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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hill Jun 22. 2024

Warning! Mermaids

xhill의 인어 초단편

'Warning! Mermaids'

'No Swimming'


인어를 주의하라, 수영하지 마라.




집을 멀리 떠나와 여행을 하던 이사벨은 외딴 마을에서 이상한 표지판을 발견했다. 때는 이른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걸린 시간이었다. 그녀가 서 있는 마을의 거리와 호수의 경계는 사람들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사람들 대부분이 떠나 사라진 마을인지라 낮이나 오후가 되더라도 이런 광경은 변하지 않을 터였다. 아직 마을 어딘가에 남아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몇 명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전혀 상관없을 정도로 그 숫자는 적었다. 이곳은 완전한 유령의 마을이었다. 그런 마을의 뒤쪽에 있는, 마을과 산맥 사이에 위치한 호수에서 이사벨은 이상한 표지판을 발견한 것이다.




유령 마을 안으로 들어와 거리를 누비는 이사벨은 겁이 없고 호기심이 많은 여성이었다. 아름다운 외모에 기다란 금발 머리카락을 가진 그녀는 자신을 옭아매고 짓누르는 듯한 -주변 사람들,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학교와 직업까지- 모든 것에서 해방되기 위한 여행을 떠났다. 정처 없이 떠도는 듯한 여행길에서 이런 표지판을 마주한 것은 마치 불타는 아궁이에 거대한 나무 한 토막을 던져 넣는 듯한 사건이었다. 이사벨의 주위에는 사람뿐 아니라 안내소나 도움 시설 같은 것도 없었다. 이 표지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과연 이사벨이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그것을 의미하는지 물어보고 답을 알려줄 존재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사벨은 가볍게 사진이나 찍고 지나갈 사람이 아니었다. 




이사벨은 이미 호수에 가까이 서 있었지만 몇 걸음을 더 움직여 발끝이 물에 젖기 직전까지의 거리로 나아갔다. 호수의 뒤쪽에 배경처럼 보이는 산맥의 크기는 변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하자 호수의 투명하고 맑은 물은 더욱 생생하게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호수 앞 뭍에 깔린 자갈과 조약돌 그리고 바위들은 호수에 가깝게 다가갈수록 점점 작아지면서 물과 만나 들어가는 곳에서는 작은 모래가 되어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사벨은 고개를 들어 시야를 호수의 안쪽으로 향하게 했다. 호수의 물만큼이나 맑은 날씨 덕분에 이사벨은 자신 근처의 부분까지 물 아래를 볼 수 있었지만, 특정 부분 이후로는 물 안쪽이 보이지 않고 수면에 비친 햇빛과 하얀 구름만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이사벨은 몸과 고개를 돌려 이제는 그녀의 뒤쪽에 서 있는 표지판을 바라보았다. 글귀가 쓰여 있지 않은 표지판의 뒤쪽에는 회색만이 칠해져 있었다. 숨겨진 다른 글자나 문양 따위는 없는 듯했다. 이사벨의 호기심, 마음속에서 천천히 그리고 독처럼 치명적으로 피어오르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제공하지 못했다. 




이사벨은 자신의 마음이 천천히 뛰는 것을 느꼈다.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은 처음이었다. 콩닥거리는 가슴과 함께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사벨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뿐 아니라 그녀는 멈추고 싶은 마음조차 없었다. 그녀는 손에 든 가방을 내려놓고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간편한 복장만을 남겨둔 채 이사벨은 다리를 길게 내밀었다. 그녀의 발끝은 물의 표면과 맞닿았다. 물은 시원했지만 차갑다고 느낄 정도의 온도는 아니었다. 호수 물의 촉감은 이사벨의 발끝에서 시작해서 다리와 몸을 타고 마음과 머리로 전해졌다. 물과의 접촉에서 이런 촉감과 기분을 느끼는 것은 처음이었다. 차가움으로 몸을 움츠리거나 찌릿한 느낌을 전달하는 대신, 물은 이사벨의 몸을 기분 좋게 변화시키면서 마치 호수 안쪽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는 듯했다.




그러자 이사벨은 거리낌 없이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녀의 발 한쪽이 물에 완전히 잠겼다. 그리고 나서 이사벨은 다른 발 한쪽마저 물 속에 집어넣었다. 이사벨은 호수의 수면이 그녀의 몸을 타고 올라올 때까지 걸음을 내디뎠으며, 물이 몸을 어느 정도 집어삼키자 자신의 금발 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호수 안쪽으로 잠수했다. 인어를 찾기 위한 여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인어 그림과 함께 새겨진 경고 문구, 그리고 호수에서 수영을 하지 말라는 내용까지 있었지만 이사벨은 그런 것에 겁을 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이사벨에게 정 반대의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이런 미스터리와 신비, 괴담에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을 느꼈다. 마치 태어나기도 전에 그런 마음과 흥미가 그녀의 머릿속에 각인된 것처럼. 




