔다.


참고로, 사람의 피를 빠는 모기는 모두 암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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