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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hill Jun 03. 2024

스위밍 풀 (1)

사이버펑크 느와르 SF 단편소설

Chapter 1.

호텔에는 축축한 노란색으로 물든 복도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복도의 바닥은 헝클어진 먼지 같은 양탄자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그 위로 검은 하이힐 두 개가 자국을 내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하이힐 위로는 하얀 다리가 짧은 치마 아래로 내려와 있었으며, 다리가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걸음걸이에서 우아함과 정확도가 묻어 나왔다. 하이힐을 신은 여자는 검은색 여성용 정장을 입고 있었다. 정장 위에는 각종 보석과 장식이 달려 마치 검은 종이 위에 은빛 잉크로 그림을 그린 듯했다. 호텔에서 자신의 객실에 다다르자, 여성은 앞에 서 있던 로봇 수행원에게서 카드를 집어 들었다. 로봇 수행원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턱시도와 넥타이 등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 위와 옆으로 빠져나온 팔과 머리는 깨끗하고 차가운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여성을 바라보는 수행원의 눈에는 인공적인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다.




"에밀리 작가님, 편안한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고개를 숙인 채 인사한 수행원은 여인을 지나쳐 복도를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에밀리는 점점 멀어져 가는 수행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서서히 작아져 가던 수행원의 뒷모습은 그가 모퉁이를 돌자 완전히 사라졌으며, 에밀리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문 손잡이에 카드를 집어넣었다. 빨간 불이 파란 불로 변하면서 약하게 딸깍, 하는 소리가 났다. 에밀리는 손잡이를 돌리면서 문을 활짝 열었으며, 희미한 빛만이 스며 나오는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에밀리의 하이힐이 대리석 바닥을 밟으며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들어오자, 객실의 불은 저절로 켜졌다. 넓으면서도 고급진 객실 내부가 에밀리의 시야에 들어왔다. 에밀리 홀로 묵기에는 너무나도 큰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오늘 밤은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을 터였다. 에밀리가 걸어 들어온 복도는 객실 뒤쪽으로 이어지며 화장실과 침실, 공구실과 작업실 등 수많은 방들을 연결하는 통로가 되어 있었다. 그 앞으로는 아름다운 부엌과 함께 텔레비전, 책장, 소파 등이 있는 거실이 있었으며, 그 뒤쪽으로는 커다란 수영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수영장에는 깨끗하고 투명한 하늘색 물이 채워져 있었으며, 그 앞으로는 벽 전체가 유리인 거대한 창문이 설치되어 도시의 야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거실에서 대리석으로 된 계단만 한두 걸음 내려가면 사용할 수 있는 수영장이었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을뿐더러, 거실과 부엌 등이 물에 젖을 염려도 없었다. 객실이 얼마나 넓었던지, 수영장의 옆으로는 벽장들과 장식된 대나무들이 펼쳐져 있었으며, 그 뒤쪽으로도 용도실 등 공간이 남아 있는 듯했다.




이곳은 평생 한번 올까 말까 하는 고급지고 값비싼 곳이었다. 창밖을 보니 도시의 야경이 네온 불빛을 내뿜으며 반짝였다. 비행정이 불빛을 반짝이며 먼 하늘을 날아다녔고, 구름을 뚫고 올라간 초고층 건물들의 위용이 멀리서도 보였다. 수영장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도시의 거리, 위를 올려다보면 더 높은 건물들의 고딕스러운 모습이 눈에 들어올 듯했다. 객실을 천천히 둘러보고 무엇이 있는지를 눈에 익힌 에밀리는 숨을 내쉬었다. 어깨를 누르던 짐을 내려놓은 듯한 편안함을 느꼈지만, 그녀의 고민과 일거리는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남은 것들은 함께 섞이고 구분이 되지 않도록 응어리져 에밀리의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에밀리는 수영장에 들어가 마음속의 그것을 천천히 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힘든 일이 많았지만 고된 하루의 끝에는 달콤한 열매가 기다리고 있었다. 에밀리는 어서 이 객실과 하나가 되어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Chapter 2.

얼마 후, 객실을 밝히던 전등은 이전보다 더 어두워져 있었다. 그 불빛은 빨간색에서 시작해 노란색, 주황색, 초록색과 파란색 등으로 천천히 바뀌어 가며 방 안을 무지개색으로 물들였다. 전등은 차분하고 쉴 수 있으면서도 아름답고 우아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밝지 않고 짙은 색감을 유지했다. 덕분에 객실은 불빛을 유지하면서도, 많은 부분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어둠 속에서 빛줄기 조금만 보이는 이 모습은 마치 창문 밖 야경과도 같았으며, 객실 내부는 창밖으로 이어져 한밤중의 도시와 하나가 되는 듯했다. 유리 벽과 깨끗한 대리석에 비친 빛줄기와 건물, 객실 물건들은 하나로 어우러져 거대한 시각 예술 작품이 되었다.