이사벨은 호수에 인어가 정말 존재할까 생각했다. 아이들을 위험한 호수에서 놀지 못하게 어른들이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것이 가장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 같았다. 혹은 호수 안에 인어가 아닌 다른 중요한 무언가가 숨겨져 있으며, 인어를 허수아비 삼아 사람들을 호수에서 멀리 떨어트려 놓으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혹시나 이곳에 인어가 존재한다면 이사벨은 인생일대의 발견을 하는 것일 터였다. 그녀의 기억과 사고방식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 그리고 세계의 역사와 사회를 뒤흔들 수 있었다. 물론 가능성은 낮다고 이사벨은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을 하니 흥분감이 피어오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이사벨은 마음속의 그 느낌을 좋아했다. 




인어가 얼마나 위협이 되겠어? 그녀는 물속을 헤엄치며 속으로 생각했다. 혹은 인어는 어쩌면 위험하거나 사악한 존재가 아닐 수도 있어. 마을 사람들이 무언가 잘못 소통한 바가 있겠지.




수면 아래 펼쳐진 호수의 내부는 뭍에서 바라보던 것처럼 맑고 깨끗했다. 마치 잘 정돈되고 청소를 끝낸 집과 같이 바닥에는 깨끗하고 하얀 모래가 카펫처럼 깔려 있었으며, 수면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기까지 했다. 그런 호수의 바닥 군데군데에는 작은 장식처럼 해초나 바위들이 피어나고 놓여 있었다. 아주 가끔씩 작은 물고기가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사벨이 찾던 것, 그녀의 출렁이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강렬한 호기심의 욕구를 채워 줄 그것은 보이지 않았다. 




이사벨은 중간중간 호흡을 위해 수면으로 고개를 내밀어 산맥과 마을을 바라보면서 휴식을 취한 것을 제외하면, 거의 15분에서 20여 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호수를 탐험했다. 호수 내부의 모든 공간을 한 뼘 한 뼘 수색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호수의 중심까지 헤엄쳐 가서 호수 전체를 자신의 시선으로 훑기까지 했다. 




자신이 지금까지 본 호수 내부의 광경은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다. 호수 전체가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자 이사벨은 그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물속을 가만히 유영하고 있었다. 특별히 눈에 띄거나 그녀의 관심을 사로잡는, 다른 모습이나 물건은 없었다. 아주 가끔씩 그녀의 시야 앞으로 가느다란 금빛의 무언가가 나타나 그녀를 놀라게 했지만 그것은 그녀의 머리카락일 뿐이었다. 이 호수 내를 헤엄치고 있는 것은 작은 물고기 떼를 제외하면 그녀뿐인 것 같았다. 




물에 처음 몸을 담그던 순간의 기대감과 호기심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허무함과 공허함이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이사벨의 마음 깊은 곳에서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바라보는 호수는 평범하고 지루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사벨이 처음으로 생각해 낸 이론이 현실이 되는 듯한 순간이었다. 호수에 인어는 없었다. 이사벨은 자신이 생각했던 바 중 하나가 사실로 확인되자 의문이 해소되기는 했다는 작은 만족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무언가 거대하고 그녀의 정신을 뒤흔들어 놓을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졌다. 예상했던 바였지만 그 실망감은 부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사벨은 시원하고 아름다운 데다 느낌까지 좋은 물에 몸을 맡기고 수영을 한 것을 고맙게 생각했다. 호수에서의 수영은 결코 완전한 시간 낭비는 아니었다. 이사벨은 주위를 마지막으로 한 번 둘러보더니, 어느덧 하늘 높이 떠오른 태양을 보고는 다시 수면 바깥으로 나와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가방과 옷가지는 제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이사벨은 그쪽으로 몸을 돌려 헤엄치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호수와 표지판에 정신을 팔리고, 직접 물에 들어가 탐험하기까지 했으니 이제 다시 육지로 나와, 마을 구석구석을 탐험할 차례였다. 이사벨은 버려진 집들 안까지 들어가 볼 생각이었다. 이사벨은 이전보다 더 빠르게 헤엄을 쳤다. 모든 것은 문제 없는 듯했다. 




이사벨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곧 이야기는 그녀가 판단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아침부터 시작해 오랜 시간을 물속에서 보냈지만 이사벨은 전혀 지치지 않고 헤엄을 치고 있었다. 그녀는 물속에 있으면서 특이하고 신비로운 감촉을 처음에는 인지했지만 그 기분 좋은 느낌에 취해 곧 그것을 잊고 자유롭게 헤엄쳐 왔다. 그렇게 수영을 끝내려던 도중, 이사벨은 자신의 시야 앞으로 향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끝에는 손톱이 사라지고 없었다. 손가락 사이사이에는 물갈퀴가 나 있었다. 




순간 자신이 헛것을 본 것인가 생각했지만 이사벨은 곧 그것이 현실임을 알아차렸다. 이사벨은 즉시 헤엄을 멈추고 자리에 서서, 자신의 손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보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충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물속에서 패닉을 일으키며 흔들리는 시선을 무심코 아래쪽의 몸으로 떨어트린 이사벨은 자신의 다리가 온데간데 사라져 없고 기다란 꼬리가 하반신에서 솟아난 것을 확인했다.




