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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hill May 05. 2022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리뷰

마블, 레이미를 쥔 고삐를 풀다?!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가 무려 6년 만에 솔로 영화로 돌아왔다. 마블 히어로 중에서 솔로 영화 후속작이 이렇게 오래 걸려 나온 적은 처음인 것 같다. 물론 <토르 : 라그나로크>, <인피니티 워>, <엔드게임> 그리고 작년 말 <노 웨이 홈>까지, 닥터 스트레인지가 MCU에 얼굴을 자주 비춘 편이기 때문에 오랜만에 본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1편의 감독이었던 스콧 데릭슨은 공포 영화 <블랙 폰>을 촬영하기 위해 하차했고, 그 빈 자리를 다름 아닌 샘 레이미 감독이 채웠다. 2007년 <스파이더맨 3> 이후 15년 만에 코믹 북 장르로 돌아왔으며, 2013년 <오즈> 이후 9년 만에 장편 영화 연출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개봉 전부터 많은 기대와 우려가 많았던 <대혼돈의 멀티버스>다. <이블 데드>와 <스파이더맨> 시리즈 등 자신의 개성이 강한 영화들을 선보이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샘 레이미가 현대 마블 스튜디오와 어떤 시너지를 낼 것인지. 영화 한편한편의 몰개성화로 인해 비판받던 마블 영화들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을 것인지, 아니면 <스파이더맨 3>의 악몽이 재현되어 또다시 제작사의 간섭 그리고 창작자의 짓밟힌 비전을 보게 될 것인지. 개봉 몇 달 전 재촬영 소식이 들려오면서 많은 관심과 우려를 모았다. 영화를 막 보고 온 감상으로는, 일단 후자의 경우는 확실히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다.

내 생애 첫 히어로물 중 하나였던 <스파이더맨> 3부작 이후 마블 영화에 복귀한 레이미 감독.

얼마 전 열린 해외 시사회의 반응들을 종합해 보면, 크게 두 가지 의견이 많이 나왔다. 카메오가 한 트럭으로 나오는 영화가 아니니 과장된 기대를 잡지 말 것, 그리고 레이미의 손길이 묻어 있다는 것. 이 두 가지가 개봉 전 사람들이 품었던 우려를, 그리고 마블 스튜디오와 현대 블록버스터들이 받던 비판을 씻어 주는 단비가 될 수 있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나 정체성이 아닌, 카메오와 팬 서비스에만 집중하지도 않고(*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쿨럭쿨럭*) 이런 공장식 스튜디오의 대규모 블록버스터에서 감독의 개성이 묻어난 작품이 <대혼돈의 멀티버스> 라는 것이다.


<이블 데드>, <드래그 미 투 헬> 등 샘 레이미의 공포 영화 감독작들을 아직 보지 않은(!) 입장에서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레이미의 비전이 구현됬는지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마블 영화 중 공포 요소가 가장 강한 영화라는 것이다. 다만, <컨저링> 같은 정식 공포 영화를 기대하지 마라. 공포 요소와 호러스러운 이미지가 많을 뿐, '갑툭튀' 장면도 수가 적거나 효과적이지 않고(어디까지나 호러 장르에 익숙하고 면역이 된 입장에서!), 영화 자체도 아예 장르를 공포로 돌리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국내 관객들 중에서는 이러한 호러 요소들 때문에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것 같은데, 일단 개인의 취향 문제니까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르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일단 관람 전에 이런 요소가 있다는 점을 유의하시길. 개인적으로 이런 호러 '양념'의 첨가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영화 전체적으로 호러 이미지와 비주얼들은 매우 만족스러웠으며, 내 머릿속에 각인될 만큼 인상깊었던 것들도 있다. (예고편에도 잠깐 나왔던, 좀비 스트레인지의 장면들!)

작년 <이터널스>와 <노 웨이 홈>이 두 시간 반 정도로 긴 런닝타임을 가지고 있었기에, 본작도 비슷한 런닝타임을 가질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예측했지만 (특히 멀티버스를 다룬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두 시간이 조금 넘는, 여전히 길지만 '상대적으로' 짧은 런닝타임을 가진다. 하지만 너무 짧다고 느껴지는 영화는 절대 아니다. 마블 스튜디오 로고가 뜨자마자 영화는 관객들을 긴박한 사건의 중심으로 데려간다. 영화는 굉장히 빠르게 시작하고, 전체적인 완급조절도 느린 편은 아니다. 다만 중반부에 도달하면 호흡이 약간 느려지는, 빠르게 시작해서 중간에 호흡을 다지는 영화이다.


1편에서 캐릭터들의 마법 묘사가 호평을 받았는데,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초점을 다른 쪽에 맞춘 것 같다. 본작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시각적 묘사가 탁월하지만, 1편의 화려한 마법 기술들을 기대하고 가면 실망할 수도 있다. 이 상황에서 왜 마법을 쓰지 않는 거지 하는 순간들도 없지 않았다. 특히 후반부의 음표 대결 같은 경우 이것도 호불호 요소인 것 같은데, 나는 생각할수록 마음에 들고 참신했다고 느꼈다. 멀티버스 묘사 같은 경우는 상상력을 짜내서 더 막 나갔으면 했지만, 차원 통과 씬이나 후반부 생텀 등 멋진 부분들도 없지 않았다. 전체적인 시각 효과 자체는 탁월했으니 나름대로 만족했다.MCU 내에서 봤을 때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창의성 면에서 두드러지는 편인 것 같다.