어둠에 완전히 잠긴 뒤쪽 복도에서 검은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손에 액체가 담긴 유리잔을 든 그림자는 몸집이 작고 날씬했다. 수영장을 향해 걸어오는 그림자의 얼굴에 푸른 빛줄기가 닿자, 에밀리의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다. 에밀리는 답답한 정장과 공식 의상을 벗고 하얀 샤워 가운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그녀의 금발 머리카락은 샤워 가운을 타고 그녀의 어깨와 등으로 내려왔으며, 녹색 눈동자와 붉은색 입술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받아서 뚜렷하게 보였다. 에밀리는 액체가 담긴 유리잔을 거실 탁자에 내려놓은 뒤, 대리석 계단을 걸어가 수영장 앞에 섰다. 탁자에 놓인 액체는 투명하면서도 은은하게 빛났다. 수영장의 수면 위에 도시의 야경 그리고 형형색색 변하는 빛줄기가 거울처럼 비쳤다. 주위 세계를 본떠서 마치 하나의 작은 세계를 창조해 낸 것 같았다. 흐물거리지만 은은하고 달콤한 분홍빛 세계. 에밀리는 그것을 바라보면서 가운을 묶은 매듭을 천천히 풀었다.




에밀리가 가운을 벗자 그녀의 날씬하고 굴곡진 몸매가 드러났다. 그녀의 어깨 아래로 봉긋한 가슴은 분홍색 브래지어에 감싸 가슴골을 그리고 있었다.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 사이에는 희미한 복근이 새겨진 배가 있었고, 그녀의 배와 허벅지를 분홍색의 팬티가 잇고 있었다. 에밀리는 벗은 가운을 저 멀리 거실 쪽으로 던져 놓고, 두 손을 천천히 등 뒤로 가져갔다. 이어 딸깍, 소리와 함께 브래지어의 끈이 풀렸으며, 에밀리는 어깨에 걸친 리본이 달린 끈을 내리면서 요염하게 브래지어를 벗었다. 브래지어와 함께 팬티 역시 벗었으며, 알몸이 된 그녀는 속옷을 가운처럼 거실로 던져 버렸다. 그녀는 곧바로 발을 내밀어 수영장의 물에 적셨다. 차가운 물의 기운이 발을 타고 그녀의 온몸으로 퍼졌다. 하지만 에밀리는 그러한 느낌을 좋아했으며,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몸을 떨거나 소름이 돋지도 않았다. 이런 면에서 에밀리는 조금 독특했다. 그녀는 머뭇거림 없이 수영장으로 걸어 들어갔으며 그녀의 발목부터 시작해 다리, 허벅지, 그리고 허리까지 물에 잠겼다. 에밀리는 허리를 숙여 몸을 완전히 수영장에 맡겼으며, 그녀는 물속에 잠긴 팔을 움직여 창가로 헤엄쳐 갔다. 물에서는 낯설지만 무엇인가 익숙한, 독특하면서도 기분 좋은 촉감과 향이 느껴졌다. 야경이 묻어난 것인지는 몰라도 물은 보라색 빛깔을 띄고 있었다. 몸을 물에 완전히 맡기자 에밀리는 안정감을 느꼈다. 차가움도, 간지러움도 아닌 감정이 물을 통해 그녀의 몸과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에밀리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도시 야경이 비추어, 초록색과 보라색이 서로 뒤섞여 있었다. 




창가에 도달한 그녀는 대리석 바닥에 팔을 걸친 채, 하반신을 뒤로 뻗어 물속에 엎드린 자세를 취하였다. 남들은 불편해하는 자세였지만 에밀리는 문제없이 해낼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에밀리의 시선은 줄곧 창밖을 향하고 있었다. 옛날부터 꿈꾸던 사이버펑크 도시가 그녀의 눈 아래 바로 펼쳐져 있었다. 첫눈에 보기에 보라색과 분홍색, 그리고 크고 작은 다른 수많은 색깔로 물든 네온빛의 도시는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은 다가 아니었으며, 도시에는 수많은 부정과 죽음, 슬픔과 부패가 내려앉아 있었다. 높은 호텔 건물의 창밖에서, 위에서 아래로 도시를 내려다보이니 그것들이 한눈에 더 잘 들어오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호텔은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도, 에밀리의 객실도 가장 높은 곳이 아니었으며, 그녀의 머리 위 하늘로 더 높은 건물들이 솟아 있다는 사실은 에밀리의 마음속에 깊이 울리는 메아리와도 같았다. 에밀리는 고개를 들고 구름을 뚫고 올라선 건물들을 굳이 보려고 하지 않았다. 밤이 되면 그것들은 최소한의 불빛들만 남긴 채, 아래의 도시와는 달리 어두운 모습만을 남겼다. 그래서 밤에 그 건물들을 보면 땅에서 시작해 하늘로 올라선 건물인지, 아니면 구름을 뚫고 하늘에서 내려온 외계인 괴물의 손아귀인지 구분이 힘들었다. 그 정도로 음침하고 불쾌한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은 에밀리에게 없었다. 그녀는 단지 도시 야경의 피상적인 아름다움에 취한 채, 물에 젖은 팔을 쓰다듬으며 편안하면서도 우울함이 묻은 분위기를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에밀리의 의식의 흐름이 한창 이어지던 어느 순간, 찌릿한 무언가가 에밀리의 몸을 파고들고 흘러들었다.





