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풍자극 <나이트크롤러> 리뷰
태양이 지고 어둠이 내린 도시에는 야경이 펼쳐집니다. 밤하늘의 하얀 달빛과 형형색색의 불빛들만으로 밝히는 도시의 모습이죠. 모두가 잠에 빠지는 밤, 도시는 언뜻 보기에 조용하고 차분한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수많은 사건들,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꿀 만한 범죄 같은 일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죠. 그리고 그런 사건들의 냄새를 맡고서 도시 곳곳으로 몰려드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밤마다 도시를 누비는 주인공 루 블룸 같은 사람들이죠. 어느날 우연히 뉴스거리 영상을 촬영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 그는 성공으로 향한다고 생각되는 길을 따라 광적인 여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2014년작 <나이트크롤러>는 루 블룸이 뉴스거리를 쫓아다니듯, 그의 뒤를 쫓아가면서 연민, 인간성, 도덕 같은 가치들은 완전히 결여된 채 돈과 성공만을 광적으로 좇는 인간상을 그려냅니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미디어 업계의 어두운 부분까지 보여주면서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여김없이 드러내죠. 보통 이런 사회 비판이나 고발 장르의 영화는 비판하고자 하는 면모를 대변하는 인물을 악역으로 등장시킨 다음, 그에 맞서는 선한 주인공을 등장시키고 결말에 가서는 권선징악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락 영화 등의 장르에서는 그러한 경우가 많죠. 하지만 <나이트크롤러>는 다릅니다. 비판하고자 하는 면모를 지닌 인물을 오히려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그가 무서울 정도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뒤쫓으며 점점 커가는 모습을 그립니다.
어떤 면에서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같은 작품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종종 영화의 방향성이나 메시지가 잘못된 쪽으로 해석되기도 한다는 점에서도 유사하죠. 하지만 이러한 영화들에서는 결코 주인공의 행동을 이상화하거나 긍정하지 않습니다. <더 울프...> 같은 작품의 유쾌한 분위기와는 달리 <나이트크롤러>의 제이크 질렌할은 훨씬 소름끼치는 인물입니다. 물질적인 성공을 좇는 인물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차가운,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죠. 사람이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충격적인 현장에서도, 피해자와 희생자들을 생각하는 면모는 결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그들에게는 신경쓰지 않죠. 바닥에 쓰러진 피해자들과 희생자들은 하나의 인간이 아닌, 단지 성공을 위한 대상이나 물질로 취급됩니다. 그들의 모습을 더 생생하고 자세하게 담아내는 것이 곧 더 높은 수익으로 직결되기 때문이죠. 폭력의 현장에 이렇게 무감각해지고, 거기에서 더 심한 모습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익, 도덕, 정의를 한 치의 고민 없이 저버리는 모습도 서슴없이 보여줍니다.
이런 과정에서 가끔 카메라 뒤쪽에 서 있던 인물이 카메라 앞에 놓이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화 중반부 루 블룸을 조롱하던 다른 촬영기사가 사고를 당해 병원에 실려가게 되죠. 폭력과 사고를 쫓고 촬영하던 인물이 오히려 주체가 아닌 대상이 된다는 점도 아이러니하지만, 머릿속에 더 깊게 박히는 점은 모두가 그런 운명을 맞이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루 블룸 역시 이러한 운명에 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귀신 같이 자신의 일에 집착하면서 차근차근 몸집을 키워 나가고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이런 장르에서 예상할 수 있는, 그가 파멸하고 몰락하는 전개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블룸은 자신의 잘못된 행동들에 대한 결과나 댓가들을 모두 비껴갑니다. 이런 이야기의 결말부에 다다르면 감탄보다는 허탈함, 충격, 약한 분노 비스무리한 감정들이 뒤섞여 나옵니다. 이런 인물, 이런 광경이 나오도록 가능하게 한 요인은 과연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죠.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것을 찾는 사람들과 그들을 그런 식으로 계속 길들이는 미디어와 사회 시스템 등을 영화는 요인으로 지목하는 듯 합니다.
자극적인 것은 곧 시청률로 이어지고, 시청률은 곧 돈으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연결 고리를 파헤치면서 미디어 그리고 사회 구조를 풍자한 고전 작품으로 시드니 루멧 감독의 <네트워크>가 있었죠. 실제로 <나이트크롤러>를 다 보고 나면 <네트워크>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그 <네트워크>가 나온 지는 50년이, <나이트크롤러>가 나온 지는 10년이 거의 다 되갑니다. 그동안 사회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죠. 특히 미디어와 관련해서는 그 어떤 분야보다도 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휴대폰이라는 작은 카메라가 들려 있죠. 전통적인 형태의 미디어는 주춤하고, 소셜 미디어 등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들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들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습니다. 1976년작인 <네트워크>가 시대를 앞선 걸작이라고 칭송받고 오늘날 사회에도 그 통찰력을 적용해 볼 수 있는 것을 봐도 그렇죠. 작년에는 조던 필의 <놉> 역시 비슷한 주제를 다룬 바 있습니다. 자극적인 것을 찾는 사람들과, 그것들을 재생산해내면서 비극이나 끔찍한 사고를 포착하는 미디어를 풍자해낸 작품이었죠. 그런 요소들이 바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많이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극적인 영상과 이미지들이 조회수, 클릭수, 그리고 곧 돈으로 직결되는 등의 모습은 여전합니다. 그런 만큼 루 블룸 같은 인물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등장할 것이라는 거죠. <네트워크>와 <놉> 만큼, <나이트크롤러>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회자될 작품 같습니다. 밤의 LA를 누비는, 튀어나올 듯한 눈을 가진 루 블룸의 모습 역시 잊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