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하진 않았지만 괜찮은 기원 이야기
※스포일러 존재
<오펀: 퍼스트 킬>의 줄거리를 처음 들었을 때, 굉장히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1편으로부터 13년이 지나 25살 성인 여성이 된 이사벨 퍼먼이, 자신이 12살 꼬마아이 때 연기했던 캐릭터의 더 어린 버전 (프리퀄이라 하니)을 연기하려 돌아온다니. 아무리 메이크업과 CG를 이용해 어리게 보인다고 하더라도, 할리우드가 돈이 궁해서 이런 짓까지 벌이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리뷰들이 나온 후 읽어 보니까... 평들이 괜찮았다? 로튼토마토 지수는 72%로 50%대였던 1편보다 훨씬 높은 수치고, 내가 자주 보는 유튜브 채널들에서도 나름 호평을 했다. 무엇보다, 리뷰들에서 <퍼스트 킬>에도 1편과 마찬가지로 반전이 있음을 언급하였다. 이 두가지 요인으로 인해 내 없던 기대치는 올라갔고, <퍼스트 킬>을 감상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솔직히 조금 실망했다.
리나가 아이로 위장해서 한 가정에 딸아이로 잠입한다는 것, 이 기본적인 이야기 자체는 1편과 유사하다. 1편에서 언급되었던, 에스더가 정신병원에서 탈출해서 한 가정에 들어가고, 불을 지른 후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것이 <퍼스트 킬>의 이야기다. 하지만 1편과 비교해서 드러나는 <퍼스트 킬>의 문제점은 - 1편의 베라 파미가의 가족과 비교해서 - <퍼스트 킬>의 가족은 그렇게 흥미롭지가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문제이다. 1편에서는 베라 파미가와 그녀의 가족이 주인공들이었으며, 가족과 에스더의 만남 역시 가족의 관점을 통해 관객은 바라보게 된다. <퍼스트 킬>에서는 그 반대로 우리는 에스더의 관점을 따라가고 가족과 에스더의 만남도 에스더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1편과 나름 멋진 대조 관계를 이루긴 하지만, <퍼스트 킬>의 가족이 1편만큼 흥미롭거나, 캐릭터들이 잘 발달되어 있거나 하지는 않다. 고로 <퍼스트 킬>의 1막도 1편과 비교해서 약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지루해하지는 않았고, <퍼스트 킬>의 반전은 무엇일까를 기다리면서 영화에 몰입했다. 그리고 반전은.....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물론, 예상하지 못한 것 맞다. 영화를 예상 못한 방향으로 끌고 나간 것 역시 맞다. 어쩌면 내 기대치가 너무 높았나 보다. <퍼스트 킬>을 볼 때 정신이 나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반전을 기대하지는 마시길. 반전이라기 보다는, 한 순간 이후 이야기가 예상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1편에서는 가족의 관점을 따라가면서 에스더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면, <퍼스트 킬>은 에스더의 관점을 따라가면서 나중에 가족의 행동 쪽에서 예상 못한 요소가 등장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1편과 비교해서 대조되는 재미가 있긴 하다. 반전 자체도 이번 가족을 마냥 지루하지만은 않게 만들어 주었다.
<퍼스트 킬>은 프리퀄이니,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미 알고 있기에, 각본가가 이야기를 어떻게 더 흥미롭게 만들지 고민한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영화는 그렇게 무섭지도, 긴장감 있지도 않았다. 지루하지는 않았고, 몰입해서 보기는 했는데.... 솔직히 <퍼스트 킬>을 공포/호러 장르로 분류하는 게 맞나 싶다. 그냥 사이코 여럿이 나오는 드라마 / 스릴러?
에스더의 나이 문제를 얘기해보자. 이사벨 퍼먼이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는 점이 너무나도 명백하게 보이는 상황에서 - 그래도 어느 정도는 영화적 허용으로 넘겨 주고 보긴 했지만, 클로즈업 숏 등을 통해서 주름 등이 보이는 장면들이 몇 있다. 10살 아이가 이 얼굴이라는 점이 전혀 납득 안 되는 부분들. 그런데 반대로, 1편에서 에스더의 얼굴에 거의 근접한 숏도 있었다. 영화 전체적으로 에스더를 그 숏처럼 보이게 할 수는 없었나. 클로즈업 덜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촬영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특히 풍경 및 배경을 보여주는 숏들. 몇몇 실내 장면들에서는 마치 필터를 끼운 듯 너무 뿌연 느낌이 들었는데, 리뷰들을 읽어보니 이를 Lo-fi 한 분위기를 살리는 데 기여했다고 언급. 영화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 같아서 이 점은 칭찬.
만약에 1편과 에스더 캐릭터의 큰 팬이라면, 추천하기는 하는 작품이다. 이사벨 퍼먼의 연기는 훌륭하고, 에스더의 존재 만으로도 어느 정도 볼만한 작품이다. 그리고 반전과 이야기의 전개 역시 나보다 남들이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약간 실망한 것이 사실이다. 망작은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필요하지는 않았던 평범한 영화? 한번 정도는 볼만하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거나 재감상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점수를 매기자면 5,6점. 일단은 별 세개로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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