Chapter 3.

차가운 흙의 텁텁함이 몸을 타고 올라와 그의 신경체계에 느껴졌다. 그는 숨을 천천히 내쉬면서 마치 죽음 이후에 자신이 돌아갈 흙 위에 떨어진 듯, 몸을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멈춘 듯, 죽은 듯, 가만히 엎드린 그를 어둠뿐이 아니라 고요함이 감싸고 휘감았다. 희미하게 보이는 불빛이 그를 완전한 칠흑 같은 어둠에서 구해 냈지만, 그 불빛은 주위의 고요함과 마찬가지로 인공적이고 기계적인 것이었다. 그는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것을 조심스러워했지만, 그것은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함에서였지 흙 분자를 들이켤 것에 대한 두려움이 원인이 아니었다. 그를 받치고 있는 흙은 진짜가 아니었다. 자연의 조각을 모방한 가짜 흙은 불빛과 고요함과 마찬가지로 그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인공적인 산물의 일부였다. 그의 주변을 수많은 작은 대나무 그루가 둘러싸고 있었지만 그는 숲 속에 엎드린 것이 아니었다. 대나무도 흙처럼 가짜인지는 구분할 수 없었으나, 중요한 것은 대나무와 흙이 놓인 작은 공간이 인공적인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와 대나무의 머리 위를 덮는 것도 하늘이 아닌 콘크리트와 금속이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불빛은 창밖에서 들어오는 야경의 일부였다. 그는 자연이나 바깥이 아니라 한 호텔 객실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가 엎드려 있는 작은 대나무 숲은 호텔 객실 내의 조경 장식의 일부일 뿐이었다.




호텔 객실에 잠입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높은 건물에 위치해 있고 객실은 고급진 호텔이었지만 보안과 서비스는 형편없었으며, 사람들과 기계들이 뒤섞여 존재하는 금속의 차가운 공간이었다. 그는 수 시간 전에 이미 객실에 숨어들어 대나무 조경 사이로 들어간 다음,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투숙객이 들어온 이후 불이 켜지더라도 대나무 숲 사이사이로 빛이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라, 이곳은 몸을 숨기기에 최적인 장소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저 멀리 어둠 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희미하면서도 불빛이 반짝이는 것 같은 소리로 보아 문 너머에서 들리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 문이 열리면서 바깥의 불빛이 객실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그와 동시에 문가에서 작은 검은 그림자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곧이어 딱딱한 하이힐과 바닥이 맞닿으면서 규칙적인 리듬 같은 소리가 들려왔으며, 객실의 불이 자동으로 켜졌다. 잠입자 본인도 제대로 보지 못한 객실의 구체적인 모습들이 한눈에 들어왔으며, 그와 동시에 객실 안쪽으로 걸어오는 정장을 입고 화장을 한 금발의 여성이 나타났다.




한 인간 여성이었다. 잠입자는 여성이 객실 내부를 둘러보는 순간 그리고 그 이후 자신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도 자신을 눈치채지는 못하는 순간 동안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검은 시선이 초록 눈동자로 날아갔다. 하지만 그녀의 초록 시선은 검은 그림자 사이의 검은 눈동자로 향하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잠입자는 알 수 있었다. 이 여성은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 잠입자에게는 남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능력이 한 가지 있었다. 인간과 기계가 뒤섞인 세상에서, 두 존재를 구분하는 방법은 눈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잠입자는 눈을 바라보면서 대상이 인간인지 기계인지 구별할 수 있었다. 두 존재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잠입자의 능력은 꽤 쓸모가 있을 터였지만, 그는 이 능력을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했다. 그녀의 초록 눈에서는 인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잠입자는 이후 손아귀를 꽉 쥐면서 주변에 흩뿌려진 가짜 모래를 함께 움켜쥐었다. 가짜 모래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면서 약한 소리가 들렸지만, 대나무 조경 밖까지 들릴 만한 소리는 결코 아니었다. 잠입자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여자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계속해서 숨어 있는 상황을 이어 나갔다.