주인공 닥터 스트레인지는 언뜻 봐서는 성장을 겪었나 싶을 수도 있다. 캐릭터 아크나 묘사가 그렇게 복잡하거나 깊은 편도 아니다. 하지만 영화 초반에 '이것만이 유일한 길이라' 등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에서 등장했던 대사와 주제를 반복한다. 그리고 영화 막판에 가서 차베즈를 희생해야 할 때가 왔을 때, 스트레인지는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 아님을 깨닫고, 차베즈로부터 힘을 앗아가 그녀를 죽게 하는 대신, 차베즈의 각성을 이끌어서 완다와 맞서도록 이끈다. 이후 카미르 타지에서 차베즈를 수련시키게 된다. 웡의 대사처럼, 한때는 차베즈 처럼 배움의 단계에 있던 스트레인지도 어엿한 스승의 위치에 오른 것이다.


본작에서 MCU 데뷔를 치른 차베즈 역시 만족스러웠다. 아는 것이 아예 없던 캐릭터였기에 무엇을 기대해야 할 지 몰랐고, 멀티버스를 넘나든다는 능력 덕에 단지 도구화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싶었는데(물론 도구화된 감이 아예 없지는 않으나) 위에서 다루었듯이 성장 아크를 가졌으며, 캐릭터 자체도 나쁘지 않게 포함되었다. 일단 데뷔전은 성공적으로 치른 것 같다. 어머니의 행방을 찾는 등 미래 서사 가능성도 있다.


크리스틴 박사는 1편에서는 그리 인상적이지 못한 역할이었다. 하지만 2편에서는 비록 다른 유니버스의 크리스틴이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후반부에 참여하고 도움을 줌으로서 1편보다는 확실히 큰 인상을 남겼다. 서로 다른 유니버스의 연인이 만난다는 아이디어는 흥미로웠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탐구해 보면 어떨까? (가디언즈 3편에서 스타로드와 가모라의 관계가 유사할 수도)

영화를 보기 전까지도 스칼렛 위치가 메인 빌런이 될 지 확신하지 못했는데, 결국 메인 빌런의 자리를 가져갔다. 본작에서 완다가 왜 타락하게 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완다비전>을 감상하거나, 최소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대충은 알고 있어야 본작의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 역시 호불호의 요소 중 하나. 일단 빌런으로서 완다를 평가하자면, 개인적으로 MCU의 가장 인상깊은 빌런 중 하나. 주요 히어로 중 한 명이 타락해서 빌런으로 등장하는 것은 MCU에서는 처음일 뿐 아니라 옐로자켓, 태스크마스터, 말레키스 등 1회용 빌런보다는 수백 배 낫다는 것은 대부분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엘리자베스 올슨은 스칼렛 위치로서 지금까지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고, 그 묘사는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있는 악당이었다. 샘 레이미의 호러 연출과 맞물려서 악당으로서의 카리스마가 상당한 편이다. 마지막에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도 기억에 오래갈 것 같다. (근데 과연 정말로 죽었을까?)


반면 다른 악당인 모르도는 실망스러웠다. 1편 쿠키영상에서 악역으로 돌아올 것을 예고했는데 오히려 그 모르도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 멀티버스의 다른 모르도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모르도조차도 스트레인지와 갈등을 조금 겪더니 중간에 퇴장해 버린다. 일단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니, 미래 작품들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까...? 일단 1편의 모르도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는 게 큰 낭비라고 봄.

완다의 행적 그리고 결말 웡과 스트레인지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듯이, "현재 우리 상황을 받아들이고,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행복을 찾아가라"는 게 본작의 주제라면 주제? 개인적으로도 와닿을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깊게 탐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렇게 주제, 메시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노 웨이 홈> , <로키> 로 시작해서 내년에는 DC의 <플래시>까지, 코믹 북 장르에 멀티버스 붐이 불고 있는 것 같다. 국내 개봉을 간절히 기다리는 중인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같은 영화를 보면 멀티버스 현상은 코믹 북 장르에 한정된 것도 아닌 것 같다. 앞으로 멀티버스라는 장소를 특히 MCU는 많이 다룰 것 같은데 상상력 많이 발휘해 주길.


<기타 감상>


1. 아 그리고, 샘 레이미 마블 영화 더 만들어 줬으면, 마블도 개성 강한 감독들에게 프로젝트 더 맡겼으면. (에드가 라이트가 앤트맨 감독했으면 어땠을지...)


2. 첫 번째 쿠키만 보고 나왔는데.. 개인적으로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샤를리즈 테론 캐릭터의 코스튬도 약간 우스꽝스러웠고, 사건이 너무 급진적으로 일어나는 느낌? 과장하자면 <모비우스> 쿠키가 조금 연상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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