작은 지느러미 여럿이 나 있는 꼬리는 하늘색으로 빛을 내고 있었다. 그것은 물고기의 꼬리였다. 꼬리를 빽빽하게 매운 비늘은 그곳에서 시작하여 멈추지 않고 그녀의 상반신으로 올라왔다. 비늘은 그녀의 몸과 팔 역시 덮고 있었다. 보기에는 몸에 달라붙는 옷을 입은 것 같았지만 아무리 이사벨이 긁어내고 뜯어내려 해도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피부는 비늘로 변한 것이었다.




이사벨은 무너지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으면서 뭍으로 향하려 했다. 물속을 너무 오래 누벼 체력이 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공황이 온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지만 더 이상 수영을 하면서 호흡을 규칙적으로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물속에서 이사벨은 이제 숨을 쉴 수 있었다. 꼬리와 지느러미를 가진 지금 수영을 할 체력이 떨어질 수도 없었다. 단지 그것을 깨닫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이다. 도대체 언제 그리고 왜 자신에게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인지 이사벨은 알 수 없었다.




이사벨의 녹아내린 마음은 눈물이 되어 눈가에 맺혔지만 얼굴에 묻은 호수의 물과 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구별할 수 없었다. 그녀는 기다란 꼬리와 물갈퀴, 비늘을 가졌지만 아무리 헤엄치더라도 뭍으로 갈 수 없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녀의 꼬리를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몸에서 그 어떠한 외부의 힘이나 압력을 느낄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사벨은 아가미가 생겨난 자신의 새 목으로, 있는 힘껏 비명을 질렀다.




비명은 높고 날카로웠으며 시끄러웠다. 비명은 호수에서 시작되어 마을까지 울려 퍼졌다. 텅 비어버린 곳이었기에 비명의 메아리는 더욱 크고 무섭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것을 들을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마을과 호수의 뒤쪽에 위치한 거대한 산맥은 안개 사이로 자신의 거대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어느덧 태양이 하늘 위로 높게 떠올랐지만 산맥을 덮고 있는 어둠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한밤중의 마을, 거대한 트럭 한 대가 마을로 들어왔다. 사람들이 살지 않는 버려진 마을은 조명이나 가로등 없이 완전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심지어는 전등이나 촛불도 존재하지 않아 유일하게 이곳을 밝히는 것은 트럭이 뿜어내는 두 전조등의 빛줄기뿐이었다. 트럭은 자신의 빛줄기가 앞을 밝히면서 만들어낸 길을 따라 검은 마을의 거리를 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트럭은 호수 앞에 도착했다. 호수는 밤이 되면서 마을과 하늘을 따라 검게 변해 있었다. 트럭은 정차했지만 전조등은 꺼지지 않았다. 빛줄기는 계속해서 뿜어져 나와 이전보다 더 먼 거리까지 향하고 있었다. 빛줄기가 닿는 호수의 뭍 부분, 모래와 자갈과 바위 사이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트럭의 문이 열리더니 검은 옷을 입은 두 명의 사람이 나왔다. 몸을 완전히 가리고 있는 그들에게서 외모나 특징을 볼 수는 없었다. 그들은 트럭에서 내려 호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들은 빛줄기가 비추는 곳까지 걸어가, 자신들이 발견한 것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물과 땅의 경계, 뭍에 가까운 얕은 호수의 부분에는 한 인어가 팔을 벌린 채 누워 있었다. 호수의 물결에 따라 조금씩 흔들리고 들썩이는 그녀의 몸은 자의로 움직이지 않았다. 정신을 잃은 채 숨만을 간신히 쉬고 있는 그녀에게는 기다란 금발 머리카락이 있었다. 감긴 눈 아래에 그녀는 차갑게 식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 입이 다시 미소를 짓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검은 이들은 인어를 트럭 뒤쪽에 태운 다음, 자신들이 온 길을 따라 다시 한밤중의 마을을 조용히 떠나갔다. 얼마 후 마을에는 다시 검은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트럭과 검은 이들은 마을과 호수에 처음 방문한 것이 아니며, 이번이 마지막 방문도 아닐 터였다. 




별과 달빛조차 비치지 않는 이곳의 호수는 밤이면 너무나 어두웠다. 낮과는 달리 그 아래에는 무엇이 있는지조차 전혀 알 수 없었다. 마치 칠흑 같은 어둠처럼.




*호수에 대한 이야기는 민담과 전설 속에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존재해 왔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간 전, 정부 문서의 유출로 인해 그 존재가 확인되었다. 하지만 정확한 위치나 마을의 이름 등 정보는 유실되었다. 



**자신의 지인이 이곳에서 실종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이 이야기에 매료된 미스터리 전문가들은 아직도 이 마을과 호수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마을과 호수의 위치뿐 아니라 어떻게 사람을 인어로 변신시키는지, 무엇이 호수에 그런 능력을 부여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호수의 힘을 이용해 탄생한 인어들을 실어 나르는 자들은 누구이며 인어에게 무엇을 하는지 등....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하고 있다.



***이런 호수와 마을은 전 세계에 한 곳이 아니라는 가설 역시 퍼지고 있다. 실종자들의 마지막 확인 위치가 각자 다른 것이 이 가설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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