이후 여자가 불을 끈 다음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진 다음에도 잠입자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기다릴 뿐이었다. 계속해서 기다리고 기다렸다. 이후 전등이 다시 천천히 그리고 희미하게 켜지면서 무지개색이 스며 나왔고, 창밖 도시의 불빛과 함께 어두운 객실 내부에 오묘한 분위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복도의 어둠 속에서 다시 여자가 걸어 나오자, 잠입자는 그녀가 입은 샤워 가운을 확인했다. 이후 여자는 샤워 가운을 벗고 늘씬한 몸을 흔들며 요염하게 속옷을 벗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잠입자만을 위해 스트립 쇼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잠입자는 그런 여자의 몸을 힐끗 훑으면서도, 성욕구 등의 갈증이 타오르지는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서 조금씩 흥분감이, 자기가 원하는 목적에 다다른다는 인식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으나 잠입자가 원하는 것은 아름다운 여성의 육체나 비슷한 성적인 자극이 아니었다. 이 순간 그가 확신하는 것은 그녀가 옷을 벗고 나서 들어갈 곳은 수영장이라는 것뿐이었다. 자신의 함정, 자신이 그녀를 위해 마련한 작은 선물 말이다.




여자가 수영장으로 걸어 들어간 이후에도 잠입자는 침묵과 부동의 상태를 유지했다. 여자가 천천히 작은 수영장을 가로질러 창밖으로 향해, 말없이 잠입자 본인만큼이나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는 상황이 되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도시의 야경을 따라간 잠입자는 잠시 동안 야경의 아름다움에 취했다. 완벽하고 깔끔하고 위대한 도시. 그 도시와 이 호텔 덕분에 그는 이런 일을 하고 이런 것들을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여자가 움직이지 않고 시선을 고정한 상태가 지속되자 이제 잠입자는 고요와 정적을 유지하면서 빠르게 움직여야만 했다. 여자가 고개를 돌리거나 자신의 함정에서 헤엄쳐 나오기 전에 말이다. 잠입자는 흙 근처에서 줄 하나를 움켜쥐었다. 그렇게 굵진 않지만 아주 얇지도 않은 정도의 줄에는 검은 코팅이 되어 있었다. 줄을 당겨 그 끝, 윗부분을 확인한 그는 만족스러움을 느꼈다. 끝이 닳아서 전선이 드러난 검은 줄이었다. 그 안에는 웬만한 생명은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전류가 흐르고 있는 상태였다. 뜬금없는 실수로 불빛 혹은 소음을 내 계획을 망치지 않기 위해, 잠입자는 자신의 뒤로도 길게 늘어져 있는 전선을 계속해서 뽑아냈다.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이며 그는 전선을 앞으로, 대나무 숲에서 시작되어 숲의 바깥 객실 내부로 향하게 했다. 그중에서 전선은 정확하게 수영장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여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창밖에 머물러 시선도 그쪽으로만 향하고 있었다.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상태가 계속되어서 그녀는 창밖의 무언가에 홀리거나, 마치 공상이나 사색에 잠긴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체의 여성이 보라색 수영장에서 창밖의 도시 야경을 바라본다. 이런 광경을 망치기는 싫었지만 잠입자는 계속해서 전선을 이동시켰다. 여자가 혹시 창과 수영장의 경계에 엎드려 잠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생각조차 들었는데,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 오히려 굉장히 좋은 경우였다. 어떤 상황이든 여자가 움직이지 않는 틈을 타서, 잠입자는 빠르게 그리고 소리 없이 전선을 움직였다. 땅바닥, 특히 물기가 있는 수영장 근처 바닥에 닿지 않도록 충분히 전선을 바닥에서 띄운 상태로 유지시키면서, 전선은 숲에서 나와 수영장으로 계속 나아갔다. 마침내 전선은 수영장의 물 위를 바라보는 정도까지 길쭉하게 튀어나왔다. 잠입자는 전선을 조심히 잠고 쭉 뻗은 자신의 손에서 시작해서 수면 위에 있는 튀어나온 전선 꼭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창가의 여자로 시선을 움직였다. 여자는 이전과 똑같은 자세를 바꾸지 않고 여전히 창밖에 시선이 팔려 있었다. 잠입자는 마지막으로 향한 그녀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손짓과 함께 전선을 아래로, 물속으로 집어넣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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