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기계의 진동> (이하 <진동>)은 내가 예고편을 보았을 테부터 기대하던 에피소드이다. 시즌 1에서 가장 저평가된 에피소드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해저의 밤> 과 같은 제작팀의 작품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해저의 밤>과 공통점이 많았다. 여행 도중 뜻밖의 사고,문제로 인해 숨겨진 환상적인 세계와 맞닥뜨리는 주인공들, 그리고 2D인지 3D인지 헷갈리는 화려하고 환상적인 영상미 등등.
내가 영문과지만 정작 영어 문학을 거의 안 읽어본, 약간 아이러니한 사람인데 본작에 등장한 시들은 매우 아름답고 작품의 분위기와도 매우 잘 맞았다. 판타지적, 의외로 철학적?인 결말도 본작이 기억에 오래 남은 이유이다. 다만 여러 번 재감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각본이나 전개가 뛰어나다고는 못 하겠다.
그래도 굿굿.
<히바로>는 예고편을 보았을 때부터 심상치 않은 에피소드가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처음에 추측했던 데이빗 핀처가 아니라, 시즌 1 <목격자>의 제작진이 연출했다고 한다. 실제로 영상미나 캐릭터들의 디자인 등에서 <목격자>가 연상된다.
대사가 전혀 없고, 100% 시각적 스토리텔링으로 전개되는 게 특징이다. 간단하다고 할 수 있지만, 작품의 기승전결과 주제(문명화로 인한 자연과 풍속의 파괴, 사랑을 하면서 겪을 수 있는 오해, 나쁜 마음과 그로 인한 고통.)가 뚜렷한, 강렬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시즌 3에서 이야기, 각본으로 치면 최고가 아닐까 싶다.
이제 TOP 3를 이야기했으니 내가 덜 좋아한 에피소드들을 짧게나마 이야기해보자. 물론 상대적으로 덜 좋아한 거지, 이 중에서도 전체적으로 좋게 본 에피소드가 많다.
<세 로봇 2>는 시즌 3 중에서 처음으로 감상했는데 볼 때에는 그럭저럭 재미있게 봤다. 단지 굳이 여러 번 생각을 하거나 재감상할 에피소드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볼만.
<나이트 오브 미니 데드>는 무슨 컨셉인지는 알겠지만 보면서 감흥이 거의 없었다. 너무 나쁘지도, 너무 좋지도 않은 딱 중간. 크게 웃기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점수를 매기자면 10점 만점에 딱 5점 정도.
<킬 팀 킬>은 유머 쪽으로 밀고 나가는 에피소드인데 그 유머가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다. 재미 있는 농담도 있지만 그만큼 재미 없는 것들도 있다. 이야기도 단순하고 오락성에 초점을 맞춘 편. 나쁘지 않았음.
<메이슨의 쥐>는 처음 예고편에서 보았을 때 내가 시즌 1에서 가장 덜 좋아했던 쓰레기장 에피소드랑 같은 제작진인 것 같아 (그림체, 스토리 요소) 기대가 덜 되었던 에피소드이다. 보고 난 후 말하자면 제작진들의 전 에피소드보다는 나앗던 것 같다. 의외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훌륭하다’의 수준에 달하지는 못했다. 내 기대치나 기준선이 너무 높은 것일수도 있겠지만 일단 내 감상은 그러하다.
<스웜>, <아치형 홀에 파묻힌 무언가>은 장단점 면에서 서로 비슷한 부분이 있다. 둘 다 실사를 방불케 하는 뛰어난 그래픽과 좋은 아이디어가 존재한다. 문제는 스토리.
<스웜>은 내가 진심으로 창의적이고 대단하다 느낀 아이디어들로 꽉 차 있다. SF 좋아한다면 일단 추천하는 에피소드. 하지만 작품 대부분이 설명으로 가득 차 있고, 결말이 빈약하다. 결말이 단점인 에피소드가 시즌 3에서 세 개는 되는 것 같다. 인류가 굴복하지 않을 것이고, 맞서 싸울 것이라며 본격적 갈등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더 큰 시리즈나 영화의 파일럿, 프롤로그에는 어울릴 법 한데 10-20분 단편에서는 오히려 주인공이 스웜 앞에서 굴복하는, 앞으로 인류의 파멸을 예고하는 부정적 결말이 더 어울리지 않았나 생각한다. 설마 제작진이 다음 시즌에서 후속 에피소드를 선보이려고 이러나.
<아치형…> 역시 코스믹 호러를 어느 정도는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사실 한번 정도 봐 보는 것은 나도 조금 추천한다. 하지만 <스웜>과 마찬가지로, 이야기가 대단하기보다는 아이디어랑 그래픽을 뽐내는 기회로 활용된 것 같다. 몇 년 전 보았던 <Oats Studio> 유튜브 채널의 애니메이션 단편들이 생각난다. 5분 이내로 훨씬 짧고 퀄리티도 <LDR>보다 훨씬 떨어지는 수준이었지만 문제점이 동일한 것 같다. 제작진의 특정 아이디어나 특정 ‘상황’을 생각해낸 후, 그를 표현하기 위한 스토리나 주제, 캐릭터를 깊이 있게 창조하는 대신 정교한 그래픽으로 그 아이디어, 상황 재현에 더 관심을 둔다. 가장 실사 같은 그래픽을 자랑한 두 에피소드가 이야기 면에서는 가장 빈약한 것 같다.
시즌 2때부터 느낀 것이지만 여러 제작 팀이 돌아가면서 맡다 보니 반복되는 작화가 많다. 이게 나쁜 거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마음에 드는 작화는 여러 번 보고 싶기도 하고….. 하지만 시즌 4에 바라는 점은 새로운 제작팀의 새로운 작화를 좀 더 봤으면 한다. 실사 같은 그래픽도 좋지만 너무 많이 봐서 이제는 창의적, 독특함에 초점 맞춘 작화가 (적어도 이 시리즈에서는)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